Ep.7 공부를 가르친다. 내가 살기(?) 위해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은 국. 영. 수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하교 후부터 잘 때까지 계속 자유시간을 누릴 수 있다.
나는, 부르면 언제든지 튀어나오는 포켓몬처럼 아이들이 원할 때 함께 논다.
집 앞에서 야구나 농구도 하고, 보드게임이나 컴퓨터 게임도 셋이 같이 즐긴다.
조금은 극단적이지만, 그동안 같이 놀지 못한 것을 열심히 만회하는 중이다.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마주치는 어르신들이나, 친분이 있는 같은 반 학부형들은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참 좋겠다. 세상에 이런 아빠가 어디 있니?"와 같은 말을 건넨다.
덕분에 훌륭한 아빠가 되어 기분이 좋지만, 활짝 웃지는 못하고 어색한 미소를 짓게 된다.
과일로 비유하자면 자몽이나 유자 같은 느낌이랄까? 달지만 쓰다.
이유는 간단하다.
난 경제력을 상실했다.
그럼에도 일할 마음이 현재로선 없다. 어떤 면에선 매우 무책임하다.
그래서, 전업주부라는 임무에 매우 충실하려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단, 집은 언제나 청결한 상태로 유지하고 있다. 쓰지 않는 물건을 거의 매일 갖다 버린다.
그리고, 스팀 청소기에 물을 담아 넣을 때, 치약이나 시트로넬라 오일을 섞는 등
먼지뿐 아니라 향기까지 신경을 쓰는 온갖 실험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요리의 경우, 신 메뉴가 계속 추가되고, 스스로 감탄하며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 꽤 많다.
잊을만하면 이곳에 에피소드와 함께 계속 풀어놓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마냥 부족한 것 같은 목마름이 해소되지는 않는다.
청소와 요리만이 주부의 역할은 아니지만, 다른 어떤 예를 들더라도
저 위에, 열 두어줄 정도 앞에 적혀있는 짧고 강력해 보이는 한 문장을 이기기는 힘들다.
'난 경제력을 상실했다.'라는 것.
자발적 은퇴기에 감당해야 할 부분이기는 하지만
마음의 구멍이 커서 좀처럼 메우기가 쉽지 않다.
올림픽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여러 개 획득하더라도
금메달 1개보다 순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메달 집계 방식을 보는 듯하다.
더 보탬이 될 무언가를 찾고 있을 무렵에 아이들과 관련된 이슈가 생겼다.
아이들의 학년이 올라가면서 공부가 점점 어려워지는데
'학원의 도움 없이 저렇게 놔두어도 괜찮을까?'라는 고민이었다.
매일, 국. 영. 수 과목별 한 두 권의 문제집을 스스로 한 두 장씩 풀어보는 것이 전부였다.
학습 진도는 한 학기도 아닌, 한두 단원 정도 앞서는 수준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스케줄을 짜는 아이들을 보며 대견한 마음을 가질 뿐이다.
하지만, 기준을 어디로 잡는가에 따라 아이들을 한없이 방치하는 무대책 부모도 될 수 있다.
혼자서 가만히, 정말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이런 생각도 한 적이 있다.
우리 아이들은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
우리 아인데?
내 아인데?
아내는 차치하더라도 내 유전자가 반이나 들어가 있는데?
나머지 절반이 아내의 것이기에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저렇게 제 발로 책상 앞에 앉아서 조금씩이라도 공부해 주는 것에 큰 감사함을 느낀다.
그래도, 주변에 우려 섞인 시선 역시 존재했다. 저렇게 놔두면 후회한다는 식의 조언이 그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부부는 굉장히 느긋하다 못해 공부를 포기한 것 같은 인상마저 줄 수 있다.
사실, 우리에게 있어 아이들의 공부란
대학 진학이나 취업의 도구가 아닌, 그저 머리가 똑똑해지기 위한 훈련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비교와 경쟁 속에 있는 것보다 스트레스 없이 놀게 해주고 싶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학교 운동회의 하이라이트인 계주에 나가기 위한 대표를 뽑았는데
학년 대표 2명 중 딸아이가 선발된 것이었다. 쪼그만 녀석이 그렇게 발이 빠른 줄 몰랐다.
그런데, 그 사건이 동네 학부형들 사이에서 잠시 화제가 되었던가 보다.
직접 들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누군가가 이런 이야기를 했단다.
"아유~~~, 매~~~일 놀이터에서 살고 있는 두 명이 대표로 뽑혔네~"
무언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것 같은 한 줄 평이었다.
다만, 희한하게도 그 이야기를 전해 듣는 순간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우리 딸은, 알파벳 'b'와 'd'를 때때로 혼동하고, 구구단 7단과 8단에서 버퍼링이 걸리는 모습을 보이지만
'대표로 선발 될 정도로 달리기가 빠르다'라는 것이 나에게는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금메달 같았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이론은 없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들에게서 약간의 버거움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모르는 것을 내가 봐주기는 했지만, 큰 아이의 경우 주변의 다른 친구들과 비교를 해 보면서
자신만의 공부가 맞는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는 모습이었다.
달리기 대표 선수인 딸도, 놀이터에 나간다고 해서 허락해 주면 30분 남짓 놀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아이들이 학원을 가서 금방 헤어지고, 놀 친구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매일 규칙적으로 봐 주마."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간다."
전업주부가 된 나에게 또 다른 운명의 순간이 다가왔다.
뭐라도 한 가지 일을 더 맡는 것이 나에게 이롭다.
무엇보다 전업주부로의 확실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는 좋은 재료가 될 것 같았다.
책상에 엉덩이는 붙일 줄 아는 아이들이기에 내가 배웠던 스파르타식 교육을
살짝 가미해 준다면 나름 괜찮은 조화가 이루어질 것을 예상했다.
솔직히, 현실적 이유도 존재했다.
학원비 지출은 그 즉시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되면 나는 집에서 설자리를 잃게 된다.
꼭, 학원비를 아끼기 위해 직접 나서는 것은 아니지만, 계산상으로는 그랬다.
만약, 다른 집 수준으로 학원비를 지출한다면, 우리 집은 과거로 가는 급행열차를 타게 된다.
나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 다시 PD가 되어 밖으로 돌 것이고, 낮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실 것이다.
다시 예전의 모습을 원하는 가족 구성원은 다행히도 없다.
여하튼
정식으로 내가 가진 노하우를 가르쳐 줄 것을 생각하니 또다시 열정이 불타오름을 느꼈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맞아가며 머릿속에 구겨 넣었던 공식들이 문신처럼 남아있었다.
학창 시절, 훌륭한 스승님 집에 찾아가서 꾸준히 고액 과외를 받아왔고
그 당시 전수받은 문제 해결 노하우는 아직도 내 몸 어딘가에 살아있다.
비록, 수능에서 영어를 단 1개만 틀렸지만 영어로 대화할 줄 모르는
대한민국 교육의 결과물이 바로 나였지만,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는 전혀 문제가 없다.
수학도 중3까지는 얼마든지 가르칠 능력이 된다고 생각했다.
90년대 활동했던 1세대 아이돌 멤버들이 40대가 된 지금도 그 시절의 안무를 기억하는 것처럼
숱하게 외웠던 영어 단어 중에 80퍼센트 정도는 아직도 저장되어 있다.
'내가 아이들의 능력치를 확 끌어올려 주리라'
주부가 된 그날처럼, 요리에 처음 도전했던 그날처럼
다시금 마음을 다잡으니 만화영화 속 주인공의 변신 장면들이 떠올랐다.
조금 전까지도 비교와 경쟁에서 자유롭게 키우고 싶다고 해놓고
상상으론 이미 서울대 생 둘을 만든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복권을 한 장 샀을 뿐인데 건물주가 되어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내일부터 시작이다.
이제 전업주부이자 가정교사다.
내가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증명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