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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Mar 06. 2024

직업상담사의 윤리적 고민

어라? 내 고민은 되려 늘어있잖아

수많은 내담자와 마주하면서 이들의 진로, 취업, 직업에 대한 고민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다 문득. ‘어라? 내 고민은 되려 늘어있잖아’하고 깨닫는 때가 있다. 이 직업상담사의 역할이 어디까지일까. 때로는 더 도울 수 없어 안타깝고, 때로는 이것이 올바른 방향인가 고민이 떠오른다. 혹시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다른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그 누군가를 위해 내 고민을 적어내려본다.


직업상담사의 상담실에서 심리적 불안을 호소하는 내담자를 바라보는 방법. 가장 자주 마주한 고민이 바로 이것이었다. 대부분의 상담에서 심리와 진로/취업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 그러면 심리적 불안이 커서 취업을 막연히 두려워하거나, 직무분석이나 취업 준비 방법을 몰라 심리적인 불안을 겪는다면 어떤 분야의 상담을 받아야 하는 걸까? 또 이런 경우도 있다. 직업상담사와 정기적인 상담으로 역량을 착실히 갖춰나가고 있는 내담자가 갑자기 부모님과의 갈등으로 불안을 겪지만, 심리상담을 원하지 않고 이미 라포가 형성된 직업상담사에게 털어놓고 싶어 하는 경우. 이처럼 모호한 상황들 덕분에 내 상담실에서 결국 심리 고민을 털어놓는 내담자를 마주하게 된다. 이런 때에는 내담자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하는 강한 마음이 고개를 들어 올린다.


다만 나는 직업상담사다. 우선 스스로 한계를 직면한다. (*나의 경우) 직업상담사는 내담자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전문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금 떠올린다. (의외로 직업상담사를 심리상담사와 유사하게 보는 내담자가 존재하기에) 심리적 지지를 위해 입을 뗄 때는 ‘지금부터는 직업상담사로서 보다는 개인적 차원의 조언’임을 명확히 전달하여 내담자가 이것을 마치 심리 전문가의 조언이라 오해하지 않고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다. 혹 심리상담에 대한 비합리적 부정적 견해가 있다면 정정하고 더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두드릴 수 있도록 상담 기관을 안내했다. 심리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된다면 선을 그으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정보 부족이나 진로 선택 방법의 기준, 취업 분석법처럼 어떤 신념으로 확신이 부족하거나 불안해하는 내담자에게는 이에 적절한 상담을 진행하면 된다. 다만, 심리적 상담이 필요할 정도로 괴로워하는 내담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인간적 차원에서의 공감과 격려를 담은 지지일 것이다. 조금 더 명확히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심리와 직업 상담을 모두 습득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내담자를 완벽히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위험하다.


심리적 불안과 유사하게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내담자를 만나는 때도 있다. 이들에게 역시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 상황을 그저 안타깝게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런 이들을 위해서는 정책 정보나 관련 기관에 연계가 가능한지, 그리고 참여할 수 있는 지원사업이 있는지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좋다. 한 예로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가정 PC가 없어 컴퓨터활용능력 2급 시험 대비와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 작성을 위해 매일같이 공공도서관을 들르는 내담자가 있었다. 이 내담자에게는 이것이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 불편함도 크게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돕고 싶은 마음에 정보를 검색하다 보니 소속 지자체에서 어려운 환경의 가정에 공공기관에서 기증받은 PC를 무상으로 보급하는 ‘사랑의 그린 PC’라는 사업이 있었던 것이다. 이후로도 경제적 문제로 PC가 없다면 이 사업을 살며시 알려드렸고, 사업의 존재 여부를 몰랐던 내담자는 반가운 반응을 보였었다.


직업상담사가 내담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아무리 지극하더라도 분명히 한계가 존재한다. 진로와 취업 문제는 단순히 정보 부족이 아니더라도 심리적 어려움과 경제적 문제까지 다양한 고민의 계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영역을 직업상담사가 정확하게 매번 새로운 정보를 얻어 완벽하게 상담에서 제공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막연하고 두려운 내담자보다, 매일 취업과 관련된 정보를 검색하는 것이 일인 우리가 정보 습득이 더 빠르지 않겠는가. 경계를 명확히 설정한 심리적 지지와 도움이 될 정보를 전달하는 것으로도 내담자에게 추가적인 지원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직업상담사는 내담자의 다양한 고민과 어려움을 이해하면서 지원 해낼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진심으로 내담자를 지지하고자 하는 마음과 전문적 지식을 발전시키려는 지속적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 우리의 한계를 인식하고 현실적으로 그러나 분명히 도움이 되는 상담을 제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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