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춤의 탈을 쓴 우월
고개를 꺾었다
허리를 굽히며—
속은 하늘 쪽으로 천천히 부풀었다
“제가 감히…”라는 말은
무릎보다 낮았지만
속셈은 단상 위에 서 있었다
칭찬을 밀어냈다
그러나 그 말의 온도를 기억했다
입술은 닫혔지만
귀는 그 문턱에서 서성였다
무지를 연기했다
아는 척은 교만 같아 보여서
그러나 속으로는
모르는 척이 더 똑똑해 보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겸손은 나의 위장을 입고
기만은 나의 얼굴을 대신 썼다
나는 방어이자, 동시에 공격이었다
지금도 나는 묻는다—
누굴 속이고 있는가
타인인가, 나인가
아니면 겸손을 가장한
내 욕망 그 자체인가
"겸손은 미덕이라 배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자신을 낮추고, 말끝을 조심스럽게 흐리는 것이
단정하고 바람직한 태도라고,
오랫동안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 순간에도
속에서는 조용히 누군가보다 ‘낫다’고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겸손하시네요”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겸손한 말을 골라 쓰고 있는 건 아닐까?
겉으로는 낮춘 척하지만
속으로는 단상 위에 올라서 있는 마음.
모르는 척하지만,
사실은 그 척이 더 영리해 보이길 바라는 마음.
겸손을 말하지만,
사실 그 말이 나를 더 빛내주길 기대하는 욕망.
그럴 때 우리는
누구에게 솔직한 걸까요?
남일까요? 나일까요?
아니면, 겸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내 안의 우월감 그 자체일까요?
진짜 겸손은 드러내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
보이지 않아서 무너지지 않는 자신감에서 시작되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걸 모를 리 없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역할을 연기합니다.
그리고 그 연기가 익숙해질수록,
어쩌면 나조차도 속게 되는 걸지도 모릅니다."
오늘 내가 말한 그 한마디,
그 말투, 그 몸짓—
진심이었을까요, 아니면 기대된 반응을 위한 계산이었을까요?
겸손은 조용히 속삭입니다.
“그건, 정말 너였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