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know 'TEXT HIP?'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과거의 기록이었다.
기억은 영원히 그들과 싸워야 하는 적이었다.
『1984』, 조지 오웰
어색한 두 단어를 조합한 글쓰기 마지막 연재는 디지털 가상현실의 '메타버스'와 아날로그 감성을 담은 물리적 물건 '종이책'입니다.
일상에서 인공지능, 메타버스 같은 디지털 세계와 관련된 용어가 등장한 게 불과 몇 년 되지 않습니다. 그전까지는 손에 닿는 물리적 물건에 익숙했습니다. 최근 제가 접한 메타버스는 고등학교에서 다음 연도 교육과정을 설명하는 자료였습니다. 예전처럼 종이책자를 만들거나, 엑셀표로 정리하지 않더군요. 메타버스 공간에 또 다른 작은 세계가 형성되어 있었어요.
입장하니 제 캐릭터가 학교 정문에 서있었습니다. 내년도 교육과정과 교과서 및 관련 영상을 시청할 수 있게 되어있었습니다. 딱딱한 글자가 아닌, 입체적 영상이 마치 게임 같았습니다. 메타버스는 현실처럼 느껴질 만큼 발전했습니다. 게임 속 캐릭터가 되어 전혀 다른 삶을 살거나, 회의실에 앉아 가상 회의에 참석하는 경험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단지 글자일 뿐이라고?
아니, 그것은 우리의 영혼을 채우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도구야.
『종이 위의 기적』 , 마크 리비
모든 게 빠르고 즉각적인 가상현실과 달리, 종이책은 반대 의미를 지니고 있죠.
책장을 넘기며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천천히 읽어 내려가야 하고, 속도보다는 그 순간의 느낌과 여운이 더 중요하고요.
손끝에 닿는 종이의 질감, 책을 넘길 때 나는 소리,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이 주는 여유로움은 메타버스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감각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디지털 기기에서 많은 정보를 얻더라도, 종이책을 손에 들고 읽는 경험은 대체할 수 없어요. 메타버스 속에서도 여전히 물리적 경험은 중요하게 남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왔는가?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이기에 낯선 행성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야 하는가?
<화성 연대기> , 레이 브래드버리
우리가 메타버스나 인공지능 같은 최첨단 과학 발전의 시대를 살아간다고 해도 모든 게 가상 일수는 없습니다. 아날로그 적인 경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건들이 중요해집니다. 예를 들어, 가상 회의실에서 종이로 된 계약서를 직접 서명하거나, 가상 도서관에서 종이책을 고르고, 그 책을 실제로 펼쳐 읽는 상상을 해 볼 수 있겠네요. 디지털 환경에서도 여전히 우리는 물리적인 연결을 필요로 합니다.
메타버스나 인공지능과 종이책이 서로 충돌하는 개념 보다 서로 보완되는 조합이라는 생각은 어떨까요?
디지털 세상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필요로 하고, 그 감성은 종이 책 같은 물리적 경험을 통해 이어집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종이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계속 있으리라 봅니다. 그 안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면서요.
우리는 메타버스와 같은 디지털 세계에서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텐데, 그 안에서 아날로그적인 감성이나 물리적인 경험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요? 가상현실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우리가 종이책처럼 손으로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갈망은 더 커지지 않을까요?
디지털과 아날로그, 이 두 가지가 충돌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우리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