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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엘 Sep 28. 2024

글과 책을 너머 기록의 이유

D-11 , log

글을 쓰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한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책을 읽는 것을 통해서, 아이디어가 발견되기도 하고, 때로는 아이디어가 합쳐져 새로운 무엇인가가 생겨나기도 한다.


뭐라도 쓰자..라는 생각으로 로그를 올렸었는데.. 글쓰기에 집중하고 빠져들기 위한 로그라는 이야기를 듣고, 집중을 시작하기로 했다.


미팅을 통해서 다시 한번 읽게 된 책, 너무나 유명한 책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한 장을 넘기는 것이 어려운 책은 오랜만이다.


이 책은 유대인 학살 현장인 홀로코스트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생존한 생존자가 쓴 책이다.


대학교 때, 이 책을 과제로 받은 적이 있었다, 사실 그때는 독후감을 써야 해서 이 책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읽어나갔다. 딱 한 줄의 결론은! 대단하네! 였다. 너무나 나의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였기에, 몰입할 수도, 생각해 볼 수도 없었다.


장애를 겪고, 다시 연 그 책에선, 다른 메시지가 들려왔다. 마치 책이 살아 숨 쉬듯 나에게 말을 건넸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책을 읽다, 다시 곱씹고 곱씹는 문장들이 줄을 지었다.


죽음의 두려움 앞, 그 앞에 서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 그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져, 더 이상 대학 때 마주했던 책의 깊이가 아니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 페이지를 곱씹고 곱씹다 보니, 2일째 같은 페이지에 빠져 있다.


수용소 그 상황은 짐작해 볼 수 없지만, 몸에 갇힘을 경험한 사람은 그 마음을 안다. 자유롭지 않은 몸 안에 갇혀 산다는 것은,


자유가 있어도 선택하지 못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족쇄다.

극한의 상황에 사람이 처하면, 막 살려달라고 할거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극한 상황이 계속되면 가랑비에 옷 젖듯 무감각해진다. 그 말은 내 삶에 대한 연민도, 원망도, 생존에선 작용하지 않는다. 살아야 한다! 혹은 죽자!라는 두 선택 아래! 뭐든 하게 된다. 마치 죽기 위해 내가 재활을 한 것처럼.. 가장 비참하다고 생각한 것도 이제와 생각하게 된 것이지만, 그땐 그냥 아무 생각도 할 겨를 따위는 없었다.


이 책을 다 보고,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나에게 일어난 일에 어떤 정당성을 부여할까?


이 책 머리말에 저자는 “내가 겪은 이 일을 기록해 두어야 할 책임을 느꼈다 “라고..


그 말에 책임을 나 또한 느끼게 되었다. 왜 써야 할까?라는 이유의 답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 죽음 밖엔 답이 없다고 하루하루를 죽음을 그리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


경험한 자이기에 쓸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이니.. 이 여정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몰라도, 확실한 것은 “희망은 어떠한 순간에도 빛을 발한다는 것” 이것 하나는 전할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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