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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배 Oct 22. 2023

벤츠 타고 파출부 나가는 여자 11

첫 출근










'운중동 00 빌라 403동 201호'


'집주인 번호 010 - 0000 - XXXX'


'9시-1시'


'7만 원'





첫 출근은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70평형 정도 되는 빌라였다.







입구 경비실에서 어딜 가냐고 물어 동호수를 댔더니







"... 000 회장님 집?"


하더니







'무슨 일로 왔냐고 하면 뭐라고 답해야 하지? 벤츠 타고 청소하러 왔다고 하긴 좀 그런데...'


'파출부라고 해야 되나 가사 도우미 라고 해야 되나?'



수현 머릿속이 오만가지 생각을 하느라 복잡해 터지려는데 나이 든 경비 아저씨는 귀찮았는지 회장님 집에 자주 드나드는 벤츠와 헷갈렸는지 무튼 방문 목적에 대한 대답을 생각해 내느라 골머릴 앓고 있던 수현이 무색하게 방문 목적도 묻지 않고 그냥 차단바를 열어줬다.








어젯밤 요란스레 찾았던 소위 '일복'을 곱게 다려 입고 아들 정민의 양말과 신발을 챙겨 신고는 수현은 드레스룸 깊숙이 숨겨 놓았던 청소 물품 가방을 고이 챙겨서 늦지 않게 집에서 나왔는데, 긴장한 탓인지 너무 서두른 수현은 약속 시간보다 20 분이나 일찍 도착했고, 차 안에서 오늘 같이 일 할 다른 파출부 아주머니를 기다렸다.








약속된 시간은 다가오는데 집 앞에서 만나기로 한 아주머니가 오질 않아 손에 땀이 나기 시작한 수현은 파출 사무실 사장님에게 전활 했는데, 사장은 안 오면 "혼자라도 먼저 들어가라.'라고 말했고 수현은 숨을 죽이고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아.. 네... 저기... 저...."







수현은 순간 정신이 멍해졌던 것 같았다.







나는 누구일까?







누구냐는 질문에 그동안은 '누구 엄마'나 아니면 대학원에선 '대학원생'이었고 시댁을 방문할 땐 '며느리', 친정엔 '큰딸' 그리고 이외의 공간을 방문할 땐 대부분 '고객님'이었던 수현은 갑자기 누구냐는 생전 처음 만나는 사람의 질문에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고 잠시 일시정지 상태에 있다가 겨우 대답을 했다.







"저... 청소하러 왔는데요."







"띠리 리릿~~!"







문 앞에 대문짝만 하게 "0000 교회"라고 붙어있던 현관문이 열리고 지어진지 오래되었지만 큰 평수에 관리가 잘 된듯한 집 거실이 나타났는데 전체적으로 갈색톤이 감도는 차분한 인테리어의 내부는 집주인의 나이와 성격을 보여주는 듯했다.







"어서 와요."







휠체어에 앉은 나이 지긋한 여성분이 수현을 조용하지만 반가운 목소리로 반겼는데 문 앞에 대문짝만 하던 '0000 교회' 마크가 수현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서일까







크리스천이 된 지 얼마 안 된 초신자인 수현은 왠지 하나님이 수현의 첫날 부담을 덜어주시려고 크리스천의 집으로 보내주신 것만 같았는데, 일하러 온 파출부임을 잠시 망각한 수현은 휠체어에 앉은 집주인의 너무도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그간 긴장했던 마음이 급 이완되었고 순간, 순환을 잠시 멈췄던 온몸의 피가 다시 도는 듯한  따뜻한 느낌이 들면서  긴장해 바짝 말라있던 입술에도 혀로 침을 조금 발랐다.







"요즘엔 이렇게 젊고 예쁜 사람들이 다 일을 하러 오네."


"그래 아침은 먹었어요?"






"아 네네 먹고 왔습니다."






"그랬구나... 그럼 우리 집 잘 좀 부탁해요." 






"아 네네."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집주인 할머니의 얘기가 끝나자 이내 부엌에서 누군가 서둘러 나와서 수현을 불렀다.







"아줌마! 혼자 왔어요?


어? 이상하다 내가 두 사람 불렀는데?


우리 집 커서 혼자 못해."







부엌에서 다급히 나온 잔뜩 멋 부린 커트에 현란하고 알이 작은 안경테가 눈에 띄던 여자는 할머니의 동생인지 직원인지 알 수는 없었는데 집주인 할머니와는 달리 앙칼진 말투로 수현을 부르더니 따발총처럼 따다다 다 수현이 할 일을 읊어줬고 수현 손에 청소 도구를 잔뜩 쥐어 주면서 말했다.







"우리 집에 다 있는데 뭘 이렇게 바리바리 싸들고 왔어?"







수현은 무의식적으로 혼자 입주청소라도 가는 듯 청소도구를 잔뜩 담아 온 가방을 뒤로 숨겼고 숏커트 여자가 주는 청소도구를 잔뜩 받아 들었다.







"일단 회장님 쉬셔야 되니까 안방 먼저 하고, 그다음 여기 그다음은 여기 그리고. 어쩌고 저쩌고....."







하도 말을 많이 그리고 빨리 하는 통에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었던 수현은 커트 성격상 못 알아들었다고 되물었다간 또 무슨 된서리를 맞을지 몰라 그냥 다 "네네." 하고는 청소를 시작했다.











안방엔 아까 그 할머니인 듯 보이는 여성분의 사진이 많았는데 세계 각 곳을 다니며 사업을 전개하는 듯 보였다.






아프리카 등 오지에  도움을 주는 일도 하셨는지 수현이 관련한 사진을 보며 흐뭇해하던 중 현관이 소란스러웠다.







"아이고 죄송해요 차가 좀 막혀서요 그리고 여기가 버스 정류장에서 너무 멀어서 아주 그냥 걸어오느라고 욕봤네요. 욕봤어. 정류장에서 너무 멀어."







수현과 같이 일하기로 한 또 다른 파출부 아주머니가 뒤늦게 도착해 묻지도 않은 지각 사유를 자진 납세하느라고 현관이 소란스러웠던 것인데 수현도 청소하던 걸레를 내려놓고 나가 아줌마를 반겼다.







"안녕하세요 오늘 같이 일할 파출부예요...."







수현이 그다음 말을 이어가기도 전에 아까 그 숏커트가 어디선가 나타나 또 말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아줌마 알았고요. 옷 갈아입을 거죠? 여기서 갈아입고, 아줌마는 화장실 청소해. 우리 집 화장실이 3갠데 화장실에 민감하니까 신경 좀 써줘요. 청소한 다음에 물기 다 제거하고 걸레는 저기 있어요."







수현은 소위 같은 소속사 직원과 통성명도 하지 못한 채 다시 안방에 들어가 청소를 다시 시작했는데 아까 수현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었던 회장 할머니의 각종 액자와 표창장 등 업적들을 더욱 깨끗이 닦고 정리하는 등 정성을 다했다.







이어서 다음 방, 또 다음 방.... 숏커트 여자가 지시하는 대로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연거푸 청소를 했던 수현은 마스크 안으로 흘러내리는 땀이 너무 많아 그 땀을 닦으려고 처음으로 허리를 펴고 거울을 봤는데 거울 속 여자는 처음 본 여자였다.







어제까지 수현과 살던 여자 정수현이 아닌 땀에 쩔고 헝클어진 머리를 한 여자는 조금 작은 듯한 티셔츠 역시 땀에 쩔어 얼룩져 있었고 얼굴엔 마스크 지국이 선명한 채로 서있었는데 서로 조우하는 시간도 잠시







"아줌마!"





밖에서 숏커트가 부르는 통에 수현은 마스크를 다시 쓰고 급히  방을 나갔고 숏커트가 뭐라고 뭐라고 또 블라블라 지시를 하는 것 같았으나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고 아까 거울 속에 있던 여자 얼굴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맞아 난 여기 청소하러 왔지. 그럼 땀에 쩔도록 열심히 해야지 그 모습이 맞아.'







수현은 충격받은 자신을 다독였고 숏커트가 말한 손자국 가득한 냉장고 문짝을 닦기 시작했는데 손은 문짝을 닦고 있으나 머릿속엔 아까 그 여자가 떠나질 않았고 일종의 유체이탈 상태로 수현은 첫날의 청소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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