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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배 Oct 22. 2023

벤츠 타고 파출부 나가는 여자 10

새로운 시작











"경력이 얼마나 되세요?"


"올해로 3년 차입니다."





수현은 누구 말마따나 "입만 벌리면 거짓말이 자동으로" 나왔다.







3년은커녕 3주도 안되었으면서 2년은 적고 4년은 양심에 찔렸는지 언젠가부터 3년이 입에 붙어 "3년", "3년" 거리고 다녔고 어느새 본인도 자신이 이 업계에 들어온 지 3년 차 베테랑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어딜 가나 물었다. "이 일 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 아마 수현의 외양이 영 미덥지 않아서 일지도 몰랐다.








도산공원 앞에서 유명한 헤어 원장에게 매번 65만 원씩 주고 하는 머리나 평소 황잣을 달고 살고 염색 한 번을 안 한 데다 자연 갈색인 머릿결은 숨길 수가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시국이라 마스크를 항시 쓰고 있어도 그 어느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 얼굴은 확실히 감출 수 있는 작금의 상황을 수현은 진심 감사해했다.








게다가 언젠가부터 네일컬러를 바른 손이 경망스러워 보여 수현은 간단한 정리하고 영양제바를 뿐 컬러를 안 바른 지 좀 되었었는데 또 그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수현은 별 것을 다 감사해하는 자신이 낯설고 신기했다.








그런데 정작 그런 몸뚱이를 가릴 옷이 문제였다. 옷성애자인 수현에게 막 입는 옷이란 없었고 편한 옷은 그저 실내복뿐이어서 당장 일할 때 입고 갈 옷을 조달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는데... 이게 쉽지 않았다.











수현은 근 한 시간째 옷장 앞에서 씨름을 하고 있었다.







옷장을 아무리 뒤져도 일하러 나갈 때 입을 만한 옷이 없었다.







옷성애자인 그녀에게 현재 가장 편한 옷은 '스텔라매카트니 Stella McCartney'로고가 여기저기 붙은 아디다스 운동복 밖에 없었는데 쭉쭉 잘 늘어나니 활동하기 편하고 오염이 묻거나 땀이 나도 그날그날 세탁하면 그만이고 금방 마르기까지 하니 하등의 나쁠 것이 없었다.







그러나 몸매가 쓸데없이 드러나기도 하고 "일하러 온 아줌마가 저런 옷을 입고 일하러 왔다. 제정신이냐?"며 욕을 바가지로 먹고 쫓겨 날 수도 있을 것 같아 일하는 복장으로는 절대 적절치 않다고 판단한 수현은 그 후로도 한참 옷장 안을 뒤적거렸는데, 이건 뭐 왠 간한 중요 자리 참석 때보다 더 어렵고 시간이 더 걸리니... 웃기는 노릇이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주지도 않고, 일하는 본인도 편하며 그날그날 세탁해 말리기도 편한 옷이라...'






수현이 그녀의 아가들을 중고명품샵에 그렇게 갖다 팔았어도 아직 수현의 소중한 아가들이 다수 남아있는 옷장에서 그런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키는 옷을 찾기는 쉽지 않았는데 고군분투하던 그녀의 눈에  구석에 처박힌 커다란 쇼핑백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아들 정민 옷을 정리하다 옷 재활용 박스에 넣으려고 모아뒀다가 깜박한 것들이었는데 수현은 거길 뒤져  자신에게 맞는 티셔츠와 바지를 두세 벌 찾아내고는 진심 기뻐했다.







'이게 뭐라고...'







그저 막일하러 나갈 때 입을 '일복'을 찾는 것일 뿐인데 거의 한 시간째 고군분투 중인 이 어이없는 상황에 수현은 피식 웃음이 났다.








정민의 티셔츠와 반바지 그리고 수현의 얼굴을 거의 덮는 마스크에 정민어릴 적 신던 나이키 코르데즈 운동화까지... 수현은 내일 있을 파출부 첫날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준비했고 거기에 신분노출을 완벽 차단할 안경까지 착용했는데, 안경 브리지에 선명한 샤넬 로고가 영 거슬렸다.







고급 티타늄 안경이라 제일 가벼워 이 안경이 가장 적합했기에 쓰긴 했는데 샤넬 로고가 너무 센터에 짜잔~~ 하고 있어 혹시 대화 시에 고객님들이 불편해하실까 봐 수현은 잠시 망설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내



 '파출부 아줌마가 쓰고 온 안경이니 사람들이 당연히 짝퉁 "채널"인 줄 알겠지.' 


하고 씩씩하게 자체 검열을 끝낸 수현은 어젯밤  인터넷에서



"일을 잘하시는 분들은 본인 고무장갑을 가지고 다니신다."



는 글을 또 읽었던 터라 3일도 안된 주제에 3년 차라고 뻥을 씨게 친 상황이라 최대한 베테랑스러움이 생명이므로 고무장갑도 두어 개 챙겨 주방을 나왔다.







그러나 문득 예전에 수현집에 오시던 이모님이 여분으로 수세미랑 매직블록 그리고 뾰족한 꼬챙이 등도 가지고 다니시던 것이 생각난 수현은 주방에 다시 들어가 그 비슷한 것은 다 때려 넣었는데, 무슨 입주청소라도 나가는 양 가방에 잔뜩 챙겨 넣은 수현은 식구들 못 보게 가방을 드레스룸 안쪽 깊숙한 곳에 단디 숨겨 놓고는 내일 첫 출격을 위한 준비를 마쳤고  조금 비장한 마음이 들었다.











몇 년 전 여동생이 세상을 떠났을 때처럼 수현은 그녀의 매장을 접은 후 한참을 앓았다.







그러나 여동생이 죽은 후엔 술로 나날들을 보냈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수현은 술이 당기지도 않았고 자주 멍했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그녀로 하여금 "넌 술을 마실 자격도 없어!"라고 말하는 듯했다.








아들 정민의 국제학교 행을 위해 수현이 고이 모아둔 돈이 꽤 되었을 무렵, 수현은 자주 다니던 청담동 편집샵에서 알게 된 '은수'와 자연스레 친해졌는데, 서로의 아픔을 조금씩 나누다가 둘의 고단한 삶을 한꺼번에 해방시켜 줄 방안으로 함께 조그마한 사업을 시작했던 둘은 금세 번창할 수는 있었으나, 알고 지낸 시간의 길이만큼이나 얄팍했던 서로에 대한 신뢰는 작은 충격에도 산산이 부서져버려 이내 사업도 중단되었고, 수현이 투자를, 은수가 운영을 맡았던 탓에 폐업과 동시에 수현의 투자금은 결국 공중분해된 상태였다.








그간 집안을 깔끔하게 유지하거나 식구들에게 인스턴트 한 번, 배달 음식 한 번  시켜 먹이지 않고 자연 식재료만 고집하는 등 최고의 식탁을 제공하기 위해 무지 애써왔던 것들을 비롯, 양쪽 집안의 대소사 챙기기나 어른들과의 원활한 관계유지에도 수현은  매번 본인의 최선을 다해왔으나 식구들에게는 그것이 큰딸이자 외며느리인 수현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어서 크게 관심이 없었으며 당연히 칭찬받을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녀 삶의 질 증진을 도모하기 위해 계획했던 갖은 플랜들마다 그녀 양가 식구들은 관심이 폭발했고 그녀의 각종 플랜들은 무참히 폭격을 당하곤 했었는데, 아이와 함께 유학길에 오르겠다는 계획에 시어머님은 남편에게 이혼을 종용했으며  시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보내달라는 그녀에게


"네가 대체 거길 졸업하고 뭘 할 수 있는데?" 


라며 진심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셨었다.








친정 역시 만만치 않았는데  "로스쿨에 가서 변호사가 되겠다"는 수현의 말에 친정아버지는



"네가 변호사가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라며 딸의 법조인 진출을 살신성인의 자세로 막으신 바 있고,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말에 "교수들이 다 너랑 동갑일 텐데 이제 가서 뭘 하겠냐?"라고 비웃는 남편 등 수현의 계획은 다 식구들에게 웃음거리였으며 그저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고 다니철없는 소비 성애자로 취급되곤 했었다.








그들이 주로 칭찬하는 여자는 따로 있었는데, 집에서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 꼬박꼬박 모으고 절약을 생활화해 남다른 재테크 실력으로 어느 날 목돈을 척하고 내놓는 여자나 아니면 남다른 능력으로 남편보다 더 벌어 아무리 큰소리쳐도 무한 용서가 된다는 전설적인 여자들... 뭐 주로 이런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저도 그러고 싶어  마음은 굴뚝같고 각종 공부도 열심히 하는 등 좌우지간 노력은 가상한데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상황이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모는 집에 있는 여자 같지 않긴 한데  돈은 한 푼도 못 버는... 일종의 기형적인 캐릭터였던 수현은 그들에게 동네북이었고 자주 아팠다.










양철북은 노벨상이라도 받았지 더 이상 동네북은 싫었다.







집에선 멍멍이 무시를 당하지만 수현도 나름 대한민국 최고의 여대를 나왔으니 그렇게 심한 모지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사회 생활하면서 전 세계 다양한 문화를 접한 진귀한 경험들이 롱런하는 큰 자산이 되는 것을 여러 번 느꼈던 수현은  아들 정민을 어릴 적부터 국내외의 좋은 곳들을 데리고 다니며 되도록 많은 경험을 시켜 주려고 노력하는 반면,



"어릴 때 데리고 다녀봐야 크면 다 잊어버리는데 그까짓 게 다 무슨 소용이냐?


 차라리 그 돈 모아서 컸을 때 주면 학비나 사업자금에 쓰이는 등 요긴하게 쓰이기나 하지


저 여행 가고 싶으니까 애 교육 운운 하며 가만히 있는 애를 팔아먹는다."



는 식의 매사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는 등 연애시절 그리도 죽이 잘 맞아 매일매일 만나고 만나도 또 보고 싶던 남편은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사망한 듯 보였다.







이외에도 돈 제공자가 싫어하는 '아토피인 아이에게 비싼 유기농 음식을 먹이는 것'이든 좋은 교재, 좋은 학교 이 모든 것을 아이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돈, 돈, 돈"이 필요하므로 수현은 마침내



 '나도 그놈의 돈 좀 벌어봐야겠다.'



라고 생각했고 그때 마침 은수를 만났고 야심 차게 사업을 시작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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