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혼자 꾸역꾸역 무식하게 이겨내서였을까 그 긴 터널을 나는 너무도 오랜 기간을 걸쳐 지나왔고 ‘이 어두운 터널을 내가 나답게 벗어날 수 있는 건 공부밖에 없다’는 누가 봐도 적어도 내겐 다소 생뚱맞은 감이 없지 않은 판단 아래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진심, 팔자에도 없는 ‘공부’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의 공부는 특정 과목의 경계도 깊이의 제한도 없었다. 처음에 실은 로스쿨을 목표로 공부를 시작했었는데 내게 어울리지도 않게 난데없는 ‘로스쿨’이 튀어나온 이유는 당시 나라가 국정농단이니 뭐니 하는 이슈로 좀 시끄러운 시국이었는데 그 상황을 지켜보다 보니 ‘법을 제대로 공부해 정의로운 곳에서 사회에 도움이 좀 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였다.
두 번째 이유는 참 지금 생각해도 슬픈데 당시 아무에게도 지지받지 못하던 ‘뒤늦은 자아 찾기 여정’의 고달픔과 가족을 잃은 슬픔에 짓눌려 지하 100층 어딘가에서 날이면 날마다 영혼 없는 눈을 하고 부유하던 내가 (적어도 내겐) ‘아주 어려울’ 공부에 빠져 있다 보면 현실을 잊고 공부에 좀 더 집중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심적 안정의 연착륙’이 가능할 것 같다는 계산에서였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공부는 내게 숨을 쉴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로스쿨 입학시험은 짧은 시간 안에 주어진 지문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지문 내內 문장들 상호 간의 논리성이나 적법성 여부를 신속하게 파악하여 문제를 풀어내야 하는 것이었는데 법 적용에 분야적 한계가 없듯 지문의 범위도 한계가 없어 말 그대로 학문의 전 분야를 다 공부해야 하는 것이었다.
특히나 과학 관련 지문을 읽을 때 기초지식이 부족함을 많이 느꼈던 나는 중학교 물리, 화학부터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그 공부가 점점 칸트와 헤겔 등 철학 분야까지 가더니 노장사상(老莊思想)을 지나 어느덧 반야심경(般若心經)에 다다르면서 신기하게도 내 마음에 서서히 평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간 뒤늦은 자아 찾기의 여정에 심신이 지쳐있는 데다 아토피인 아들 음식 문제로 “아무거나 잘 먹어야지 네가 예민하게 굴어서 애가 더 심해진다”라고 걸핏하면 나를 비난하는 남편과 음식 먹을 때마다 다투기 일쑤였던 일상, 또 저축엔 이른바 ‘자타공인 잼병’ 임에도 불구하고 남편 말마따나 “돈도 못 벌면서 눈만 높았던” 터라 매사에 ‘돈 개념’이 없다고 욕을 좌우지간 바가지로 먹으면서 살았던 탓에 장기간 끝도 없는 ‘자기 비하’, ‘자존감 상실’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던 나는 신기하게도 나 같은 ‘날라리 사람’에게는 당연히 밑도 끝도 없이 불친절할 거라고만 생각했던 이른바 ‘학문의 세계’에서 뜻밖의 친절을 맛보게 된다.
그렇게 나의 공부는 결국 내게 내가 20대 때 봤던 ‘색즉시공(色卽是空)’이 ’ 임창정 하지원 주연의 섹시 코미디 영화 제목‘ 만이 아니라 원래 불경 〈반야심경(般若心經)〉에 나오는 ’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아는 데까지 이르게 하셨다.
이 말은 결국 ’ 눈에 보이는 것‘ 색(色)이란 모두 공(空)함 즉 ’ 없음‘과 같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예를 들어 가령 우리가 ’ 종이에 불을 붙여 태우면 모두 타버려서 우리 시각에서 종이는 사라지만 존재가 아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허공에 에너지로 변화하여 그대로 존재한다 ‘는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보존 법칙>처럼 ’ 내 앞에 특정한 대상을 우리들은 대상의 현재 그 모습이 그 대상의 본질이라고 생각해 집착하고 연연하지만 실은 그것은 광범한 연계(連繫) 위에서 그때그때 다르게 나타나는 대상의 여러 가지 모습 중 하나일 뿐 특정 대상의 절대 본질이 아니므로 언제든지 또 다른 것으로 변모하여 사라질 수 있는 각각의 대상에 대한 인간의 순간 집착 자체가 무의미하다 ‘는 말이다.
어쩌다 참 어울리지도 않게 이런 사실까지 알아버리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던 나는 이후 나 혼자 막 세상에 대해 이른바 ’ 해탈의 경지‘에 올라 몸은 여기 현세에 있으나 마음만은 현실과는 저~~ 멀리 한참이나 동떨어진 세계에 조용히 은둔하게 되면서 어느새 ’ 마음의 안식‘이라는 것을 차츰 찾게 되었다. (참고로 난 불교 신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만 종교를 떠나 세상의 모든 이로운 말들은 다 저 나름대로 가치가 있으므로 종교가 다르다고 무조건적 배척을 하기보다는 잘 알아보고 좋은 점은 수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현세의 지인들과도 자연스럽게 인연이 끊어지게 된 나는 어느새 영문도 모른 채 온몸에 각종 알레르기를 비롯 병원에 가도 원인 모를 병을 않으며 어느새 "나는 누구인가, 정말 나는 누구고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걸까, 또 산다는 건 대체 뭔가." 등등 세상 과거엔 관심도 없었고 혹 누군가 그런 질문을 한다면 코웃음 치며 "뭐냐, 너 오늘 대체 왜 이리 심각하냐."며 크게 비웃었을 질문들을 매일 밤 아이를 재우고 어둡고 껌껌한 방에서 혼자 수도 없이 해대게 되면서 기약 없는 소위 '침잠(沈潛)'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런 침잠의 시간은 내게 보약 같은 시간이었다.
세인(世人)들이 본다면 자칫 고리타분해 보일 수도 있는 나의 뜬구름 잡는 듯한 질문에 진정한 답을 찾고자 정처 없이 학문의 세계를 떠돌았던 그 시간들은 강남역인가에 있던 로스쿨 학원을 그 추운 겨울날 새벽마다 열심히 댕기기를 한 달 여를 하고는 코로나가 터지고 갑자기 다리가 부러져 깁스를 한 데다 난데없이 귀밑 침샘이 복어처럼 부어올라 이 병원 저 병원 찾아다니는 등 마치 내 로스쿨 진학을 온 세상이 뜯어말리나 싶을 정도로 한꺼번에 악재가 겹치며 자연스럽게 좌우지간 여러 가지 일로 결국 로스쿨 진학을 포기하고도 계속되었었는데....
일정 시간이 지난 지금 그 과정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며 좌충우돌했던 그 시간들은 어느 하나 버릴 순간 없이 지금 내 몸에 차곡차곡 쌓여 있으면서 오늘의 나를 이루고 있고 나는 이 기간 다져놓은 몸 근육 마음 근육을 바탕으로 힘을 내어 대학원에 진학해 나의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