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 박사님이 이번에는 틀리신 것 같습니다.
천둥벌거숭이
얼마 전 유튜브 알고리즘 친구가 내게 '금쪽 상담소'라는tv 프로그램을 소개해주었다.
오은영 박사님의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은 참 같은 육아맘으로써 공감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고충들을 다루며 내 맘을 움직여 정말 울고 웃으며 프로그램 내내 출연자와 깊숙이 감정이 동화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청했었는데 이 프로그램의 어른 버전이라니.... 보기도 전부터 살짝 설레어하며 큰 기대를 하고 나는 동영상을 클릭했다.
여러 유명인들의 에피소드들이 줄지어 뜨는 통에 본의 아니게 짧게나마 다양한 유형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중 자우림의 김윤아 님과 동안 치과의사 이수진 님의 사연이 특히 마음에 남았다.
자우림의 김윤아 님과 비슷한 시기인 90년대 중후반에 걸쳐 대학을 다녔던 나는 이제 '엄마 아빠가 원하는 대학 들어가 줬으니 나는 이제부터 내 맘~~~ 대로 살겠다'며 마치 그날만 살고 죽을 사람처럼 살곤 했다.
기분이 좋으면 기분이 좋아서 또 우울할 때면 우울해서 좌우지간 내 멋대로 조금만 '오늘은 학교가 안 땡긴다~'하는 날엔 학교는 딱 정문 앞까지만 갔다가 강의실엔 들어가지 않고 그때 우리 학교 앞에 '그린라이프 비디오방'이라고 당시 엄청 유명하던 '미고' 빵집 위층에 여학교 앞이라 그랬는지 '여성 전용 비디오방'이 있었는데 여성 전용이라 그런지 참 깔끔하고 나름 쾌적했던 그곳으로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출근 아니 출근은 아니고 등교 아니 등교도 아닌데 좌우지간 마치 학교가 아니고 그곳에 적을 둔 여자애 모냥 뻔질 들락거렸었다.
가는 길에는 또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었는데 당시 떡볶이와 순대를 너무도 사랑했던 나는 당시 무진장 유명하던 우리 학교 앞 지하철역 근처 '미미 떡볶이'(맞나? 늙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에서 지금은 밀가루 냄새가 거슬려 먹지도 않는(개취다. 아이를 낳고 체질이 변해 이제는 몸에서 밀가루를 거부한다. 그래도 밀가루 성애자 및 관련 산업 종사자들께 불편하셨다면 사과드린다) 밀가루 떡볶이 일 인분을 내 사랑 허파를 섞은 순대와 포장해서는 비디오방으로 가곤 했다.
그때는 애석하게도 지금처럼 식품 포장 용기나 뭐 그런 건 없고 그저 박스 테이프든 뭐든 암꺼나 좌우지간 우리가 가게에서 물건을 사면 담아주시던 푸르스름한 만능 비닐을 툭 뜯어 뜨거운 떡볶이를 듬뿍 담아주시곤 했었는데 비디오방에 도착해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떡볶이를 즐겨보려고 비닐을 열 때쯤이면 아주 그냥 바스락거리던 비닐이 뜨거운 떡볶이 국물에 노골노골해져가지구는 비닐이 떡볶이 국물인지 떡볶이 국물이 비닐인지 모르겠는 상황이 되곤 했다.
관련 분야 전문가가 아니라 자세히 알 수는 없다만 무튼 아침에 엄마가 차려준 건강미 물씬 풍기던 밥상은 뜨는 둥 마는 둥 나왔으면서 뜨거운 떡볶이의 열기로 비닐에서 녹아 나왔을 이름 모를 각종 유해물질과 완벽하게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된 녹진한 떡볶이 국물에 나는 순대도 찍어 먹고 내 사랑 허파도 찍어 먹으면서 좌우지간 아주 맛나게 아점을 즐겼었다.
그렇게 허기를 달래고 나면 과 친구들 생각이 났는데 ‘얘들은 어디서 뭣들하고 있나~~ 수업은 잘들 듣고 있나~~.’ 궁금해져 (그 당시에는 지금 생각하면 참 민망하지만 우리는 간혹 움직이면 바로 끊겨버리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기능을 탑재한 시티폰이 있기는 했었고 2학년 말인가 3학년 때쯤인가엔 뭐 그 유명한 ‘모토롤라 스타텍’도 나오고 했지만 무튼 대학 1, 2학년 때는 대부분 삐삐가 대세였다.) 삐삐를 쳐보면 종종 그분들 역시 방 하나씩을 차지하고 앉아 순대랑 떡볶이를 먹으며 ‘조조早朝 비디오’를 관람하고 계시곤 했다.
역시 끼리끼리 논다는 옛말은 틀리지 않는 건가... 그런데 지금은 또 “돈도 못 버는 게 눈만 높아가지고 남편 등골 오지게 빼먹고 산다.”라고 욕먹는 것이 일상인 전업주부 ‘나’만 빼고 다들 그 누구보다도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으로 잘들 살아가고 있으니 이쯤에서 결국 ‘열정적으로 잘 노는 애들이 뭐 일도 사랑도 뭣이든 열정적으로 열심히 하더라.’ 정도로 아름답게 마무리해 보겠다.
그러다 점심시간이 되면 공부는 안 했어도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우리가 또 점심은 때맞춰 먹어 줘야 되니까 당시 우리 학교 앞에 김치 수제비가 끝내주는 집이 있었는데 날이 쌀쌀하던 날엔 수제비를 또 더운 날에는 ‘율촌 칡냉면’인가 시커멓지만 참 맛났던 냉면을 점심으로 신나게 먹어주곤 했었다.
그리고 후식은 압구정동에 ‘케익하우스 윈’이라고 ‘초코슈’가 유명하던 빵집이 있었는데 그 맛이 또 기가 막히는지라 우리는 밥을 먹고는 뭔가에 홀린 듯 우르르 택시 하나에 꾸역꾸역 끼어 타고는 초코슈를 먹으러 신촌에서 압구정까지 부웅~ 쏘곤 했었다.(이렇게 아~~~ 무 생각 없이 학교를 댕겼어도 나만 빼고 다들 틈틈이 공부를 했는지 어쨌는지 부끄럽게도 나만큼 대단한 학점을 가진 친구는 없었다)
무튼 이렇게 내가 참으로 등짝 좀 맞아줘야 되는 대학 생활을 보냈어도 부모님은 큰 타박을 하진 않으셨다. ‘저 천둥벌거숭이 같은 것이 그래도 장하게 소위 ’ 시집 잘 간다는 학교‘를 그것도 재수도 안 하고 어떻게 가긴 갔네.’ 하면서 그저 대견하게 생각하시는 눈치였다.
그렇게 대견한 딸은 대견하게도 자가발전 기능이 날 때부터 탑재돼 있었는지 노는 데는 방전이 없었다. 그렇게 맨날 싸돌아다니다 늦게 들어오니까 부모님은 결국 통금시간을 만드셨는데 그 통금시간을 어겨 전날 한차례 혼쭐이 나고도 다음날 또 어기는 날 보고 아빠는 "네가 사람이냐."라고 하셨었다.
내가 생각해봐도 당시 바람직한 심지어 '지성의 요람에 적을 둔' 20대 초중반 여자 사람의 모습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된다.
그런데 이렇게 모범적인 삶을 살지도 못했던 칠푼이 어느 전업주부 아줌마가 감히 대 오은영 박사님의 금쪽같은 솔루션에 한마디 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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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똑똑하고 성실하고 좋은 성품을 가지신 데다 따뜻한 가족들의 지지와 도움 등 서포트 속에 열심히 특정분야 전문가로서의 커리어를 쌓아 오신 선생님 같은 대단하신 분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잘난 것도 없고 크게 내세울 것도 없지만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꼭 지켜야만 하는 엄마라는 자리를 지금도 묵묵히 지키고 있는 대한민국에 그저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러나 슬프게도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한다고 하는데 결국 결과는 중간도 못해서 맨날 이리저리 치이기 십상인 엄마들을 대표해서 말이다.
혹 오은영 박사님의 빅팬들은 "네가 뭔데 감히 우리 대 오은영 박사님의 의견에 토를 달아!!!" 하면서 버럭 화를 내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뭐 평생을 욕을 먹고 살아와서 이제는 관련 분야 맷집이 동급 최강이므로 전혀 개의치 않고 앞으로 여러 장에 걸쳐 한 평범도 못한 전업주부 아줌마의 관련 분야 절대강자 전문가 솔루션에 대한 지극히 겁 없고 개인적이며 주관적이기 그지없는 반대 의견을 조심스럽게 펼쳐놔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