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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Jul 10. 2024

아카디안 단상

부천시청 어울마당.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아카디안.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왜를 고민하게 하는 무난한 종말(2.0)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본 첫 영화이자 장르 영화의 의의는 무엇일지 생각하게 된 영화이다. 굉장히 평범하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괴수에게 인류는 거의 절멸하고 주인공인 형제와 아버지가 고립된 곳에서 괴수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종말 영화. 영화를 보면서 안 놀랬다면 거짓말이다. 이야기가 뻔하다 하여 괴수가 언제 어떻게 튀어나오고 그 과정에서 어떤 액션이 결합되어 어떤 사건으로 화할지는 알 수 없으니 당연하다. 문제는 그렇게 모든 사건이 지나간 다음이다.

출처. 왓챠피디아

괴수는 형제와 소녀에 의해 그러니까 다음 세대에 의해 처리된다. 완벽하게 처리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산혈해의 밤은 지나갔고 살아남은 이들이 있다. 그들은 간밤의 또다른 생존자를 찾기 위해 계곡과 골짜기를 둘러보러 떠난다. 영화는 끝이 났고 관객은 객석에 남았다. 자, 그럼 관객에게 남은 것은 뭔가? 이른바 장르물이라 하는 서사에서, 뻔하디 뻔한 이야기에서 관객은 약간의 장르적 재미만 느끼면 끝인가? 궁극적으로 장르적 재미, 그러니까 독자건 관객이건 그 텍스트를 보는 누군가의 흥미를 일으키는 재미는 왜 있는가? 매번 느끼지만 이 지점을 스스로 해결하지 않는 이상 좋은 텍스트가 나오긴 어렵다고 본다.

출처. 왓챠피디아

영화의 제목인 <Arcadian>은 '목가적 이상향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단다. 영화는 어떤 산맥의 계곡 혹은 골짜기를 배경으로 이따금 컨트리 장르의 배경음악이 곁들여져 진행된다. 근데 왜? 두더지, 개, 인간 등이 뒤섞인 듯한 괴수가 나오고 이들은 밤에만 활동할 수 있으며 인간을 먹는 듯한데 단순히 먹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행위도 하는 듯하다. 근데 왜? 영화에서 아버지는 다음 세대인 아이들의 생존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부성애를 발휘한다. 근데 왜? 여기서 나오는 왜들은 이 영화에서 세상의 어떤 모습을 종말이라 하고 싶은지, 그 종말이 지금 현재 여기에서 영화를 보게 될 관객에게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지 등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의미이다.

출처. 왓챠피디아

장르적 재미는 장르를 활용한 서사로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텍스트의 세계는 세계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불완전한 세계이나 동시에 세계를 모사하고 있기에 의미가 있다. 장르는 텍스트의 세계를 보게 될 이들에게 더 효과적으로 세계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즉, 구체적이지 못한 세계와 장르적 재미는 그저 스쳐가는, 그러니까 아무런 의미 없는 외침과 다름 없다. 목가적 이상향이라는 제목, 발생 원인도 모를 의문의 괴수, 생존하려는 인간, 형제의 갈등, 아버지의 희생과 부성애 등이라는 수많은 서사적 요소가 포스트아포칼립스 괴수 장르라는 틀에 얼기설기 들어간 모양새이다.

사실 영화제이기에 이정도만 해도 선방이긴 하다. 관람하고 나오면서 이렇게 극단적으로 무난한 영화를 첫 영화로 보다니 대체 뒤에 보게 될 영화들은 어떨지 가늠이 안 되어 더 걱정되기도 했다. 그것과 별개로 근데 이 영화를 왜 보고 있어야 했지, 영화를 만든 제작진의 이야기를 왜 듣고 있어야 했지라는 의문이 계속해서 든 것도 사실이다. 장르 영화라는 이름이 너무 가벼워지지 않길 바라는 입장에서는 아쉬운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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