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을 달리하면 배울 수 있을지 몰라.
(p.113)
새로운 사고방식이 절실했다. 어쩌면 세상을 식물들의 관점에서 보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식물의 입장이 되어보면 식물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식물의 세계에 절대 정착할 수 없는 이방인 입장에서 나는 얼마나 그들의 내부에 접근할 수 있을까? 나는 우리가 원하는 세상에 식물이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라 식물들의 세게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생각에 기초한 환경 과학을 상상해 보려고 노력했다.
- 호프 자런 지음, 김희정 옮김, <랩걸>, 알마, 2022.
어제는 책상으로 변신했다.
나는 동네 어린이 도서관 구석에 놓인 책상이었다. 어제 이른 아침에 도서관을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와서는 내 얼굴을 환하게 닦아주셨다. 반짝반짝 빛이 났다. 아침에 깨끗한 얼굴을 보니, 몇 명의 아이들이 내 얼굴 위에 책을 놓고 읽을까 궁금했다. 아이들이 책을 재미나게 읽으면, 나도 즐겁다. 어제 한 녀석이 무거운 책가방을 내 얼굴에 쿵~! 하고 내려놓더니, 가방에서 수학문제집을 꺼내 내 얼굴 위에 올려놓았다. 아이가 앉은 지 30분이 지나니 내 얼굴은 지우개 똥으로 가득했다. 씩씩거릴 건 나인데, 아이가 지우개똥을 내 얼굴에 그대로 두고서는 씩씩거리고 나가버렸다. 내 얼굴에 잡티가 가득해져서 너무나 속이 상했다. 그 녀석이 다녀간 후로는 그 어떤 아이도 나에게 오지 않았다. 어제 내가 만난 책은 그 아이가 앉기 전 세 명의 아이들이 가져온 송언 작가님의 <장 꼴찌와 서 반장>, 이꽃님 작가의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그리고 이병승 작가의 <검은 후드티 소년>이 다였다. 아이들이 나에게 많이 와서 내 얼굴에서 책을 많이 많이 읽어야 배가 안 고픈데... 너무 배가 고팠다. 내일은 수학문제집을 가지고 온 아이가 나에게 오지 않기를.... 기도했다.
오늘은 신호등으로 변신했다.
아침인데도... 너무 덥다. 뜨겁다. 하루종일 길에서 똑바로 서있을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지친다. 그래도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기쁨이 오늘 하루 나에게 주어졌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내 신호에 따라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 신기하다. 오늘 새벽에 차가 안 다닌다고 빨간불일 때 건너는 한 아저씨가 있었다. 그의 안전을 위해 바로 초록불로 바꿔드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다른 신호등과의 신호체계가 맞지 않아 더 혼란스러워질게 뻔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다. 나의 신호를 사람들이 잘 따르기를 우두커니 서서 바랄 뿐이다. 오늘 하루 땀 뻘뻘 흘리며 서 있다가, 오후에 내릴 소나기로 더위를 가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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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매일매일 다른 것으로 변신해 보면, 이해할 수 있을까?
사춘기 아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