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rlotte Mar 18. 2022

어느것이 다를까요

술을 먹고 정신이 더 또렷해지는 건 왜일까. 몇 시간 채 잠들지 못하고 피곤한 상태로 도착한 여행지에서 마신 술 한잔이, 각성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 갈증과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마시는 거라며 핑계를 대고 급하게 마신 술 때문에 조금은 멍해지는 것 같았는데. 그것도 잠시, 술을 마시기 전보다 더 뚜렷하게 주변의 풍경들이 보였다. 몇 잔씩 연달아 마신 술 때문인지, 오랜 시간 머무른 덕분에 들어올 때부터 마음에 들었던 창가 자리로 옮길 수 있어 다행이었다. 흐린 날씨 탓에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던 해도 온전히 져버린 밤, 바다와 하늘의 경계도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새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구경할 수 있어 절로 술이 더 깨는 듯했다.


좋아하는 재즈음악이 가득 퍼지는 것처럼 새하얀 파도도 어둠 속에서 빛이 나며 퍼지고 있었는데, 얼마나 거센 파도인지. 사진으로는 담아지지 않아 아쉽지만, 눈에는 가득 담을 수 있었다. 딱 한 달 전, 흐려서 거센 파도를 담을 수 있어 좋았던 그 바다. 이번에도 비슷하겠구나, 그때처럼 흐리고, 날씨는 쌀쌀하고. 내가 새로운 걸 경험할 수 있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웬걸. 한 달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별반 다를 바 없지만, 자연은 아닌 듯했다. 초록으로 물들지 않았던 곳들이 생기를 찾기 시작했고, 차가운 회색으로 가득하던 돌담에 예쁜 목련이 웃음 가득 활짝 피었다. 한 달 전과 또 다른 풍경을 마주하며 목련을 따라 피식 웃음이 났다. 혼자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구나. 아니면 그때와는 비슷한 듯 보이지만 또 다른 나일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도 함께였을까.


그렇게 잘 보이지도 않는 바다를 눈에 꼭꼭 담고 있을 때, 좋아하는 음악이여도 제목은 외우고 다니지 않는 나에게도 각인이 된 재즈 한 곡이 흘러나왔다. 그래, 이거면 충분하다. 눈이 스르륵 감기며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만끽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싶은 온전한 내 시간, 그렇게 제대로 숨 쉬는 법을 배워가는 것 같다며 혼자 웃음 지을 수 있는 이 밤. 낯설지만 취향 가득한 공간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지금. 이 공간에서 행복한 나를 남기지 못해 아쉬웠던 찰나는 사라지고, 혼자여서 행복하다- 라고 자신 있게 중얼거릴 수 있는 오늘.


이전 19화 한 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