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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rlotte Mar 20. 2022

정글

10년 후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 모습을 그려보니 당장 지금 살아도 좋을 것 같으면서 어색하기도, 조금 이른 것 같기도 한 삶인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 상상해보니 이르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게 어찌나 반가운지. 항상 조급하게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없는 여유를 만들 줄도 아는 내가 된 것 같아 더 그렇다. 곰곰이 이유를 따져보면 준비가 덜 된 것 같아 그런 거려나. 아직 나는 많은 것들을 책임지고 이끌어나갈 준비가 안 된 것 같은. 물론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해 없던 것까지 끌어내서 잘 해낼 자신은 있지만, 버텨내야 할 힘도 필요한 게 사실이니까. 지금은 어딘가에 묶여서 그것만 보고 살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 때문인 것도 같다.


그 이유를 찾아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자면, 오랫동안 꿈꿔온 일들을 접어두고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180도 변해버린 삶의 패턴이 적응이 되지 않아 한참 헤매기도 했었다. 꿈을 위해서 해야 하는 것들을 나열하고, 매년, 그 후년의 내 모습을 꿈꾸며 의미를 부여하고 그에 맞춰 살아왔던 지난날들에 비해, 목표가 사라졌던 그때의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꿈을 가질 수도 없을 만큼 약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보다도 더 어린 나이였음에도, 지금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게 아닐까. 다른 길로 갔다가 또 길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그때는 돌아올 힘조차 사라져 버릴 것 같은데. 그렇게 나를 믿어줄 힘도, 미래를 상상할 용기도 없어 힘들어했었다.


그렇게 무기력하고 무의미하지만 필요했던 시간들을 버티고 나니 또다시 행복해지고 싶다는 싹이 마음속에서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새싹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몰랐던 터라, 무식하게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기 시작했다. 거창하진 않지만 해보고 싶었던 것들과 지극히 평범한 일상임에도 그동안 나를 위해 보낼 시간이 없어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해나가며 물을 주고, 햇빛을 쐬고, 바람을 맞으러 다니다 보니 하고 싶은 게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뭘 해야 할지 모르던 내 안에서 새싹이 자라 조금씩 커가는 듯했다. 이리 흔들리고 저리 치이며 장하게도 다시 꽃을 피우려 더 많은 햇빛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한 거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어디론가 다시 걸어가고 있었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정해놓고 나선 길은 아니었는데, 행복할 수 있는 것들로 일상을 채우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래서 지금은 준비도 되지 않은, 어색할 것 같은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볼 수도 있게 된 게 아닐까. 다시 오르막길을 앞에 두기도 하고, 미끄러지듯 내리막길을 지나서, 막다른 곳에 도착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때 다시 뒤돌아봤을 때 걸어온 길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으려나. 어떤 빛들이, 바람들이, 스쳐 지나간 것들이 보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단정 지을 수 있는 건 없겠지만, 하나만큼은 분명할 것 같다.


지금도 그렇게 걸어가고 있듯이, 내 행복을 위한 이야기들로 가득할 거라는. 풀내음 가득한 곳에도 들어섰다가, 밤하늘에 가득한 별들도, 흐렸다 빛나는 무지개도 만나고 흙탕물에도 빠지면서 거센 바람에 주저앉을 때도 있겠지만, 결국엔 그 걸음걸음들이 모여 어색해 보이는 내가 있는 그곳으로 나를 데려다줄 거라는, 나를 믿을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이 새싹이 모두 자라 꽃을 피우고, 바람에 자연스레 흩날려 주변에 나만의 향기를 전할 수 있는, 그래서 그토록 바라던 정글을 만들어갈 힘이 가득한 그날엔, 지난날처럼 외롭게 홀로 폈다 지는 꽃이 아닌, 피어나는 향을 함께 나누며 좋아하는 것들과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내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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