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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rlotte Mar 18. 2022

한 숨

가만히 생각해봤다. 여행은 왜 떠나는 걸까.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서- 새로운 곳에서 다른 모습의 나를 발견하려고- 그것도 아니면 힐링을 위해서- 아직도 간단하게 짐 싸는 게 힘든 나는, 이번에도 캐리어에 한가득 짐을 챙겼다. 계획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며칠 전부터고 뭘 챙겨야 할지 적어놓고 챙겨놓았지만 날씨라는 변수 앞에서 내 계획은 무너져버렸다. 갑작스레 내린 봄비가 아직은 이르다며 봄기운을 다 가져가 버린 거다. 따뜻한 여행이 되길 바라고 바랬는데. 미리 챙겨놓은 캐리어 앞에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왜 하필 내가 여행 갈 때 비가 온 걸까. 아쉬운 마음이 가득 찼지만 정말 필요한 것들을 챙겨야 했기에 다시 마음을 비웠다. 그리곤 한쪽에 치워놓은 두꺼운 코트를 다시 꺼내고, 감기에 걸릴까 겹겹이 껴입을 수 있는 옷들을 가득 넣으며 의문이 들었다. 왜 이런 불편함을 감수해가며 여행을 가는 거지.


마냥 설레기만 하지도 않는, 떠나기 전부터 피곤해지는 이 행동들을. 심지어 집을 비우기 전에는 돌아왔을 때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청소를 해놓는 습관이 있어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청소까지 해야 하는 전야제를 치르곤, 늦으면 안 된다는 긴장감에 알람을 맞춰놓은 시간보다 더 일찍 일어나는 것까지. 매번 이렇게 반복되는 패턴에 여행 가는 첫날은 항상 피곤에 찌들어 출발하게 되는 것 같다. 친구가 얘기했던 게 이런 걸까. 대충 하는 게 없는 것 같다는. 사실 내가 스스로를 생각했을 땐 대충 하는 게 참 많은 사람인 것 같은데, 습관들을 나열해놓고 보니 이런 부분에선 또 맞는 것 같기도. 적당히 상황에 맞춰 유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법도 한데, 평소에도 선택을 하는 순간마다 더 좋은 선택은 없을까- 고민하는 나라서, 아마 그건 더 많은 경험을 하기 전까진 힘들듯 하다. 이 글을 보는 누군가는 너무 피곤하게 사는 거 아니냐 할 텐데, 실제로도 엄청나게 피곤하다. 나도 이러고 싶지 않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반대로 살아보려 노력도 해봤지만 쉽지도 않고 마음도 썩 편하지만은 않아 포기했다. 내가 어떤 모습이건, 나를 인정하고 생긴 대로 살아야 행복한 것 같다.


무튼, 그렇게 나는 오늘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겨우겨우 이동하면서도 생각했다. 이번 여행에선 왜 여행을 떠나는 건지 알게 되면 좋겠다고. 도착해서 알코올이 나른하게 퍼지면 알게 되려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깨달을 수 있었다. 거짓말처럼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이었다. 숨을 쉬려고 떠나는 게 여행이구나, 나에겐. 어깨 위에 잔뜩 쌓인 걱정, 고민들을 모두 털어버리고 제대로 숨을 쉬기 위한 시간. 기분 탓인지, 물리적인 작용도 존재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감당하기 무거운 생각들도, 몸뚱이도 가벼워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는 흐린 날씨 탓에 빨리 마주한 구름과 밝은 하늘을 보며 확신했다. 후회도, 속상함도, 좋지 않았던 감정들과 걱정 투성이었던 고민들 없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기회라는 걸. 땅에 발을 붙이고 올려다봤을 땐 우중충하기 그지없던 하늘이 이렇게나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니, 이질감이 드는 것과 동시에 비현실인 것처럼 느껴져 더 새로웠다. 날씨 탓을 하며 사라진 설레임을 리필받아 채워진 것처럼 마음이 다시 들뜨기 시작했다. 이번엔 정말 제대로 숨 쉬고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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