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도 술을 좋아하지만 유독 깊고 진한 향이 나는 술을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위스키나 와인 같은, 달달하지만 묵직한 바디감과 함께 알콜이 밀려오는 그런 술. 조예가 깊은 편은 아니지만 취향은 확실하다. 요즘엔 되도록이면 혼술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라서 커피로 대체하곤 하는데, 술이 생각나는 만큼 진하게 내려 마시고 나면 어느 정도는 채워지는 느낌이다. 문제는 생각보다 많이 마셔야 한다는 것. 그러고 보니 음식도 진한 걸 좋아한다. 꾸덕꾸덕하고 깊은 맛이 나는 종류의 것들. 메인 메뉴, 디저트 가릴 것 없이 그렇다. 음식 취향도 성향을 따라가는 걸까.
뭐든 확실한 걸 좋아하다 보니 애매한 것들에는 매력을 못 느낀다. 사람들과 소통할 때도 해당되는 말인 것 같다. 하면 하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고. 할까 말까 한 상황이라면 이야기조차 꺼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인사치레로 건네는 말들과 리액션 속에서 나는 길을 잃은 사람처럼 한참을 멍하니 서 있기도 했었다. 매 순간 나는 진심이었는데 그들은 진심이 아니었을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지내면 되는 걸까? 이런 생각들을 할때면 다 지나간 사춘기를 다시 겪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는 오글거린다며 진지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했지만 이게 나인걸, 예전에는 이런 내 모습이 나도 불편했지만 지금은 이런 내가 좋다. 과도기를 겪으면서 부정적인 생각들로 나를 가득 채우기도 했었고, 인생은 혼자라며 정말 사춘기 같은 말들을 뱉어내기도 했었다. 지금도 인생은 혼자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뉘앙스는 조금 다르다. 어차피 혼자라서 다 필요 없어, 가 아닌 다 필요해, 로. 나름대로 깊은 고민들을 하면서 여러 상황들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달까.
아직도 나를 단호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눈치 채지 못할 만큼이라도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있는 나를 알아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진하기만 했지 제대로 섞이는 방법을 몰랐던 나를 지켜봐 주는 이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전하고 싶다. 아직도 서툰 게 많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부담스러워할까 각자의 온도에 맞게 전했던 진심을 알고 있으련지. 연말에 보냈던 짧은 문장들이 생각나는 오늘. 취향은 변하지 않을 테지만 다름에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올해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