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이름으로 침략하다 – 정복과 제국주의의 종교적 명분화
프레스터 존의 신화는 단지 우스꽝스러운 중세의 해프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사회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되풀이해온 심리적 반응과 정치적 전략을 집약한 사례입니다. 중세 유럽이 이 신화를 붙잡았던 이유는 단순한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불안한 집단을 묶고 새로운 전쟁과 탐험을 정당화할 수 있는 강력한 장치였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언제나 진실만으로 굴러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대한 서사를 만들어내는 힘은 현실보다 허구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기독교 세계가 패배와 혼란을 거듭하던 시기에 프레스터 존은 단순한 이야기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는 절망을 달래주는 약속이었고, 교황과 군주들에게는 정복을 합리화하는 명분이었으며, 민중에게는 언젠가 도래할 구원의 신호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믿고, 허구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걸까요. 왜 위기에 처한 사회는 늘 어딘가에서 구원자를 찾아 헤매는 걸까요. 이 질문은 단지 중세의 유럽인들에게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의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합니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단순하고 강렬한 이야기, 곧 위기를 끝내줄 영웅이나 구원자를 찾습니다. 프레스터 존은 그러한 집단적 심리의 산물이었고, 동시에 권력이 이를 제도적으로 활용하며 장기간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실재하지 않았지만, 그의 신화는 여전히 변주된 모습으로 살아남아 우리의 삶을 흔들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 구조는 반복됩니다. 가짜 뉴스는 정치적 선택을 바꾸고, 음모론은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며, 새로운 기술이나 인물은 마치 전능한 해결사처럼 포장됩니다. 프레스터 존은 더 이상 동방의 군주가 아니지만, 여전히 다른 이름으로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본질적으로 무작위성과 혼돈, 즉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견디기 어렵도록 진화해 왔습니다. 이는 생존에 필수적인 능력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변 환경에서 의미 있는 패턴을 찾아내는 능력, 즉 ‘패턴 인식’은 뇌가 환경을 해석하고 적절히 행동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이 능력은 때로 과잉 작동하여 실제로는 무작위인 사건 속에서도 의미와 원인을 찾아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패턴 과잉 인식’ 혹은 ‘환상적 상관관계’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실험에서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나타나는 도형이나 숫자 패턴을 보여주면, 많은 이들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규칙이나 의미를 발견했다고 믿는 현상이 관찰됩니다. 이는 뇌가 불확실성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본능적 반응입니다.
이와 같은 인지 과정과 관련해, 미국 국립보건원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편도체는 위협과 불확실성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두려움이나 불안 같은 감정이 인지적 판단을 압도할 때가 많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불확실성 앞에서는 감정이 인지 기능보다 우선하고, 인지적 오류가 발생하기 쉽습니다.
이러한 심리적 경향은 위기 상황에서 더욱 극대화됩니다. 예컨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진행된 사회 심리학 연구들은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개인과 집단이 단순한 음모론이나 허위 정보를 믿는 경향이 강화된다는 점을 밝혀냈습니다. 위기 속에서 ‘누군가 배후에서 조종한다’는 음모론은 복잡한 경제 문제보다 이해하기 쉽고, 심리적으로 위안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심리적 메커니즘 속에서, 중세 유럽인들은 십자군 전쟁의 반복된 패배와 상실감 속에 프레스터 존 신화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방 어딘가에 숨겨진 기독교 군주가 자신들을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은 절망 속에서 견디게 해주는 심리적 버팀목이었으며, 다시 전쟁터로 나아갈 힘을 주는 원천이었습니다.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이러한 과정을 ‘정서적 직관이 이성적 판단을 이끈다’라고 설명합니다. 사람들은 먼저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그다음 이를 합리화하는 방식으로 신념을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허위 신념이 어떻게 확산되고 고착되는지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결국, 인간의 뇌는 불확실성을 견디기 힘들어하며,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허위 신념과 간단한 해법을 담은 이야기들에 끌리게 됩니다. 프레스터 존 신화는 이러한 심리적 메커니즘이 역사적으로 발현된 대표적 사례이며, 그 본질은 오늘날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여전히 작동하고 있습니다.
허위 신념은 단순히 개인 심리의 산물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집단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결속의 끈이 됩니다. 공통된 신화나 이야기를 믿는다는 것은 구성원 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현실 문제들을 단순화하여 공동의 목표와 행동 방향을 설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중세의 프레스터 존 신화는 분열과 혼란으로 점철된 당시 유럽 각국을 넘어, ‘기독교 세계’라는 거대한 상상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습니다. 십자군 전쟁의 반복된 실패와 내부 갈등 속에서, 동방에 숨겨진 신비로운 기독교 군주가 있다는 믿음은 절망에 빠진 유럽인들에게 하나의 상징이자 희망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분열된 기독교 사회 전체를 하나로 묶는 강력한 심리적, 사회적 접착제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그 신화가 사실인지 여부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신화가 집단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불안을 완화하며, 다시 공동체를 행동하게 만드는 동기를 부여하는 ‘기능’을 수행했다는 점이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은 매우 흔하게 나타납니다. 정치 세력들은 때때로 허위 선동이나 과장된 주장을 통해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집단 정체성을 공고히 합니다. 예를 들어, ‘이민자가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거나 ‘특정 집단이 사회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식의 단순화된 주장은 통계적으로나 사실적으로는 근거가 약할지라도, 분노와 두려움을 공유하는 집단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이처럼 허위 신념은 복잡한 현실 문제를 간단한 이야기로 재구성하여, 사회적 불안을 해소하고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수단으로 작동합니다. 프레스터 존 신화가 중세 유럽에서 했던 역할과 오늘날 정치적 담론 속 허위 선동이 하는 역할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집단적 신념은 진실 여부보다는 ‘함께 믿고 행동하는 힘’을 통해 사회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동력이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힘은 사회 불안이 클수록 더욱 강력하게 발휘되며, 허위 신념의 반복과 재생산을 불러오는 구조적 원인이 됩니다.
한 번 자리 잡은 허위 신념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강화하는 순환 구조를 만들어 냅니다. 인간은 자신이 믿고 싶은 방향으로 정보를 해석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를 심리학에서는 ‘확증 편향’이라고 부릅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신념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부정합니다.
더 나아가, 허위 신념 내부에 모순이 발견될 때조차 사람들은 이를 음모론으로 해석하며 신념을 더욱 견고히 합니다. 반박이나 비판이 들어오면 오히려 ‘그것이 반박의 증거’라며 믿음을 강화하는 현상은 ‘역설 효과’라고 불립니다. 이러한 심리적 메커니즘이 바로 허위 신념이 쉽게 꺾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심리학 실험들은 이 현상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1960년대에 진행된 레온 페스팅거와 제임스 칼스미스의 인지 부조화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이 자신의 신념과 상반되는 경험에도 불구하고 신념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강화하는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자신이 쏟은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입증하려는 경향을 보였고, 이로 인해 심리적 불편함을 줄이려 신념을 왜곡하거나 방어적으로 해석했습니다.
또한, 2013년 심리학자 대니얼 레비틴과 동료들이 수행한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이 사실과 다른 정보를 접할 때 이를 단순히 부정하는 대신 오히려 자신의 기존 신념을 더욱 강화하는 경향이 발견되었습니다. 즉, 반박 정보가 믿음의 강도를 높이는 촉매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점이 밝혀진 것입니다.
신경과학 연구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미국의 뇌 영상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이 자신의 신념에 반대되는 정보를 접하거나 믿음이 의심받을 때 주로 전두엽 피질과 편도체가 활성화됩니다. 편도체는 두려움, 불안, 위협에 반응하는 뇌 부위로, 신념이 위협받을 때 스트레스와 감정적 반응을 일으킵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방어적으로 기존 신념을 고수하려 하며, 합리적 사고와 감정 처리가 불균형해집니다. 한 연구에서는 반대 정보가 제시될 때 합리적 사고와 관련된 전두엽 부위의 활성은 감소하고, 감정 처리와 관련된 편도체는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감정이 인지 판단을 압도하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프레스터 존 신화가 수백 년 동안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심리학적, 신경과학적 메커니즘 덕분입니다. 당시 탐험가들이 프레스터 존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직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신화 속 모순은 신비로움과 신성함을 증명하는 증거로 받아들여졌으며, 부족한 정보는 믿음을 키우는 ‘빈 공간’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백신 음모론, 선거 조작설, 세계를 지배하는 비밀 집단 음모론 등 다양한 허위 신념이 끊임없이 반박당하지만, 반박 자체가 ‘진실을 은폐하려는 시도’로 여겨져 신봉자들의 믿음을 더욱 굳히는 원인이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집단 내에서 동조 효과와 결합해 허위 신념이 빠르게 순환되고 증폭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믿음이 믿음을 낳는’ 자기 강화 순환 고리는 허위 신념을 단순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의 심각한 문제로 확장시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사실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심리적 안정과 집단 정체성 문제까지 함께 고려하는 포괄적인 접근이 반드시 필요함을 시사합니다.
프레스터 존 신화가 수백 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데에는 단순한 민간 전설 이상의 힘, 즉 권력의 체계적 기획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중세 교황청과 유럽 군주들은 이 허구를 단순한 소문이나 민중의 상상으로만 보지 않고, 적극적으로 정치적 도구로 활용했습니다. 실제로 12세기 교황 알렉산데르 3세가 프레스터 존에게 친서를 보냈다는 기록은 '로마 교황청 문서집'과 중세 사료에서 확인되며, 이는 십자군 전쟁의 명분을 강화하고 기독교 세계의 연대를 상징하는 정치적 행위였습니다.
당시 교황청 문서에 따르면, 프레스터 존 신화는 무슬림 세력과 맞선 기독교의 ‘숨겨진 군주’로서, 유럽 기독교 세계에 희망과 결속을 제공하는 상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는 에드워드 기번이 '로마 제국 쇠망사'에서 지적했듯, 정치 권력이 절망과 혼란을 극복하고 사회를 통제하기 위해 ‘환상과 신화’를 전략적으로 조작한 대표적 사례입니다.
포르투갈의 왕 페르난두 1세와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도 프레스터 존의 존재를 명분 삼아 대서양과 아프리카 탐험을 장려했습니다. 이들의 항해는 단순한 모험을 넘어 ‘기독교 왕국과의 동맹’이라는 신성한 사명을 내세웠으며, 이 과정은 당시 포르투갈 왕실 문서와 '헤르난 코르테스의 항해일지' 등에서 자세히 다뤄집니다.
아울러, 당시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13세기 초 십자군 포고문에서 프레스터 존 신화를 언급하며, 이를 통해 군사적 원정을 신성한 의무로 선포하였습니다. 이는 군주들이 내부 정치적 불안과 사회 불만을 외부 정복과 전쟁이라는 ‘위대한 사명’으로 전환시키는 도구로서 허위 신념을 활용했음을 보여 줍니다.
이처럼 프레스터 존 신화는 단순히 민중의 상상에 머물지 않고, 권력자들이 사회 통제와 정치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조직적으로 생산하고 배포한 ‘위에서 내려오는 환상’이었습니다. 권력은 현실의 모순과 내부 갈등을 은폐하기 위해 이러한 신화와 허위 정보를 전략적으로 이용했고, 대중은 외부의 적과 구원자에 대한 믿음을 통해 불안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러한 구조는 그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정치 권력자와 언론은 ‘경제 성장이 최우선’이라는 단순화된 구호를 통해 복잡한 경제 문제를 은폐하고 비판을 억압하며, 특정 집단을 범죄와 사회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선동은 사회 불안을 특정 타자로 전가하는 정치적 전략입니다. 예컨대, 조지 오웰의 '1984'가 경고하듯, 권력은 항상 ‘진실’을 재구성하며 대중의 현실 인식을 통제해 왔습니다.
따라서 허위 신념은 단순한 무지나 개인적 착각이 아니라, 사회 질서와 권력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강력한 정치적 장치입니다. 프레스터 존 신화가 중세 유럽에서 그러했듯, 오늘날에도 권력은 ‘위에서 내려오는 환상’을 통해 현실의 불편한 진실을 덮고, 대중을 통제하는 메커니즘을 지속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프레스터 존 신화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근본적인 교훈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진실보다 위안을 더 선호한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안정을 찾고자 하며, 이 과정에서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이 믿고 싶은 이야기에 더 큰 반응을 보입니다. 세상이 여전히 나름의 질서와 의미를 갖고 있다는 믿음은 불안을 덜어주는 심리적 안전장치인 셈입니다.
이러한 심리적 경향은 진화 심리학에서도 설명됩니다. 스티븐 핑커는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서 인간이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하고 자신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정보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생존에 유리했음을 지적합니다. 즉, 진실을 정확히 인지하기보다 ‘믿음’을 통해 심리적 안정과 행동 지침을 확보하는 것이 과거 생존에 도움이 되었고, 이 메커니즘은 현대에도 여전히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정보사회는 이 심리적 경향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SNS에서 작동하는 알고리즘은 이용자가 이전에 선호하거나 반응했던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노출합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혹은 이미 믿고 있는 내용만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어 ‘확증 편향’이 심화됩니다. 이는 ‘필터 버블’이나 ‘에코 챔버’ 현상으로 불리며, 개인의 신념을 더욱 굳건히 하면서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정치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 정치인은 정책적 구체성보다 공감과 감정을 자극하는 ‘서사’를 중시합니다. 이는 유권자들이 복잡한 현실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메시지를 듣고 싶어 한다는 점을 이용하는 전략입니다. 감정적 공감과 단순한 메시지는 이성적 분석보다 더 빠르고 깊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언론 또한 팩트 보도보다 드라마틱하고 충격적인 이야기, 혹은 갈등과 대립을 부각시키는 서사에 집중합니다. 이는 독자의 관심을 끌고, 시청률과 클릭수를 올리기 위한 전략이지만, 결과적으로 사실의 왜곡이나 편파 보도를 낳고, 사회적 분열을 조장하는 부작용을 초래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팩트 그 자체보다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이야기와 서사에 끌립니다. 이는 프레스터 존 신화가 중세 유럽인들에게 제공했던 심리적 위안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시대가 변해도 인간이 진실보다 믿음과 위안을 택하는 본성은 변하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허위 신념과 왜곡된 정보가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정보 홍수 속에서 진실을 추구하려면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 인간 심리의 복잡성과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신념과 감정이 어떻게 형성되고 강화되는지를 아는 것이야말로 허위 신념에 맞서고 사회적 분열을 완화하는 첫걸음입니다.
프레스터 존은 이제 더 이상 중세 동방 어딘가에 숨겨진 신비로운 기독교 군주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본질적 역할과 기능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에서 변주된 형태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SNS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맞춤형 콘텐츠 속에, 포퓰리즘 정치인의 열정적인 연설과 민족주의적 구호 속에, 최첨단 신기술의 환상과 음모론을 퍼뜨리는 유튜버의 목소리 안에 존재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프레스터 존은 ‘구원자’ 혹은 ‘진실을 알려 줄 영웅’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불안과 불확실성을 해소해 주는 심리적 기제로 작동합니다. SNS 알고리즘은 이용자가 보고 싶어 하는 정보를 집중적으로 제공하며, 이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이야기와 세계관 안에 갇히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허위 신념과 극단적 이념, 음모론은 빠르게 확산되고 강화됩니다. 이는 중세 유럽의 프레스터 존 신화가 불확실한 시대에 유럽인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었던 것과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한편, 현대 정치권에서는 포퓰리즘 정치인이 ‘우리 민족을 위협하는 외부 세력’이나 ‘진정한 구원자’라는 단순 명쾌한 메시지를 내세우며 대중을 결집시킵니다. 이는 과거 군주들이 프레스터 존을 동맹자로 삼아 내부 분열을 잠재우고 정당성을 확보했던 전략과 유사합니다. 민족주의적 슬로건과 집단 정체성의 강조 역시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단순화하고, 불안을 외부로 돌려 사회적 결속을 강화하는 기능을 합니다.
더 나아가 신기술과 미래에 대한 낙관론도 일종의 현대적 환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AI가 인류를 구원할 것이다’ 같은 믿음은 현실의 복잡성과 위험을 은폐하고, 희망과 기대라는 감정을 자극해 불안을 완화합니다. 이 역시 프레스터 존 신화가 가진 ‘구원 서사’의 현대적 변형입니다.
그리고 음모론 유튜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퍼져 나가는 허위 정보는 ‘숨겨진 진실’을 알려 준다는 메시지로 불안을 해소합니다. 비록 그 내용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거나 명백한 허위일지라도, 이를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특별한 지식’을 가진 존재라고 느끼며 집단 내에서 정체성과 소속감을 찾습니다. 이 또한 프레스터 존 신화가 집단적 신념과 결속을 강화했던 심리적 메커니즘과 일맥상통합니다.
결국 프레스터 존은 과거의 단순한 신화나 역사적 해프닝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사회 구조 속에 깊이 뿌리내린 반복적이고 구조적인 현상입니다. 우리는 시대와 이름, 형태만 다를 뿐 동일한 ‘구원자 신화’를 여전히 필요로 하고, 그 신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이름의 프레스터 존을 기다리고 있거나, 이미 그를 맞이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허위 신념과 환상이 우리 사회와 개인의 삶을 얼마나 깊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흔들고 있는지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