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구원자 사용 설명서 3부

지금도 우리는 프레스터 존을 믿고 있다

by 슈퍼T
El_Greco_-_Christ_as_Saviour_-_Google_Art_Project.jpg El Greco - Christ as Saviour (이미지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3부: 지금도 우리는 프레스터 존을 믿고 있습니다


거짓말의 유산: 21세기에도 살아있는 신화의 구조

프레스터 존은 더 이상 고대 지도 위에서 찾을 수 있는 실존 인물이 아닙니다. 중세 시대 유럽의 상상 속에서 탄생한 이 신화적인 구원자는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과 두려움을 대변해 왔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프레스터 존이라는 특정 인물이 사라졌다고 해서, 그를 통해 표상되던 ‘구원자’에 대한 집단적 열망과 심리적 메커니즘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메커니즘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21세기의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깊숙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과학과 기술, 민주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중세의 무지와 미신에 갇힌 존재가 아니며, 합리적 사고와 객관적 사실을 중시하는 사회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불확실성, 불안, 그리고 사회적 위기 앞에서 인간은 여전히 진실보다 ‘믿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러한 심리적 욕망은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복잡하고 정교한 사회적 구조와 맞물려, 허위 신념이라는 형태로 반복되고 강화됩니다.

프레스터 존 신화의 본질적인 구조는 ‘보이지 않는 구원자가 나타나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이 기대는 특정한 시대적 상황에서 태어났지만, 시대가 변해도 그 욕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단지 그 모습과 이름이 변화할 뿐입니다. 과거 중세의 신비로운 동방의 군주였던 프레스터 존은 오늘날 정치적 이데올로기 속의 강력한 지도자, 경제적 번영을 약속하는 성장 신화, 종교적 맹신, 그리고 신기술에 대한 무비판적 숭배라는 다양한 탈을 입고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이처럼 프레스터 존은 단순한 역사적 신화가 아니라, 인간 사회가 불안과 위기를 마주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심리적·사회적 패턴입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어딘가에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완전한 힘과 질서가 존재한다’는 환상을 갈망하며, 그것을 통해 불확실한 현실에 의미를 부여하려 합니다. 그 결과 허위 신념은 개인과 사회를 불안으로부터 잠시나마 보호하는 방어기제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실을 왜곡하고 분열을 심화시키는 독소가 되기도 합니다.

이 글은 바로 이러한 ‘살아있는 신화’의 구조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과거 중세의 프레스터 존 신화에서 출발해, 21세기의 다양한 사회 현상 속에 그 본질적 모습이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정치와 경제, 종교와 기술, 그리고 민족주의와 사회적 갈등까지, 프레스터 존의 변주곡은 끊임없이 우리의 삶과 사유를 지배합니다.

우리가 이제 진지하게 묻고 답해야 할 질문은 단순합니다. ‘우리는 정말 프레스터 존을 믿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과 ‘그 믿음을 어떻게 넘어서 현실과 책임을 직시할 것인가’입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신화의 흐름을 깊이 이해하고, 허위 신념의 작동 방식을 인지하며, 우리 사회가 진정한 성숙을 향해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지금도 우리는 프레스터 존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신화를 넘어설 때입니다.


정치적 프레스터 존 – ‘강력한 리더’라는 신화

현대 사회가 마주한 가장 큰 도전 중 하나는 바로 불확실성의 증대입니다. 경제적 불황, 사회적 양극화, 그리고 정치 제도에 대한 신뢰 하락은 사람들로 하여금 복잡하고 어려운 현실 앞에서 점점 더 불안에 빠지게 만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자연스럽게 문제를 단순화하고, 복잡한 세계를 한눈에 해결해 줄 ‘구세주형 정치인’에 대한 욕구를 키우게 됩니다. 이 욕구는 단지 개인의 심리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정치적 현상이 되었습니다.

유권자들은 점차 절차적 민주주의가 제공하는 다원성과 복잡성을 외면하고, 대신 카리스마적이고 강력한 리더십에 매료됩니다. 그들은 ‘우리 편’을 대표하고 ‘정의의 심판자’로서 행동하는 지도자를 원합니다. 이런 지도자는 복잡한 정책 논의 대신 단순명료한 구호와 확실한 목표를 제시하며 대중의 분노와 불안을 대변합니다. 현실의 구조적 문제와 정치적 한계에 대한 성찰은 뒤로 밀리고,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겠다’는 약속에 열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지난 수십 년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같은 포퓰리즘 지도자들의 등장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 “범죄자를 철저히 처단하겠다” “국가를 쇄신하겠다”는 식의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내세웠습니다. 그 메시지는 현실의 복잡한 문제를 무시한 채 대중의 감정과 불만을 끌어모으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트럼프는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복잡한 정치적, 경제적 문제들을 간단명료한 구호와 강경한 어조로 대체하며 대중의 불안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는 무역 협정, 이민 정책, 범죄 문제에 대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전통적 엘리트 정치에 대한 불신과 좌절을 대변했습니다. 그의 슬로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과거로의 회귀를 상징하면서 동시에 현재의 혼란에 대한 위안이 되었고, 절차적 민주주의의 복잡성을 무시하고 ‘강력한 지도자’에게 모든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기대를 형성했습니다.

브라질의 보우소나루는 ‘범죄와의 전쟁’을 외치며 군사 독재 시절의 강경한 통치 스타일을 미화했습니다. 사회적 불평등과 치안 문제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자신의 강력한 이미지와 결합시켜 대중을 결집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단순화하고 ‘법과 질서’라는 구호 아래 대중의 두려움과 불안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활용되었습니다. 이는 중세 유럽에서 프레스터 존이 전쟁과 구원의 상징이었던 것과 매우 흡사합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범죄와 마약 문제에 대해 무자비한 단속을 약속하며 ‘강력한 처벌’을 내세웠습니다. 그의 거친 언사와 대중적 이미지가 폭력적인 해결책을 정당화했고, 이는 절차적 법치주의를 무시하는 권위주의적 통치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습니다. 두테르테의 리더십은 ‘문제를 해결하는 구원자’라는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러한 정치적 사건들은 모두 중세 유럽에서 프레스터 존 신화가 수행했던 역할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당시 유럽인들은 동방에 숨어 있는 신비로운 기독교 군주 프레스터 존이 자신들을 위해 이슬람 세력과 싸우고 궁극적으로 유럽을 구원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 믿음은 당대 사회의 불안과 두려움을 잠재우고, 구원의 희망을 제공하는 동시에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능을 했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그런 ‘구원자’가 먼 동방에서 오기를 기다리던 대신, 유권자 자신이 투표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직접 ‘강력한 리더’를 선택한다는 점이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해결책과 강력한 인물에게 맡기고 싶은 욕망’입니다.

이 신화적 믿음은 정치적 현실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구체적인 정책 토론과 합리적 의사결정을 경시하고, 반대 의견을 적대시하며, 사회 갈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또한 이런 지도자에 대한 맹목적 충성은 제도적 민주주의의 기능을 약화시키고, 권력의 집중과 독선으로 치달을 위험을 내포합니다.

따라서 ‘정치적 프레스터 존’ 신화는 단순한 과거의 신화가 아니라, 오늘날 정치 문화와 시민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린 현실적 문제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신화를 직시하고, 복잡한 사회 문제를 책임감 있게 다루며, ‘강력한 구세주’가 아닌 ‘협력하는 시민과 제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종교적 프레스터 존 – 신앙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현실 부정

현대 사회에서도 종교는 여전히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힘은 때로 현실 부정과 사회 갈등의 근원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극단적인 종교 집단은 ‘우리는 신에게 선택받은 자’라는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배타성과 불복종을 정당화합니다. 이러한 신념은 단순한 신앙의 영역을 넘어 사회적, 정치적 문제로 비화하며, 과학적 사실과 공공의 안전마저 무시하는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여러 국가에서 발생했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여러 지역에서 일부 종교 단체들이 정부의 방역 지침을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대규모 집회를 강행한 일이 그것입니다. 이들은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모임 제한 등 기본적인 방역 조치들이 ‘신앙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과학적 근거나 공공 안전보다는 종말론적 신념과 ‘구원자의 계시’를 우선시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법률 위반이나 방역 실패가 아니라, 현실의 객관적 사실을 부정하고 자신들만의 신화적 세계관에 따라 사회를 재해석하려는 의도적인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우리만이 선택받았고 구원받을 자격이 있다’는 선민의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선민의식은 강한 배타적 정체성과 결합되어, ‘타인’ 혹은 ‘다른 신념을 가진 집단’에 대한 적대감과 분리를 심화시킵니다. 결국 이는 사회 내 갈등과 분열을 악화시키는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공공선에 대한 합의가 어려워지며, 극단적 집단 간 충돌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지속됩니다.

이러한 구조는 중세 유럽에서 프레스터 존 신화가 이슬람 세력의 위협 속에서 유럽인의 불안을 달래고 사회 결속을 강화했던 모습과 매우 유사합니다. 당시 유럽은 외부의 적과 내부의 위협이라는 이중적 도전에 직면한 상태였으며, 프레스터 존이라는 신비로운 기독교 군주가 이 모든 위협을 종식시키고 구원을 가져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이 신화는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정치적,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며, 불안을 해소하고 공동체 결속을 도모하는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현대에 이르러 종교적 허위 신념은 단순한 신앙 문제를 넘어, 세속화, 과학주의, 다문화 사회에 대한 불안과 맞물린 사회심리적·정치적 현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과학적 합의와 공공 정책에 대한 불신, 타문화·다민족 사회에 대한 경계와 반감, 그리고 개인의 불안과 사회적 불평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특정 종교 집단의 배타성과 저항성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종교적 프레스터 존 사례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와 음모론의 결합

미국에서는 복음주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자신들을 신의 선택받은 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이러한 신념은 과학적 사실과 정부 정책을 부정하는 형태로 나타나며, 특히 음모론과 결합할 때 사회적 영향력이 크게 확대됩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일부 근본주의 교회는 백신 접종과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며 방역 수칙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신이 자신들을 보호할 것이라는 믿음을 근거로, 공중보건 정책을 무시하는 행동을 정당화했습니다.

또한, 2021년 미 의회 난입 사건에서는 기독교 극단주의 세력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일부 참가자들은 자신이 신의 뜻을 수행하고 있다고 믿으며 폭력을 정당화했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극단주의가 결합할 때 나타나는 사회적 위험을 보여주며, 프레스터 존 현상의 현대적 형태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인도네시아: 이슬람 근본주의와 정치적 영향력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는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들이 자신들을 신의 대리자로 인식하며, ‘이슬람만이 참된 종교’라는 배타적 신념을 바탕으로 사회와 정치 전반에 영향력을 확대해 왔습니다. 이러한 단체들은 종교적 신념을 근거로 다른 종교 집단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조장하기도 하며, 국가의 세속적 법률과 종종 충돌합니다.

이들은 사회 문제 해결보다 종교적 규율 준수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하며, 교육, 정치, 법 집행 등 다양한 영역에서 종교적 관점을 강화하려는 활동을 전개합니다. 결과적으로 일부 지역에서는 법치주의와 종교적 규율 사이의 긴장이 발생하며, 종교적 신념이 정치적 결정과 사회적 행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이지리아: 기독교·이슬람 갈등과 종말론

나이지리아 북부 지역은 기독교와 이슬람 간 종교적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입니다. 양측 모두 자신들이 구원받은 진리의 공동체라는 신념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정체성이 사회적 행동과 정치적 입장에 깊이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인 보코 하람은 종말론적 신념을 기반으로 폭력과 테러를 지속해 지역사회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반대편 기독교 집단 역시 자신들의 신앙과 공동체 정체성을 강화하며 상대방을 배제하고 대립하는 태도를 유지합니다. 이러한 상호 배제적 신념과 행동은 지역 내 갈등과 불안을 장기화시키며, 나이지리아 사회 전반의 정치적·경제적 안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러시아: 정교회와 민족주의의 결합

러시아에서는 정교회가 국가 정체성과 밀접하게 결합하며 ‘신이 선택한 민족’이라는 신념을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종교적·민족적 결합은 정치적 동원과 사회적 통합의 도구로 활용됩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정교회의 지지를 기반으로 국민 결속을 강화하며, 동시에 반서구적 정서와 반이슬람적 태도를 부추기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 사회 내부에서는 배타적 정체성이 강화되며, 종교적 신념과 민족주의가 결합한 ‘선택받은 민족’ 논리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외부 집단에 대한 적대감과 내부 집단 결속을 동시에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종교와 영토 갈등의 악순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유대교, 이슬람, 기독교가 각각 자신들의 민족과 종교적 권리를 강조하며 ‘선택된 민족’과 ‘성지’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주장합니다. 극단주의자들은 이러한 종교적 정체성을 구원자 신화와 결합하여 타 집단에 대한 배제와 폭력을 정당화합니다.

이 과정에서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목표가 맞물리며 현실을 부정하고 대립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단순한 종교 갈등을 넘어, 역사적·영토적·정체성적 요소가 얽히면서 분쟁이 지속되고, 사회적 화해와 평화 구축이 어려워지는 구조적 문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사회학·심리학적 분석

종교적 집단 내에서는 강한 동조 압력과 배타성 강화가 내부 결속을 위해 필요하며, 외부 비판이나 갈등 상황에서는 신념이 더욱 견고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집단사고(집단사고)와 집단 극화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집단사고는 구성원들이 의견 일치를 우선시하며 비판적 사고를 억제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의미하며, 집단 극화는 집단 내 논의가 진행될수록 극단적 신념이 강화되는 과정을 가리킵니다.

또한, 위기나 불확실성 상황에서는 사람들의 불안을 해소하고 통제감을 확보하기 위해 단순하고 절대적인 신념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집니다. 이는 불확실성 감소 욕구로 설명되며, 종교적 프레스터 존 신화가 강화되는 심리적 기반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종교적 프레스터 존 신화는 특정 지역이나 종교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반복되는 구조적 현상입니다. 각기 다른 사회·문화·정치적 맥락 속에서 이러한 신화적 신념은 현실 부정, 사회적 분열, 배타적 정체성 강화라는 문제를 지속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종교적 신앙과 과학적 사실 간의 건강한 대화와 조율이 필요하며, 다문화와 다양성을 포용하는 사회문화적 토대를 마련해야 합니다. 또한, 종교적 자유가 사회적 책임과 균형을 이루도록 법적·윤리적 장치를 강화하는 일이 필수적입니다.


기술적 프레스터 존 – 실리콘밸리와 신(신) 메시아주의

오늘날 기술은 현대 사회에서 또 하나의 프레스터 존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블록체인, 메타버스, 유전자 편집 등 최첨단 신기술들은 마치 인류가 직면한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구원자처럼 찬양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들은 불가능해 보였던 과학적 한계를 뛰어넘어 인간의 삶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열쇠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특히 실리콘밸리에서는 인공지능을 ‘디지털 신’에 비유하며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 숭배하는 경향이 일부 관찰됩니다. ‘기술적 특이점’이라는 개념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어 궁극적으로는 죽음조차 극복할 수 있는 초지능 상태에 도달할 것이라는 미래상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기술 발전이 인류의 궁극적인 구원이며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 것이라는 희망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신화는 기술이 내포한 윤리적 문제들을 간과하게 만듭니다. 기술 발전이 가져올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 권력의 집중과 독점, 개인정보 침해, 노동 시장 붕괴 등의 중대한 문제들은 성찰 없이 묵인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민주주의적 통제와 인간 중심 가치에 대한 논의를 미루게 만들고, 기술 권력의 무비판적 수용으로 이어집니다.

예를 들어, 대규모 AI 시스템을 개발하고 통제하는 기업과 기관들은 점점 더 많은 정보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음에도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는 부족한 실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기술의 혜택은 특정 계층에 집중되고 기술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사회적 갈등과 배제가 더욱 악화될 위험이 존재합니다.

이처럼 기술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와 숭배는 결국 ‘어딘가에 완전한 질서와 힘이 존재할 것’이라는 프레스터 존 신화의 현대적 재현입니다. 우리는 복잡한 현실 문제를 기술이 자동으로 해결해줄 것이라 믿으며, 자신의 책임과 사회적 숙고를 유예하고 있습니다.

이 현상은 단순한 기술 낙관주의를 넘어선 심리적·사회적 구조의 문제로 바라봐야 합니다. 기술 숭배 신화는 현실의 불확실성과 복잡성에서 벗어나고 싶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과, 사회적 불안 속에서 안정적 구원자를 찾는 집단심리의 산물입니다.


최신 연구 사례

최근의 연구들은 인공지능과 신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단순하거나 일방적이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스탠퍼드 대학 AI 윤리 연구팀은 AI 시스템이 인종과 성별에서 편향을 재생산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사례들을 보고했습니다. MIT 미디어랩 연구진은 AI가 노동시장에서 일부 직종을 대체하지만, 새로 생기는 일자리는 적어 노동 불안정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분석했습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기술 낙관주의’가 과도할 경우 조직 내 의사결정이 왜곡되고 중요한 윤리적 고려가 무시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기술 개발에는 기술자뿐 아니라 인문사회과학자, 시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윤리 가이드라인과 정책 대응

세계 각국은 기술 윤리에 관한 공식 가이드라인과 정책을 제정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AI 윤리 지침’을 통해 투명성, 공정성, 책임성을 핵심 원칙으로 삼아 AI가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규제합니다. OECD도 AI 관련 국제 협력과 윤리 기준을 발표하여 기술 발전과 사회적 책임의 균형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역시 인공지능 윤리기준을 발표하며 ‘인간 중심 AI’ 실현을 위한 투명성, 개인정보 보호, 안전성 강화 등을 정책 방향으로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기술 숭배 신화를 견제하고 기술이 사회적 가치를 존중하며 발전하도록 만드는 중요한 시도입니다.


사회운동과 시민사회 대응

기술 독점과 감시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전 세계 시민사회와 활동가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알고리즘 투명성’을 요구하는 운동, ‘디지털 권리’ 보호를 위한 국제 네트워크, ‘기술 민주주의’를 촉구하는 시민단체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기술이 기업과 정부의 독점 수단이 되는 것을 경계하며 공공의 통제와 감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개인정보 보호와 감시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은 인터넷과 SNS 환경에서 개인 자유와 권리를 수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또한 ‘기술 윤리 선언’과 ‘AI 거버넌스’에 시민 참여를 확대하려는 시도가 늘면서 기술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점차 확산되고 있습니다. 기술은 분명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강력한 도구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이 구원자가 될 수 없다는 현실 인식과 성찰이 동반되지 않는 한 ‘기술적 프레스터 존’ 신화는 계속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술 발전의 가능성과 위험을 동시에 바라보고, 기술을 통제하고 책임지는 주체로서 성숙한 시민사회와 제도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민족주의적 프레스터 존 – 단일민족 신화와 순혈주의

한국 사회에서도 프레스터 존 신화는 여전히 강력하게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형태가 바로 ‘단일민족’ 신화와 순혈주의입니다. 한국은 오래도록 ‘하나의 민족이 오랜 역사 동안 한 혈통을 유지해온 순수한 공동체’라는 믿음을 공유해 왔습니다. 이 믿음은 국가 정체성과 사회 통합의 근간으로 자리 잡는 동시에, 다문화 가정이나 이주민에 대한 배제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논리로도 작용합니다.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은 사실 역사적 사실보다는 사회적·정치적 필요에 의해 과장되고 신화화된 측면이 큽니다.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여러 민족과 문화가 교차하고 융합해 온 다원적 공간이었으며, 다양한 외래 세력과의 혼혈과 문화 교류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복합적인 역사는 ‘순수한 혈통’이라는 단일민족 신화에 의해 은폐되고, ‘우리’와 ‘타자’를 명확히 구분하는 경계가 설정됩니다.

이 신화가 가지는 심리적 기반은 두 가지가 결합된 결과입니다. 첫째, 외부로부터 정체성이나 공동체가 위협받는다는 불안입니다. 급격한 글로벌화와 이민 증가, 다문화 사회로의 변화는 ‘우리’의 정체성을 위태롭게 하는 요소로 인식됩니다. 둘째, 이러한 위협에 대응하고 내부 결속을 강화하려는 욕구입니다. ‘순수한 공동체’ 신화는 구성원들에게 일체감과 안정감을 제공하며, 복잡한 사회문제를 ‘우리’ 내부의 순수성 회복이라는 단순한 목표로 환원시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 안에 순수한 공동체가 있고, 그 공동체가 언젠가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믿음은 중세 유럽인들이 프레스터 존에게 기대했던 구원과 동일한 심리 구조를 가집니다. 프레스터 존 신화가 이슬람의 위협 속에서 ‘구원자 군주’를 기다리며 불안을 달랬던 것처럼, 단일민족 신화 역시 불확실한 현대 사회에서 ‘내부 순수성’이라는 허상을 통해 안정을 추구합니다.

이 신화는 사회적·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함의를 내포합니다. 다문화 가정, 이주 노동자, 결혼 이민자 등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며, ‘우리’와 ‘그들’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강화합니다. 이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 심지어 폭력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으며,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심화시키는 구조적 문제로 작동합니다.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민족주의적 집단 정체성 강화 메커니즘’으로 설명합니다. 내부 결속을 위해 외부 ‘타자’를 배제하거나 적대시하는 행위는 집단의 심리적 안정과 정체성 확립에 기여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포용과 다원성을 저해합니다. 또한 심리학 연구에서는 위기와 불안 상황에서 사람들은 단순하고 명확한 정체성 규정에 더욱 의존하게 되며, 이를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얻으려 한다고 봅니다.

이처럼 한국 사회의 단일민족 신화와 순혈주의는 현대판 프레스터 존 신화의 대표적 사례로서, 외부 위협에 대한 불안과 내부 결속의 욕구가 결합된 심리·사회적 구조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민족 정체성 재구성과, 다양성과 다문화를 포용하는 사회문화적 전환이 필수적입니다.


허위 신념의 결과 – 책임 회피, 현실 왜곡, 약자에 대한 폭력

프레스터 존 신화는 단지 중세의 전설이나 과거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반복되는 허위 신념과 사고방식은 동일한 심리·사회적 구조 위에 서 있으며, 심각한 사회적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와 상황 속에서 프레스터 존적 사고가 드러나는 공통된 특징들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현실의 복잡성에 대한 회피입니다. 복잡하고 다층적인 사회 문제, 경제 위기, 정치 갈등 등은 단순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어렵고, 불확실성과 모호성을 내포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복잡함과 불확실성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프레스터 존 신화는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줄 완전한 구원자’라는 환상을 통해 이 불안을 잠시나마 덮어 줍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현실을 왜곡하거나 중요한 문제의 본질을 간과하게 만듭니다.

둘째, 외부 구원자에 대한 기대가 강화됩니다. 사회 구성원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강력한 지도자’, ‘혁신적 기술’, ‘선택받은 집단’과 같은 외부 구원자를 기다리거나 의존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이는 개인과 집단 모두에게 책임을 회피하는 심리적 안전망이 되지만, 동시에 능동적 참여와 문제 해결 노력을 저해합니다.

셋째, 타자 배제와 희생양 만들기가 발생합니다. 복잡한 문제에 대한 책임과 원인을 내부에서 찾기 어렵거나 불편할 때, 외부 집단이나 사회적 약자를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이는 혐오, 차별, 폭력으로 이어지며,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공동체의 분열을 가속화합니다. 프레스터 존 신화 속 ‘적’이 명확히 존재하듯, 현실에서도 배제와 적대는 집단의 결속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됩니다.

넷째, 비판적 사고의 마비입니다. 허위 신념은 자기확증 편향과 집단사고 현상을 낳아, 반대 의견이나 객관적 사실을 무시하거나 왜곡하게 만듭니다. 정보의 편향적 수용과 음모론의 확산이 그 예입니다. 이 과정에서 이성적 판단과 논의가 위축되고, 사회 전반의 의사결정과 합의 형성이 어려워집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단순한 개인적 비합리성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치적 극단주의, 종교적 갈등, 기술 독재, 그리고 사회적 배제와 혐오라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로 이어집니다. 이는 민주주의와 사회 통합의 기반을 흔드는 위협이며,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이 침해되는 현실로 연결됩니다.

사회학과 심리학 연구들은 이 같은 허위 신념과 집단 사고가 어떻게 사회적 갈등과 폭력을 증폭시키는지를 입증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집단 극화(group polarization)’ 현상은 집단 내 의견이 극단적으로 치우치면서 타자에 대한 적대감이 심화되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또한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은 사람들이 기존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용하여 잘못된 믿음이 강화되는 메커니즘입니다.

결국, 프레스터 존적 허위 신념은 현실 문제의 복잡성을 외면하고, 타자에 대한 배제와 희생양 만들기를 통해 자신들의 불안을 해소하려는 심리적·사회적 메커니즘입니다. 이로 인해 사회는 갈등과 분열, 비합리적 폭력에 휩싸이며, 건강한 공론장과 책임 있는 시민 사회의 발전을 저해받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허위 신념의 폐해를 명확히 인식하고, 책임 있는 태도와 비판적 사고를 통해 복잡한 현실을 직시하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이는 프레스터 존 신화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가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는 길이기도 합니다.


프레스터 존 이후,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프레스터 존 신화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단순한 옛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근본적 위기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입니다. 현재 인류가 마주한 위기는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반복되는 허위 신념과 그것을 욕망하는 인간 심리의 복제성에 있습니다. 즉, 사실과 진실을 외면한 채 손쉬운 해답이나 구원자를 갈구하는 마음이 문제의 핵심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허상에서 벗어나 현실의 복잡함을 온전히 감당하며, 진정한 사회적 성숙을 이룰 수 있을까요? 다음 다섯 가지 핵심 과제를 중심으로 해법을 모색해 보고자 합니다.


1. 비판적 사고 교육 강화

오늘날 시민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의 구조와 배경을 분석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역사, 정치, 경제, 과학기술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사회를 만들어가는지 이해하는 능력은, 왜곡된 정보나 허위 신념에 흔들리지 않는 성숙한 시민을 길러내는 데 꼭 필요합니다.

핀란드의 경우, 초등학교 때부터 학생들에게 정보의 출처를 꼼꼼히 살피고 가짜 뉴스나 편향된 내용을 구분하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핀란드 국민은 허위 정보에 강한 면역력을 갖추고, 건강한 민주 토론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여러 국가들도 교육과정에 미디어 리터러시와 논리적 사고, 윤리적 판단 교육을 반드시 포함시키고, 교사 연수 프로그램과 시민을 위한 평생교육도 활성화해 비판적 사고력을 사회 전반에 확산시켜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르네상스 시대 인간주의 교육은 중세의 권위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문화를 만들면서 민주적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오늘날 비판적 사고 교육 역시 권위나 허위 신념에 휘둘리지 않는 성숙한 시민을 만드는 중요한 바탕이 되어줍니다.


2. 제도 중심 시스템 사고

우리는 더 이상 한 사람의 영웅이나 구원자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환상에 머물지 말고, 제도와 시스템을 중심으로 사회를 설계해야 합니다. 제도는 개인의 한계를 보완하고, 권력 남용과 독재를 막는 견제와 균형의 장치 역할을 합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모델은 법치주의와 강력한 제도를 기반으로 개인과 기업의 권리를 보호하면서도 사회복지 실현에 힘쓰고 있습니다. 덕분에 단기적인 리더십에 의존하는 정도가 낮아지고, 안정적이며 지속 가능한 발전이 가능해졌습니다.

정책적으로는, 한국을 포함한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정치 권력의 집중을 막기 위한 제도 개혁에 힘써야 합니다. 권력을 분산하고 투명한 재정 운영을 보장하며, 독립적인 사법 기관을 강화하는 한편, 행정·사법·입법 기관 간 견제와 균형 기능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또한, 시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공공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는 참여와 토론을 중심으로 한 제도였지만, 현대 민주주의는 훨씬 더 복잡한 법률 체계와 시스템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이는 단일 영웅에게 의존하는 신화적 정치에서 벗어나 근대적이고 성숙한 정치 체제로 나아간 중요한 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다양성 수용과 포용 문화 확산

‘단일민족’이나 ‘순수성’ 신화는 얼핏 단단한 결속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언제든 배제와 폭력으로 변질될 위험이 숨어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다문화 사회가 보편화되고 글로벌 교류가 활발한 시대에는, 단일한 정체성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부추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양한 정체성과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다른 문화와 배경을 포용하는 문화를 적극적으로 키워 나가야만 합니다. 이는 단순한 관용을 넘어,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하고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그 좋은 사례가 바로 캐나다입니다. 캐나다는 ‘다문화주의’를 국가 정책으로 공식 채택해, 이민자부터 원주민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집단의 문화적 정체성을 존중하고 보호합니다. 이런 포용 정책 덕분에 캐나다는 비교적 사회 갈등이 적고, 서로 다른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공동체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처럼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는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동시에,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런 포용 문화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다문화 교육을 체계적으로 강화하고, 차별 금지법을 엄격하게 시행해야 하며, 이주민과 소수자들이 사회에 안정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사회통합 프로그램을 늘려야 합니다. 더불어 미디어와 공공기관 역시 편견과 혐오를 부추기는 콘텐츠를 규제하고, 다양성과 포용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 포용적 메시지가 확산될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함께 사는 사회’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습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순혈주의와 민족 동질성을 강조했던 일본과 독일 같은 나라들은 결국 배제와 폭력, 그리고 심각한 사회적 균열을 경험했습니다. 반면, 다양성과 포용을 존중한 사회들은 내적으로는 결속을 다지고 외적으로는 더 넓은 세상과 경쟁할 힘을 얻었습니다. 이 역사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바로, 고립과 배제가 아닌, 열린 마음과 상호 존중이야말로 현대 사회가 지향해야 할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4. 윤리적 기술 통제

기술 발전은 인류 문명에 크나큰 혜택을 안겨주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술 자체가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는 절대적인 해답은 아닙니다. 인공지능, 유전자 편집, 디지털 플랫폼 같은 첨단 기술들은 반드시 인간 중심의 가치와 윤리적 통제 아래서 발전해야 합니다. 기술이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복지를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점에서 유럽연합(EU)의 사례는 중요한 이정표가 됩니다. EU는 AI 윤리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투명성, 공정성, 책임성을 핵심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이를 통해 인공지능이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엄격한 법적 기준을 도입했고, 기술 발전이 사회 정의와 조화를 이루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이 같은 규제와 가이드라인은 기술 발전의 속도에 비해 늦을 수 있지만,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는 필수 요소임을 보여줍니다.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은 이제 AI와 빅데이터에 대한 윤리 기준을 법제화하는 한편, 독립적인 감시 기구를 설립해 기술 개발과 적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꼼꼼히 감독해야 할 시점입니다. 또한 시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술 민주주의’ 모델을 도입해, 기술이 가져올 사회적 영향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기술은 일부 전문가나 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함께 고민하고 결정해야 할 공공재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산업혁명 초기의 급격한 기술 발전은 노동자 착취와 환경 파괴라는 심각한 사회 문제를 불러왔습니다. 이에 맞서 노동법과 환경 규제가 도입되었고, 이는 현대 사회가 최소한의 윤리적 기준을 확보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첨단 기술 역시 윤리적 통제 없이 무한히 발전한다면, 과거의 문제들이 반복될 위험은 여전히 크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기술과 사회가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윤리적 성찰과 제도적 장치가 함께 작동해야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5. 정치적 극단화 방지 및 참여 민주주의 강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시민들이 단순히 정치의 소비자가 아니라, 정책 결정과 사회 운영의 능동적인 주체로 거듭나는 일입니다. 정치적 극단주의와 사회적 분열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존중받고 공존할 수 있는 진정한 참여 민주주의의 확립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아이슬란드의 사례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아이슬란드는 전통적인 정치 방식에 대한 신뢰가 크게 흔들린 가운데,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헌법 개정 절차를 도입했습니다.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국민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투표를 통해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과정은 민주주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이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치적 주체임을 확인시켜주는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시민참여 예산제, 주민투표, 온라인 공론장 등 다양한 참여 기회를 늘려야 합니다. 아울러 학교와 사회 전반에서 정치 교육을 강화하여 시민들의 정치적 역량을 키우는 동시에, 극단주의 선동과 혐오 발언에 대응할 법적·사회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사회적 갈등을 예방하고, 건강한 공론장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토대가 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대 로마 공화정 시절 시민 참여는 귀족층에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는 보통선거와 표현의 자유를 통해 시민 참여의 범위를 크게 넓혔습니다. 시민들의 직접적인 참여가 없이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극단주의의 확산을 막기 어렵다는 점은 이미 여러 차례 입증된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각자의 위치에서 정치적 책임감을 가지고 참여하는 성숙한 시민 사회이며, 이는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가장 강력한 방어막이 될 것입니다. 정치가 더 이상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임을 깨닫는 순간, 극단화와 분열의 악순환은 서서히 끊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이제 과거에 의존했던 구원자 신화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현실은 단순하지 않고, 예측할 수 없는 복잡함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온전히 마주하고 감당할 수 있는 지적·사회적 역량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과제입니다. 역사가 보여주듯, ‘프레스터 존 이후’의 길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제도적 성숙과 시민 의식의 강화, 다양성과 포용, 그리고 윤리적 통제가 함께 어우러져야만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 길은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공동의 책임이며,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성숙한 시민 사회와 밝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레스터 존 신화는 비록 12세기 유럽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근본적인 심리 구조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있습니다. 이름과 모습만 바뀌었을 뿐, 우리는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며 안도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허구의 구원자는 두 가지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나는 불안한 마음을 달래는 정서적 안식처였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의 책임을 회피하는 도구였다는 점입니다. 전자는 인간이 가진 자연스러운 위안 욕구지만, 후자는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가로막는 심각한 함정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음모론이나 민족주의적 역사 왜곡, 혹은 종교적 신념에 기대어 공적 문제를 회피하려는 태도가 빈번하게 목격됩니다. 경제가 어렵거나 사회가 불안할 때면, ‘능력 있는 리더’나 ‘특정 집단’을 비난하며 단순한 해결책을 찾으려 하는 경향이 반복되죠. 그러나 이런 허위 신념은 결국 공동체의 태만과 무책임을 낳고, 갈등과 극단주의를 키우며 이성적 판단마저 위축시키는 악순환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습니다. 구원자는 없습니다. 구원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프레스터 존은 여전히 음모론, 혐오, 영웅 숭배, 독선, 기술 숭배 같은 모습으로 모습을 바꿔가며 살아남고 있지만, 진정한 성장은 그런 허구를 넘어서는 데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누군가가 대신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라지 말고, 허상에 기대어 책임을 미루는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대신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복잡한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는 성숙한 시민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프레스터 존 이후’의 시대는 신화를 소비하지 않는 사회입니다. 구원자를 기다리는 대신 우리 스스로가 사회 구조를 재설계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걷는 데 필요한 것은 언제나 이성, 연대, 그리고 책임감입니다. 이 세 가지를 마음에 새길 때 비로소 우리는 허위 신념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진정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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