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 연대기, ‘찐’ 얼굴 찾기 1부: 연애 편

우리는 왜 본능적인 이성 선택을 숨기는가

by 슈퍼T

1부. 우리는 왜 본능적인 이성 선택을 숨기는가

연애라는 무대 위의 사회적 가면극


“외모보다는 내면을 봐야지.” “돈이 많다고 좋은 건 아니잖아.” “진심이 중요하지, 조건은 부차적인 거야.”

우리는 이 말들을 너무도 자주 듣고 자라왔습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드라마도, 사회도 그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언뜻 보면, 그런 가치들이 ‘옳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막상 연애나 결혼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어떨까요?

현실의 선택 기준은 훨씬 원초적이고 본능적입니다. 남성은 여성의 외모와 젊음을 중시하고, 여성은 남성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물론 예외는 존재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심리학 연구들은 여전히 이 경향이 평균적으로 유효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런 본능적인 선택을 숨기려 할까요? 그리고 왜 본능에 충실한 사람을 ‘속물’이라며 비난할까요? 그 이유는 인간이 살아가는 이 사회가 단지 ‘본능’으로만 작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물학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도덕과 규범의 문화적 산물이기도 하니까요.


본능: 진화심리학이 말하는 이성 선택의 패턴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심리와 행동이 단순한 사회적 산물이 아니라,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의 산물이라고 설명합니다. 인간의 다양한 심리적 특성과 행동 패턴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도록 자연선택에 의해 형성된 ‘유전된 적응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고 행동하는 방식 중 많은 부분은 인류 조상들이 환경에 적응하고 후손을 남기는 데 성공했던 심리적·행동적 메커니즘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좋은 짝 선택: 생존과 번식의 핵심 과제

모든 생명체에게 ‘좋은 짝’을 고르는 일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단순히 한 번의 교배 행위가 아니라, 그 결과로 태어날 자손의 생존 가능성과 건강, 번식 능력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자연은 오랜 세월에 걸쳐 짝 선택에 관한 본능적 기준을 형성해 왔습니다.

인간 역시 이 과정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고도로 발달한 문화와 이성적 사고를 가졌지만, 뇌 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진화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본능적으로’ 특정한 상대에게 끌리는 이유입니다.


성별에 따른 이성 선택 기준의 차이

진화심리학에서 특히 주목하는 점은, 남성과 여성의 이성 선택 기준과 전략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역할 차이와 직결됩니다.

남성은 상대적으로 적은 생물학적 투자로 다수의 자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즉, 정자 생산은 비교적 적은 자원과 시간으로 가능하며, 많은 파트너를 갖는 것이 유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남성은 ‘짧은 시간 안에 건강하고 젊은’ 짝을 선택해 자신의 유전자를 확산시키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반면 여성은 임신과 출산, 수년간의 양육이라는 막대한 생물학적 투자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녀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자원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따라서 여성은 상대의 경제력, 사회적 지위, 안정성 등 ‘장기적 자원 제공 능력’을 더 중시합니다.

이 차이는 단순한 문화적 산물이 아니라, 진화 과정에서 ‘성 선택(sexual selection)’이라는 강력한 힘에 의해 생겨난 전략적 차이입니다.


데이비드 버스(David Buss)의 대규모 비교 연구

진화심리학의 대표적 연구자 데이비드 버스는 1980년대부터 전 세계 37개국, 수천 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대규모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는 성별에 따른 전반적인 이성 선택 기준이 문화권을 초월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보여 주었습니다.

남성의 경우, 남성들은 평균적으로 젊고 건강해 보이는 외모를 선호했습니다. 이는 ‘건강한 자손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는 신호로, 생식 능력이 높은 상대에게 본능적으로 끌리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깨끗한 피부, 대칭적인 얼굴, 체형, 활력 있는 모습 등이 좋은 짝의 조건으로 인식됩니다.

여성의 경우, 여성들은 경제적 안정성과 사회적 지위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는 출산과 양육에 드는 자원을 파트너가 충분히 제공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작용합니다. 실제로 많은 문화권에서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성’이 결혼 시장에서 우대받는 현상이 관찰됩니다.

버스는 이러한 결과가 단지 사회적 세뇌나 미디어의 영향 때문이 아니라, 진화 과정에서 ‘유전된 적응 전략’임을 강조했습니다.


진화심리학의 시사점

이 같은 연구 결과는 우리가 흔히 ‘이성 선택은 마음과 가치관에 따른다’고 믿는 것과 달리, 상당 부분은 수천 년간 축적된 유전적 본능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는 문화, 개인차, 상황적 요인에 따라 다양성이 존재하며, 모든 사람이 전형적인 진화심리학적 패턴을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평균적으로는 이러한 본능적 경향이 여전히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이성 선택은 단순한 ‘의식적 판단’만이 아니라, 깊숙이 자리한 진화적 본능과 문화적 규범이 맞물려 복합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억제: 문화와 도덕이 만들어낸 사회적 기준

그렇다면 왜 인간의 본능적인 이성 선택이 사회적으로 공개적으로 드러나기 어렵고, 오히려 숨겨져야 할 ‘비밀’이 되었을까요? 이 질문은 인간이 단순한 생물학적 존재를 넘어, 복잡한 문화와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자신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개인적 수치심이 아니라, 오랜 세월 형성된 사회적·문화적 장치에 의해 욕망을 억제하고 통제하도록 내면화된 결과입니다. 인간 사회는 수천 년 동안 사회적 질서와 조화를 유지하기 위해 욕망을 조절하는 규범과 도덕, 의례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서양의 경우: 기독교적 가치관과 욕망 억제

서양 사회에서 욕망 억제의 핵심 축은 기독교 윤리와 신학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육체적 욕망’을 ‘죄악’으로 규정하고, 물질적 부나 성적 욕망 같은 것들을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기독교 사상은 ‘영혼’과 ‘육체’를 엄격히 분리했습니다. 육체의 욕망은 타락과 죄의 원천으로 여겨져, 영혼의 순수성과 도덕적 완전성을 해치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는 ‘육체의 쾌락을 억제하고 영혼을 정화하라’는 강력한 윤리적 명령으로 사회에 확산되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여성의 외모나 남성의 재산을 기준으로 한 결혼은 탐욕과 허영의 죄로 간주되었습니다. 결혼은 신 앞에서 이루어지는 신성한 계약이며, 순결과 헌신, 신의 같은 내면적 덕목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강조되었습니다. “내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 구절은 무조건적이고 이타적인 사랑의 이상을 제시하며, 욕망을 넘어선 사랑이 사회적 미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처럼 서구 사회에서는 ‘본능적인 욕망’을 억제하고 통제하는 것이 개인 윤리뿐 아니라 사회 질서 유지의 핵심 과제가 되었습니다. 이 가치관은 근대에 이르러서도 다양한 형태로 이어져, 성적 욕망, 물질적 욕망, 그리고 심지어 외모를 기준으로 한 선택까지도 도덕적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동양의 경우: 유교적 이상과 욕망 억제

한편 동아시아 사회, 특히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욕망 억제의 중심축은 유교 사상에 있습니다. 유교는 인간의 감정보다는 도덕과 책임, 가정과 사회의 조화를 중시했습니다. 특히 ‘인의예지’—즉 인간에 대한 사랑과 올바름, 예의범절, 지혜를 기반으로 한 윤리 체계—는 개인 욕망을 억제하고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는 도덕적 기준이 되었습니다.

유교 사회에서 결혼은 개인의 사랑이나 욕망을 충족시키는 행위가 아니라, 가족과 사회의 조화를 위한 제도적 틀이었습니다. 개인의 감정은 가족의 이익과 사회적 책임 앞에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는 ‘가정의 질서’, ‘부모에 대한 효(孝)’와 같은 가치가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내린 결과입니다.

욕망을 드러내는 행위는 천박하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특히 성적 욕망은 엄격한 예의범절로 감싸여야 하며, 이를 무시하거나 드러내는 것은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보다는 사회적 조화와 안정, 그리고 도덕적 완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유교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문화적 억제의 사회적 기능과 현대적 함의

이처럼 동서양 모두에서 본능적 욕망은 단순히 개인 차원에서 제어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질서와 문명 유지라는 목적 하에 ‘억제’되고 ‘은폐’되어 왔습니다. 욕망 억제는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 공동체의 연대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욕망의 직접적 표출은 탐욕, 이기심, 갈등으로 비춰져 집단 내 불화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도덕적 위선’과 ‘사회적 가면’이라는 현상이 발생하며, 개인은 욕망을 숨기고 ‘이상적인 모습’을 연기하도록 요구받았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러한 문화적·도덕적 억제의 전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매체와 교육, 사회적 관습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재생산되고 강화됩니다. 본능적 욕망은 인정받지 못하고 ‘숨겨야 할 비밀’로 남으며, 그로 인해 개인은 내면의 갈등과 자기기만, 사회적 위선에 시달리게 됩니다.


교육: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는 본능 억제 훈련

이처럼 인간의 본능적 욕망과 선택이 문화와 도덕이라는 사회적 장치에 의해 억제된다는 사실은, 그 장치가 어디서 작동하고 내면화되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줍니다. 그 중심에 바로 교육이 있습니다.

교육은 본능 억제의 최초이자 가장 강력한 현장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적 존재로 성장합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접하는 ‘사회적 규범’과 ‘도덕적 가치’는 가정과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을 통해 체계적으로 전수됩니다. 이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개인의 심리와 행동 패턴을 형성하고 내면화하는 ‘사회화 과정’의 핵심입니다. 특히, 이성 선택과 관련한 본능적 욕망에 대해서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옳고 그름’을 가르치고, ‘어떤 선택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지’를 분명히 구분해 줍니다.


우리가 어릴 때 듣는 말들: 선의와 훈육의 이중성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들을 수없이 듣고 배웁니다. “외모는 늙으면 다 사라져. 마음이 중요해.”

“돈 많다고 다 행복한 건 아니야.” “조건보다는 진심을 봐야지.” 이런 말들은 겉보기에는 ‘인간의 내면적 가치를 존중하라’는 선한 메시지입니다. 부모님, 교사, 사회 어른들이 ‘외모 지상주의’나 ‘물질 만능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우리의 자연스러운 선택 본능—즉, 외모나 경제력과 같은 조건에 끌리는 본능을 ‘옳지 않은 것’ 혹은 ‘부도덕한 것’으로 낙인찍는 사회적 훈육이 숨어 있습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우리에게 ‘본능적 욕망은 숨겨야 할 것’이며, 드러내는 것은 부끄럽고 잘못된 일이다라는 내면적 기준을 심어 줍니다. 이는 곧 본능에 따른 솔직한 끌림이나 욕망을 ‘부적절한 것’으로 여기게 만들고, 그 결과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에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어린 시절 교육 프로그램에서의 본능 억제 메시지

현대의 많은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은 아이들에게 ‘겉모습보다 내면이 중요하다’는 도덕적 교훈을 반복적으로 전달합니다. 예를 들어, 동화책이나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들은 외모보다 용기, 친절, 지혜 같은 내면적 덕목을 극찬받습니다. 이러한 콘텐츠는 아이들에게 ‘외적인 조건에 의한 평가보다는 인격과 가치관을 중시하라’는 메시지를 내면화하도록 돕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메시지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갖고 있는 외모에 대한 관심이나 소유욕, 경쟁심 같은 본능적 욕망을 ‘부적절한 것’으로 인식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어린 시절부터 ‘본능을 억제하고 도덕적 이상에 맞는 선택을 하라’는 훈련이 시작됩니다.


가족에서의 본능 억제 메시지

가정은 아이의 첫 사회화 공간이자, 본능 억제 교육이 가장 강력하게 작동하는 장소입니다. 부모들은 종종 아이에게 “외모보다 마음을 봐야 한다”, “돈 많다고 행복한 건 아니다”라고 말하며, 겉으로 드러나는 조건보다 내면과 도덕적 가치가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연애와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도, 조건보다는 ‘진심’과 ‘사랑’을 강조하며, 현실적인 욕망이나 조건을 드러내는 것을 부정적으로 여기도록 유도합니다. 이는 부모 세대가 겪어온 사회적 경험과 도덕적 기준이 아이에게 전해지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정 교육은 때로 아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 욕망을 부끄러워하고 숨기도록 만들며, 자기기만적 태도의 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학교에서의 본능 억제 메시지

학교 교육은 가족과 연계되어 더 조직적이고 공식적으로 본능 억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도덕 교육이나 인성 교육 시간에는 ‘차별하지 말고 내면을 보라’,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교훈이 주로 다뤄집니다. 특히 성교육에서는 성적 욕망을 단순한 쾌락이 아닌 책임과 절제의 문제로 가르치며, 충동적 욕망의 통제를 강조합니다. 교사와 친구들 사이에서도 외모나 경제력, 배경에 대해 직접 언급하거나 드러내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거나 ‘천박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이러한 학교 교육과 분위기는 아이들에게 자연스러운 욕망 표현을 억압하고, ‘본능은 숨겨야 한다’는 강한 사회적 규범을 체득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미디어에서의 본능 억제 메시지

현대 미디어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복잡한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합니다. 한편으로는 “내면을 봐야 한다” “진정한 사랑은 외모가 아니라 마음이다”는 이상적인 메시지를 주입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광고, 드라마, SNS 등에서는 끊임없이 ‘외모 지상주의’, ‘성공과 부’의 이미지를 강조하며 본능적 욕망을 부추깁니다.

이처럼 미디어는 상반된 메시지를 동시에 보내며, 아이들은 본능과 이상 사이에서 혼란을 겪게 됩니다.

미디어가 재생산하는 이상적 이미지와 욕망 자극은 본능을 억제하라는 교육적 메시지와 충돌하며, 자기기만과 사회적 위선의 복잡한 심리 구조를 강화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본능에 솔직하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가면을 쓰고 살아가도록 훈련받습니다.


죄책감과 자기검열: 본능과의 내적 갈등

이런 교육은 단순한 도덕 교육을 넘어, 개인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갈등을 야기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느끼는 강렬한 본능적 끌림을, 사회적 규범 때문에 인정하거나 드러내기 어렵게 됩니다. 자신의 감정이나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속물’ 혹은 ‘천박’한 행동으로 평가될까 두려워집니다. 그 결과, 자신의 선택 동기를 의식적으로 포장하고 왜곡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경제력이 좋아서 그 사람에게 끌렸다’고 솔직히 인정하지 못하고, 대신 ‘성실하고 배려심 있어서 좋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본능적 욕망에 대한 ‘자기기만’이자 ‘사회적 포장’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또한, 교육을 통해 내면화된 이 본능 억제 규범은 개인의 대인관계와 사회적 상호작용에서도 작동합니다. 연애 상대나 배우자를 선택할 때, 진심을 내세우는 ‘사회적 언어’와 ‘도덕적 기준’을 맞추려는 압박이 커집니다.

실제로는 외모, 재력, 사회적 지위 같은 본능적 기준을 따르면서도, 그 선택을 합리화하는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이유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변의 평가나 비난에 직면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과 사회적 규범은 결국 ‘진짜 마음’과 ‘말하는 마음’ 사이의 괴리를 만들고, 개인은 자신의 욕망을 숨기면서도 동시에 그것에 끌리는 이중적 태도를 형성하게 됩니다.


현대 사회에서의 교육과 본능 억제: 새로운 도전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는 미디어와 SNS를 통한 다양한 ‘이상적 이미지’와 ‘가치관’이 교육과 맞물리며, 본능 억제의 메시지를 더욱 복잡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내면을 보라’는 교육 메시지는 ‘외모 중심 사회’의 거센 현실과 충돌하며, 개인은 더욱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솔직하지 못한 모습을 반복하며,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사회가 원하는 ‘가면’을 쓰는 삶을 이어갑니다.


심리적 메커니즘: 자기기만과 사회적 위선

우리가 ‘본능’을 숨기고 ‘도덕적’이고 ‘이상적인’ 모습만을 외치는 현상의 근저에는 심리학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인 자기기만(self-deception) 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개념은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자신도 모르게 진실을 왜곡하거나 숨기는 복잡한 심리 과정을 설명합니다.

자기기만이란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을 속일 수 있을까요? 이는 단순히 거짓말이나 속임수와는 다릅니다. 자기기만은 자신이 ‘이렇다’고 믿지만, 실제 행동과 내면은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즉,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진짜 욕망이나 동기를 왜곡하여 ‘스스로도 모르게’ 다른 모습으로 인식하는 심리적 방어 기제입니다.


본능적 선택과 자기기만의 연결

우리는 본능에 따라 누군가를 선택하고 끌리면서도, 그 동기를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여성이 경제력이 있는 남성과 연애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성실하고 배려심이 깊어서 좋아졌어요.”

그러나 실제로는 경제력과 안정감이 결정적인 매력 요소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이유를 솔직히 인정하면 ‘속물’이나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칠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지 개인의 허영심이나 거짓말이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자기기만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긍정적인 도덕적 인간으로 유지하려는 심리적 욕구 때문에 진실을 왜곡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회적 위선: 타인 앞에서의 가면극

이와 더불어, 우리는 타인 앞에서 ‘도덕적인 나’를 연기하는 사회적 위선(social hypocrisy) 의 상태에 빠집니다. 사회적 위선이란, 자신의 실제 내면이나 행동과는 달리, 겉으로는 도덕적이고 이상적인 모습을 보이려 하는 태도를 뜻합니다.

사회적 위선은 말하자면 ‘가면을 쓴 상태’입니다. 본능적 욕망이나 실제 동기는 숨기고,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적 기준에 맞춘 행동과 말을 연기합니다.

이 가면은 사회적 승인과 긍정적 평판을 얻기 위해 쓰입니다. 외모나 돈을 중시하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반면, 내면을 중시하는 척해야 인정받는 현실에서, 위선적 태도는 생존 전략이 됩니다.

자기기만과 사회적 위선의 긴밀한 연결, 이 두 현상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자기기만은 ‘내면에서 나 자신을 속이는 과정’이고, 사회적 위선은 ‘외부에 보이는 나를 속이는 과정’입니다.

사람들은 본능적 욕망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자기기만에 빠지고, 동시에 타인에게는 도덕적인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사회적 위선을 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진짜 나’와 ‘사회적 나’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고, 내면 갈등과 심리적 긴장이 증폭됩니다.

진화심리학자 로버트 트리버스(Robert Trivers)는 자기기만이 ‘타인을 속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스스로를 속으면 타인도 더 쉽게 속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속셈을 명백히 알면, 상대방은 그것을 간파하고 반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기만을 통해 진짜 동기조차 자신이 모르면,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도 그 허위 모습을 믿게 되어 성공적인 속임수가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실생활 속 자기기만과 위선의 예시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은 자기기만과 사회적 위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겉으로는 도덕과 이상을 말하지만, 실제 선택과 행동에서는 본능과 욕망이 드러나는 순간이 많습니다. 이 간극이 바로 인간 사회의 모순적 현실입니다.


연애와 결혼: “나는 외모를 보지 않아”의 역설

많은 사람들이 연애담을 이야기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성격이 제일 중요해요.” “외모는 다 늙으면 사라져요. 마음이 진짜예요.” 하지만 실제로는 어떨까요? 데이트 앱 데이터를 보면, 남성은 상대 여성의 프로필 사진 몇 장만 보고 호불호를 결정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여성도 “키, 직업, 학력, 재정 능력” 같은 스펙을 무의식적으로 걸러내는 데 큰 비중을 둡니다. 결혼정보회사 설문을 보면, 이상형 항목에서 “외모보다 성격”을 꼽으면서도 실제 성혼 성사율은 상대의 조건(연봉, 학벌, 직업)에 크게 좌우됩니다.

그리고 본능적 매력을 느꼈더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잘생겨서 좋아졌다” 대신 “다정하고 유머러스해서 끌렸다”고 포장하는 식입니다. 본능적 이유를 그대로 드러내면 스스로가 ‘속물’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즉, 연애와 결혼에서의 자기기만은 욕망은 숨기고, 미덕을 내세우는 가면극으로 나타납니다.


정치: “청렴과 정의”라는 구호와 부패의 현실

정치야말로 사회적 위선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무대입니다. 정치인은 늘 “청렴”, “국민을 위한 봉사”를 외치며 도덕적 이미지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실제 정치 스캔들을 보면, 부정부패, 권력 남용, 사적 이익 챙기기가 반복됩니다. 그리고 정치인 스스로도 자신을 “정의로운 인물”로 믿으려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까지 속여야 타인도 속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버트 트리버스의 말처럼, 자기기만은 타인을 속이기 위한 최선의 전략입니다. 국민들 역시 이런 모순을 알면서도 “그래도 다른 정치인보다는 낫다”, “공익을 위한 희생도 조금은 하겠지”라고 스스로 합리화합니다. 이로써 사회 전체가 집단적 자기기만에 빠집니다. 결국, 정치 영역의 위선은 개인 차원을 넘어 국가적 규모의 집단 자기기만으로 확장됩니다.


SNS: “진심”과 “꾸밈” 사이의 아이러니

오늘날 우리는 SNS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자신을 연기합니다.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에는 “나는 외모보다 성격을 봐요”, “나는 돈보다 가치관이 맞는 사람이 좋아요” 같은 이상적인 연애담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동시에 #몸매스타그램, #재력남, #스펙녀와 같은 콘텐츠가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합니다. 즉, 사회는 한쪽에서는 “본능을 억제하라”고 가르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본능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쏟아내는 셈입니다.

SNS 사용자는 사진, 동영상, 스토리를 통해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포장합니다. 사진은 수십 장을 찍고, 가장 잘 나온 한 장을 고릅니다. 피부 보정 필터와 편집 툴은 현실을 미묘하게 왜곡시킵니다. 여행, 카페, 데이트 장소는 ‘인증샷’을 찍기 위한 소비 공간으로 변합니다. 그 결과, 진짜 모습보다 더 행복하고, 더 완벽한 나를 만들어내려는 욕망이 강해집니다. 이는 본능적 욕구(타인의 인정을 받고 싶은 욕망)를 억제하는 동시에, 다른 방식으로 더 극대화하는 아이러니입니다. 이 과정에서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가짜 자아(false self)’가 형성됩니다. 진짜 나는 불안정하고 결핍되어 있지만, SNS에 올려진 가면은 화려하고 완벽합니다.

SNS는 끝없는 비교의 장입니다. 친구가 올린 여행 사진을 보며 “나는 왜 이렇게 평범하지?”라고 느끼고, 팔로워가 자랑하는 명품이나 연애담을 보며 “나는 뒤처지고 있다”고 자책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친구 또한 ‘꾸며진 이미지’를 연기하는 중입니다. 결국 모두가 자기기만과 위선의 무대극에 참여하면서, 동시에 타인의 가면에 속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SNS의 구조는 인간의 도파민 시스템을 자극합니다. 알림, 좋아요, 댓글은 뇌 보상회로를 자극하는 일종의 ‘사회적 마약’입니다. 사용자는 “나는 솔직하다”고 믿으면서도, 실제로는 좋아요 수를 높이기 위해 글과 사진을 조율합니다. 결국 “타인의 시선”이 기준이 되어버리고, 진짜 감정은 과장·편집된 형태로만 표현됩니다. 이는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를 심화시킵니다. ‘나는 진실하다’는 자기 이미지와, ‘나는 좋아요를 위해 꾸민다’는 행동이 충돌할 때, 인간은 스스로에게조차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SNS는 종종 “꾸밈 없는 나, 진짜 나를 보여준다”는 메시지를 내세웁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장 가짜가 넘치는 무대가 되었습니다. #nofilter(필터 없음) 해시태그조차 사실은 다른 방식으로 보정된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솔직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조차, 무의식적으로 가장 인정받을 만한 감정과 삶의 단면만 보여줍니다.

타인도 그 위선을 알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속아주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사회적 합의이자 ‘연극’의 규칙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SNS는 인간 본능을 억누르면서 동시에 본능을 자극하는 이중적 공간입니다. 우리는 진짜 나를 드러내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도덕적·사회적 규범에 맞는 ‘가면’을 써야만 합니다. 그 결과, SNS는 현대판 가면무도회가 되었습니다. 모두가 “진짜”를 외치면서, 사실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가짜’를 연기하는 무대 말입니다.


일상의 작은 사례들

자기기만과 위선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소소한 일상 속에서도 자주 발견됩니다. 직장에서 상사는 “직원들의 성장을 지원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성과를 위해 부하직원을 이용합니다. 직원은 “회사를 위해 헌신한다”고 말하지만, 내심은 승진과 연봉만을 계산합니다. 친구 관계를 보면 친구에게 “너의 성격이 좋아서 같이 논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인맥이나 경제적 도움 때문에 유지되는 관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비를 하려고 할 때 “나는 환경을 위해 친환경 제품을 산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힙’하고 이미지 관리에 도움이 되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연애, 정치, SNS, 직장, 소비 등 어디서나 자기기만과 사회적 위선은 발견됩니다. 우리는 본능과 욕망에 따라 행동하면서도,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보다는 도덕적·이상적 언어로 포장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의 거짓말이 아니라, 사회적 생존 전략이자 심리적 방어 기제입니다.


결론: 본능을 숨겨야만 선택받는 사회

결국, 우리는 왜 본능적인 선택을 숨길까요? 그것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문화적 환경과 규범의 산물입니다. 본능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것’으로 낙인찍혔습니다. 외모를 중시하면 얕은 사람, 돈을 중시하면 속물이라는 사회적 비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을 감추고, 대신 “진심”과 “내면”이라는 도덕적 언어로 포장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본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억눌린 본능은 더욱 교묘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재현됩니다.

연애 시장에서는 “조건을 보지 않는다”는 말과 달리, 실제로는 외모와 재력이 여전히 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작동합니다. 직장에서는 “성과보다 인성이 중요하다”는 구호와 달리, 실제 승진은 성과와 네트워크에 의해 결정됩니다. 정치에서는 “국민을 위한다”는 미사여구 뒤에 권력과 이해관계가 숨습니다.

이처럼 본능을 억제하라는 사회적 규범과 본능을 따르는 실제 욕망 사이의 간극이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위선(hypocrisy)’이라는 전략입니다. 위선은 단순한 결함이 아니라, 사실상 사회가 유지되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욕망을 드러내면 공동체는 갈등과 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위선은 사회적 안정장치이자 동시에 개인의 심리적 부담이기도 합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마주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는 가능할까?” 만약 우리가 “나는 외모가 중요하다”, “나는 경제력이 있는 배우자를 원한다”고 솔직히 말한다면, 그것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비난받을까요? 아니면 더 정직한 관계의 시작일 수 있을까요?

“본능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존중받는 사회는 가능할까?” 인간의 본능은 지워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루고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능을 죄악시하기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건강하고 공정하게 드러낼 수 있을지가 중요한 과제가 됩니다.

이 질문은 단지 연애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정치에서, 지도자는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권력과 이익을 추구합니다. 국민은 이를 알면서도, 도덕적 이상에 기대어 투표합니다. 직장에서, 우리는 “성과보다 팀워크”라는 말을 듣지만, 실제 인사와 평가 시스템은 성과와 경쟁으로 돌아갑니다. 직원들은 협력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경쟁자의 실수를 바라는 자기기만에 빠집니다. 가족에서조차,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이상이 강조되지만, 실제로는 경제적 부담, 사회적 지위, 자녀의 성취가 부모의 사랑과 자부심에 교묘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인간이 맺는 모든 관계 속에는 본능과 규범, 진짜와 가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긴장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긴장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채, 위선이라는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따라서 본능을 숨겨야만 선택받는 사회란, 사실상 우리 모두가 참여하는 집단적 연극입니다. 우리는 본능을 억누르며 도덕적 이상을 연기하지만, 동시에 그 본능은 여전히 행동을 좌우합니다. 앞으로의 과제는, 본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더 정직하게 인정하고 다루는 문화적 틀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가면을 쓴 연극’에서 벗어나, 진짜 나와 타인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록. 통계로 본 연애의 선택 기준: 말과 행동의 간극

우리가 연애와 결혼을 이야기할 때, ‘사랑은 마음’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실제 데이터는 훨씬 더 냉정하고 현실적입니다. 2014년 미국 데이트 사이트 OkCupid 연구에 따르면, 남성들의 시선은 극단적으로 쏠려 있습니다. 무려 남성의 80%가 여성 상위 20%의 외모에만 집중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즉, ‘상위 20% 법칙’이 연애 시장에도 그대로 작동하는 셈입니다. 여성의 경우, 미국 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David Buss)의 1989년 연구에 따르면, 여성들이 연애·결혼 상대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조건 중 하나가 ‘재정 능력’이었습니다. 외모가 절대적 조건은 아니지만, 경제력이 상위 조건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뜻입니다.

한국 사회는 어떨까요? 겉으로는 “사람을 외모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가치관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2022) 조사에서 82%가 ‘외모 평가를 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조사에서 남성 79%, 여성 86%가 ‘연애 상대를 고를 때 외모·학벌·재력을 고려한다’고 답했습니다. 말과 행동의 충돌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하버드대 실험(2008)에서도 연애 상대를 고를 때 70% 이상이 외모와 재력을 중시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즉, 사람들은 입으로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실제 선택 순간에는 외모와 조건을 가장 중점적으로 본다는 뜻입니다.

정리하자면, 데이터는 우리에게 냉정한 진실을 보여줍니다. 남성은 소수의 매력적인 여성에게 집중하고, 여성은 경제력 있는 남성을 선호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은 스스로 “외모 따지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외모·학벌·재력을 철저히 따지고 있습니다.


맺음말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연애’라는 가장 개인적이고 친밀한 관계 속에서도, 얼마나 사회적·문화적 압력과 위선에 얽매여 있는지를 되돌아볼 수 있습니다. 감정과 욕망을 숨기고, 사회가 요구하는 가면을 쓴 채 행동하는 이중성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문화가 만들어낸 구조적 현상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구조를 직시하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변화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점입니다. 스스로를 솔직하게 마주하고, 타인에게도 진심을 표현하려는 노력은 단순한 감정적 실험이 아니라, 건강한 인간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솔직함이나 무조건적인 감정 개방이 아니라, 사회적 압력 속에서도 자신과 타인의 진심을 존중하며 균형을 찾는 용기입니다. 그 첫걸음을 떼는 순간, 우리는 관계의 진정한 의미와 깊이를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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