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를 쓰는 이유
98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해, 2010년에 학교를 졸업했다. 무려 12년을 군대와 대학, 그리고 학보사에서 보냈다. 막연히 '글 쓰는 일로 돈을 벌겠다'는 꿈을 꿨다. 동기들이 직장에 들어가 월급을 받고 있을 때, 여전히 나는 '글 쓰는 꿈'을 꾸었다. 월급쟁이 친구들이 사주는 술을 얻어먹고 어머니에게는 용돈 한 푼 드리지 못하는, 그런 성실한 지각생이었다.
2010년 2월,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고 있을 무렵 우연히 가수 김현식의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그 다큐 이후, 내 인생관은 180도 변했다. 동기들처럼 월급쟁이가 된 나는 15년째 한 회사를 다니고 있다. 매일 회사라는 전쟁터에서 이렇게 '직장인 난중일기'를 쓰고 있는 것이다.
고(故) 김현식이 회상하는 자신의 삶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일까? 그는 곡을 만들 때도, 무대에 있을 때도 아닌, ‘아내와 피자 가게를 운영했던 1년’이라고 말한다. 결혼 직후 음악으로는 생계가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피자 가게를 냈었는데, 아내가 피자를 만들고 자신이 직접 배달을 하며 돈을 벌었던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는 고백이다.
당신도 그렇겠지만, 나 역시 지금의 직장이 '적성'에 맞지는 않는다. 인정받는 것은 진즉에 포기했고, 차라리 '의심'만 받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맘 졸이며 보내고 있다. 직장인들이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하겠지만, 내 노력과 성실의 과정이 ‘헛수고’로 돌아갈 때도 종종 있다. 무대에서 노래해야 할 사람이 오토바이를 타고 피자를 배달해야 하는 상황이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인 것이다. ‘좀 더 나은 현실’을 위해서 적성이나 꿈을 버려야 했던 모습 말이다.
그럼에도 지금 내가 느끼는 행복의 원천은, 음악을 포기하고 피자를 팔아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김현식의 그것과 같다. 입사를 한 후 어머니께 처음으로 용돈을 드렸고, 맨날 얻어먹기만 했던 친구들을 불러내 의기양양하게 밥과 술을 샀다. 물질과 마음으로 빚을 졌던 사람들을 위해 이제는 내가 뭔가 쓸 수 있다는 현실이 행복한 것이다.
10년 넘게 꿈만 좇으며 성실한 지각생 노릇을 하다가, 갑자기 '성실한 무기수(그러니까, 직장인)'가 된 이유.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이 내 적성을 찾는 것 못지않게 행복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기계발도 좋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적성'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인내'이다. 버틴다고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내일이면 회사에 출근해 '내가 왜 저 인간에게 이런 말을 들어야 할까'라며 나의 삶을 잠시 한탄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21일은 월급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