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뭐라든, 나는 내가 필요하다
마음에 창을 내어 들여다볼 수 있다면, 요즘 나는 그 창에서 '회피하거나 도망치고 싶은 감정'을 한가득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주말까지 출근하며 적극적으로 일을 처리해왔는데, 갑작스러운 마음 변화에 조금 당황스럽다. 평일에는 할 일 목록을 계속 쌓아두고, 쉬는 날엔 걱정을 계속 쌓는다. 뭐라도 해내야겠다는 조급한 생각에 평소 하고 싶던 글쓰기를 해봤지만 큰 도움은 없었다. 작은 성취감은 있었으나, 내 글에서 조급함이 보여 만족스럽지 못했다. 어쩌면, 글이라는 것이 마음의 창일 지도 모른다. 글이라는 창을 통해 스스로를 바라보니, 도망치고 싶은 간절함이 엿보일 뿐이었다.
젊은 시절, 나는 회피하듯 군대를 갔다. 인정받고 싶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 선택한 것이 군 장기 복무였다. 군대에서 장기 복무를 하면 필요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고, 스스로 생각해 봐도 '시간 낭비'같은 선택이었는데, 나는 굳이 그 길을 택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것이, 내 행복의 기준이었다.
군대에서 부사관으로 근무하며, ROTC 출신의 소대장 한 명을 만났다. 보통 소대장들은 허세나 패기가 넘친다. 갓 대학을 졸업한 남자들이 보이는 특유의 '약간 어설픈 자신감' 말이다. 그런데 내가 만난 그 소대장은 자신감이 심하게 없었다. 그때는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들어 소대장 생각이 자주 난다. 지금 내 마음속의 '회피감'이, 그 젊은 소대장의 마음에도 한가득 자리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한 번은 이 소대장이 탈영을 했다. 사실 탈영은 아니었다. 부대 안 창고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군대에서는 위치 파악이 필수인데, 갑자기 연락 두절이 되니 탈영으로 오인한 것이다. 회피감이 극에 달했는데, 부대 밖으로 도망칠 수는 없었나 보다. 지금 생각해도, 소대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그 후로 소대장은 장기 휴가를 내고 치료를 받았다. 부대에서는 '이상한 사람'이라며 뒷말이 많았으나, 한 달쯤 뒤에 소대장은 밝은 모습으로 복귀했다. 초등학생들이 좋아서 교육대학에 진학했다는 소대장은, 의외로 말 많은 수다쟁이였다. 저렇게 밝은 사람이 어쩌다 창고에 숨어 온 부대를 뒤집어 놓았을까? 저런 게 정신력이 약하다는 걸까? 사람의 의지력, 정신력이 중요하구나... 등등의 생각을 했었다.
나는 2024년에 반 년 이상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회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병원에서는 머릿속 편도체라는 것이 계속해서 '도망가!'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어, 아무리 쉬어도 불안감과 긴장감으로 피곤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 자존감에 대한 책을 읽고, 마음 지구력이라는 책도 보며 많은 도움을 얻었다. 회사의 '어른'같은 분들의 도움을 얻어, 올해 초 가해자로부터 사과를 받았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닌 듯했다. 가해자와 나는 여전히 작은 회사에서 함께 일하고 있으며,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내가 정신력이 약해서일까? 의지력이 부족해서 회피하려는 것일까? 요즘 들어 예전 소대장 생각이 자주 나는 건, 그때 해결하지 못하고 '회피한' 질문 때문일 것이다. 나는 왜 자꾸 도망치고 싶은 것일까?
나는 얼마 전까지 회피감이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외부적 요인'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소대장 역시 훈련소에서 괴롭힘을 심하게 당하며 정신과 진료를 받게 됐다고 했다. '타인을 괴롭히고 깎아내림으로써 존재감을 얻는 어리석은 사람들 때문에 내가 힘든 것이구나', '평생 아무 문제 없이 살아왔는데, 어쩌다 이상한 성격의 사람을 만나 회피하는 사람이 된 것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다르게 느낀다. 회피하려는 마음의 원인은 '어리석은 타인'이라는 외부적 요인에, '인정 욕구'라는 내부적 요인도 있기 때문이다. 인정받고 싶은 강한 욕구가, 오히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만든다. 모지리의 괴롭힘과 모멸감을 견디기 어려웠던 것도 중요한 원인이겠지만, 조직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 내가 이곳에서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회피감을 만들었을 것이다. 군대 장기 복무를 할 정도로 평생을 인정받고 싶어 했던 것을 보면, 아마 정답일 것 같다. 강한 인정 욕구가 도망치고 싶은 결과를 만들었다니, 아이러니하다.
어찌 됐든, 원인을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최소한, 나는 나를 인정할 수 있지 않은가. 내가 나를 인정해 주고, 잘 한다고 칭찬해 주면 되는 것인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며, 칭찬에 목이 말라 스스로를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스스로에게 미안한 말, 미안한 생각은 하지 말자.
"남들이 뭐라든, 나는 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