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사탕을 줘야 하는 이유
나는 무교다. 무신론자는 아니지만, 특별한 믿음은 없다. 몇몇 종교인들의 독선이 싫어서, 끼리끼리 모이는 것이 싫어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게을러서 종교를 갖지 않는다. 주말에 느긋하게 쉬고 싶고,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뿐이다.
오래전, 김용규 작가의 책을 읽다가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면, 이왕이면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 좋다’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어차피 증명할 수 없다면, 없는 것보다는 있는 쪽으로 믿는 것이 낫다는 글로 기억한다. 무엇을 하든, 이왕이면 긍정적인 부분을 바라보는 것이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맞는 말일 것이다.
한 달 정도, 이래저래 생각이 많았다. 일에 대한 고민이었다. <인디워커>와 <위대한 멈춤>을 읽으며 내가 지금 하는 일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정녕 이 일이 내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일인가? 이 일은 나를 회사의 부속품으로 만드는 것은 아닌가? 마음의 소리를 경청해서 하고 있는 일인가?(사실 이런 질문들은 답이 정해져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니 당장이라도 회사를 떠나야 할 것 같았다. 자, 이제 내게 ‘위대한 멈춤’을 선물하고, ‘인디워커’로 거듭나자!
마침 1박 여행을 하며 시골 마을의 한 건축가를 만났다. 자신이 소유한 땅에 폐자제를 모아 펜션을 만든 분이었다. 평생의 커리어를 응축해 펜션 사업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계곡을 끼고 있는 넓은 터에 족구장과 아이들 놀이터, 그네, 티 카페를 만들고 단독 펜션 건물을 올려, 당장이라도 예약하고 싶은 마음이 동했다. 그런데, 그런 마음과 동시에 ‘아 씨… 내 커리어는 회사 밖에서 어디에 써먹나’라는 생각이 함께 동했다. 난 뭐 하고 살아왔나, 앞으로 뭐해먹고 살아가나….
회사를 그만두고, 당장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장점을 살린 일을 하자는 생각이 드니 도무지 일에 손이 가질 않았다. 하는 일들이 하찮아 보이고(사실 하찮다), 지금 쌓고 있는 경력은 은퇴 후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문서 작성 경력은 집안일에도 써먹을 수 없다). 그런 와중에 정신과 진료까지 받아가며 회사 생활을 유지해야 할까. 갑자기 회사가 참을 수 없게 싫고 지루해졌다.
“점점 회사에서 부속품이 되어 가는 기분입니다. 요즘은 은퇴하면 뭘 할 수 있을지 생각이 많아져요.”
며칠 전, 거래처 담당자와 점심을 먹으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 거래처 담당자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하시던 말 같기도 한 조언을 건넸다.
“꿈을 찾겠다며 회사를 떠난 사람들이 성공한 이야기만 부각되지만, 결국 꾸준하게 버틴 사람들이 성공하더군요.”
그리고 결정적인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왕 하는 일, 저는 회사가 우리 애들 먹여 살려주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거래처 담당자는 애가 넷이다)
‘이왕(已往)’이란 ‘지금보다 이전’, ‘이미 정해진 사실로서 그렇게 된 바에’라는 뜻이 있다. 이미 지나간 사실에 대하여 후회해 봤자 아무 소용없을 때,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 위해 ‘시동을 걸듯’ 사용하는 말이다.
한 달 동안 생각이 많았다. 딱히 정해 놓은 것도 없이 ‘일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며 방황을 했다. 막연히, 이 일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회사의 단점과 회사에서 만나는 ‘악연’에 대한 생각만 했다. 그래서 더 출근하고 싶지 않았다.
이왕이면, 아직은 회사의 장점을 보려 한다. 딱히 이쁜 구석 없고, 부조리함의 천국이지만 어쨌든 지금은 회사 덕분에 우리 가족이 먹고사는 것 아닌가. 어차피 이 회사를 떠나 당장 ‘인디 워커’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이왕 하는 출근, 내가 하는 일의 긍정적인 면을 보고 좋은 것만 생각하겠다. 2025년 5월 초 연휴가 끝나며, 그 간의 방황과 당장 출근하기 싫은 마음을 글로 다잡아 본다.
“중요한 순간에 스스로에게 ‘사탕’을 주어 긍정적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습관화된 사람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 회복 탄력성(김주환 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