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여러분 대단히 죄송합니다. 구 열차인 관계로 냉방이 되기까지 오래 걸립니다. 너그럽게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지하철에서 나오는 안내 방송이다. 기관사님의 잘못이 아닌데 '대단히 죄송'하고 '너그러이 양해'를 부탁하는 말에 화가 났다.
시민들이 당연히 양해하고 기다려야 할 부분을 미리 안내하는 극죄송의 문화. 소수의 극성맞은 시민의 민원을 예방하기 위해 선수 치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억지 민원에는 무대응과 기다림으로 대응하며 조용히 평화롭게 문화를 변화시켜 나가면 좋겠다.
몇 년 전 프랑스에 간 적이 있다. 그곳은 기차와 버스 파업을 자주 하다 보니 배차간격이 시간표보다 너무 길어지더라도 승객들이 아무 말 없이 기다린다고 했다. 노동자들의 파업은 그들의 권리이므로 승객의 기다림도 당연한 것이라 불만 없이 잘 기다린다는 그들의 태도. 기차가 한참만에 와도 큰 소리 내지 않는 모습. 일상에서 여유를 갖는 시민문화는 노동자들의 극죄송문화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구의역의 끼임 사고도 마찬가지다. 일상에 녹아있는 갑질과 신자유주의, 안전보다 효율을 따지는 시스템은 선진 대한민국과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타는 철도가 누군가의 목숨이 녹아들어 있다고 불안하고 죄책감 느끼며 타는 것보다, 더워도 견디고 연착되는 열차를 당연히 기다리며 노약자를 배려하는 철도를 기분 좋게 타고 싶다. 스크린도어가 열리고 닫힐 때마다 편안한 마음으로 이용하고 싶다. 부조리한 안내 방송을 해야만 하는 기관사들의 자괴감을 그만 느끼고 싶다. 철도노조가 붙여둔 작은 스티커 속 외침들이 더 이상 외롭지 않아 보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