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돌 vs. 일차돌)
지친 일상 가운데 맞이하는 토요일은 마치 삶이 내게 주는 선물과 같다. 남편과 함께 근처 브런치 레스토랑에 들려 늦은 아침식사를 할 생각에 늦장을 부리며 침대에서 뒹굴뒹굴 여유를 부렸다. 그러나 여유로움은 나의 몫이 아닌 듯 큰 아들은 "엄마, 나 배고파요... 오늘 아침은 '집밥' 먹고 싶어요."라며 토요일 아침부터 '집밥'을 요구했다. 평소 빵과 시리얼, 우유 등으로 아침을 해결했던 큰아들도 모처럼 토요일에는 '집밥'을 먹고 싶었던 것 같다.
직장맘으로 제대로 아이들을 챙겨주지 못했기에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여유로움을 포기하고 부엌으로 향했으나 도무지 어떤 음식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내게 있어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가 식단을 정하고 음식을 만드는 일이었다. 백종원 셰프의 동영상을 보면서 그대로 따라 해도 비주얼도 맛도 어찌 그리 다를 수 있는지 의문스러울 뿐이다. 큰아들은 나의 음식이 맛없다고 외치면서도 내가 듣기를 원하는 '음식을 만들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아마도 맛을 떠나 엄마가 만든 음식이 먹고 싶은 것 같다.
이런 내게도 궁여지책이 있다. 바로 '차돌박이'이다. 이 녀석은 구워도 먹고, 찌개에 넣어 끓여도 먹고, 면에 넣어 비벼도 먹고, 밥에 싸서도 먹고, 떡볶이에 넣어도 먹고... 활용도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 좋아하는 메뉴이다. 토요일 아침메뉴를 차돌된장찌개와 차돌쌈밥으로 정하고 냉동실에 쟁겨두었던 차돌박이를 꺼내 들었다.
차돌박이는 쉽고 다양한 요리방법으로 먹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인지 차돌구이, 차돌된장찌개, 차돌쫄면, 차돌초밥 등을 메뉴로 하고, 이름 또한 '이차돌'과 '일차돌'인 차돌전문 음식점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름과 인테리어, 메뉴까지 모두 비슷하기에 '이차돌'과 '일차돌'은 서로 공존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결국에는 선발주자인 '이차돌'이 후발주자인 '일차돌'을 상대로 법정 다툼을 시작하였다.
'이차돌'은 차돌박이를 주메뉴로 하는 음식점으로, 해당 사업자는 2017. 경 '이차돌'이라는 상표권을 등록받고 프랜차이즈 영업을 하여왔다. '이차돌' 음식점은 서까래와 보, 원목기둥으로 이루어지고 2단 지붕을 형성한 예스러운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메뉴는 차돌구이와 차돌초밥, 차돌쫄면, 차돌된장찌개가 세트 메뉴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2018. 경부터 '일차돌'이라는 이름으로 차돌박이를 주메뉴로 하고 인테리어도 '이차돌'과 비슷한 형태를 갖춘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영업을 시작하였다.
이에 '이차돌'은 법원에 '일차돌'을 상대로 자신과 유사한 상표와 매장 인테리어, 메뉴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일차돌' 상표와 매장 인테리어, 메뉴의 사용을 금지하고 손해배상을 지급할 것을 청구하였다.
[1심 법원에서는 '이차돌'이 패소하였다.]
우선, '이차돌'과 '일차돌'은 서로 유사한 상표가 아니라고 보았다. 그 이유는 '이차돌'과 '일차돌'에서 공통된 '차돌' 부분은 음식점과 관련하여 '차돌박이'를 연상시키므로 출처로서 표시한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앞부분의 '이' 또는 '일'의 차이로 어느 업체인지 구분할 수 있으므로 소비자들이 오인 혼동할 우려가 없다고 본 것이다.
다음으로, 매장 인테리어와 메뉴에 있어서도 '이차돌'의 노력이나 투자에 의한 성과가 아니라고 보았다. 그 이유는 다른 외식업체들도 일반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인테리어이고 메뉴 또한 다른 식당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판매되고 있는 흔한 요리방법이라는 것이다.
[반면, 2심 법원에서는 '이차돌'이 일부 승소하였다.]
2심 법원은 '이차돌'과 '일차돌'의 매장 인테리어와 메뉴가 유사하다는 주장과 관련하여서는 1심 법원과 같은 이유로 '이차돌'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차돌'과 '일차돌'의 상표 유사 여부에 있어서는 그 판단을 달리하였다.
2심 법원은 '이차돌'과 '일차돌'은 서로 유사한 상표라고 보았다. 그 이유는 '이차돌'과 '일차돌'은 모두 조어로서 첫 글자에 'ㄹ' 받침의 유무만 차이가 있을 뿐 전체적으로 외관과 호칭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차돌'과 '일차돌'이 서로 비슷해서 헷갈린다는 소비자들의 의견이 게재된 네이버 블로그 등의 자료가 증거로 다수 제출되었다.
2심 법원은 '일차돌'이 '이차돌'의 상표권을 침해하였음을 이유로 '일차돌'의 상표 사용을 금지하고, 손해배상으로 3억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선고하였다(특허법원 2022. 4. 28. 선고 2020나1520 판결). 이에 '일차돌'이 상고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2심 판결이 확정되었다.
[보호받을 수 있는 것과 보호받을 수 없는 것]
'이차돌'과 '일차돌'은 이름뿐만 아니라 매장 인테리어와 메뉴도 유사했다. 그런데 법원은 상표 부분만 침해를 인정하고, 매장 인테리어와 메뉴 부분은 침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차돌'은 '이'와 '차돌'을 결합하여 만든 조어이고 등록된 상표이므로 누군가 이와 유사한 '일차돌'을 사용하는 것은 상표권 침해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차돌'의 매장에서 보는 것과 같이 서까래와 보, 원목기둥으로 된 예스러운 인테리어는 일본 음식점이나 주점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형태이다.
그리고 차돌박이를 재료로 사용한 음식으로 '차돌구이'뿐만 아니라 '차돌된장찌개', '차돌비빔면', '차돌냉면', '차돌쫄면', '차돌초밥', '차돌떡볶이' 등 다양한 요리방법이 존재한다. 이런 요리방법은 소비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이 이미 예전부터 사용되어 왔던 매장의 인테리어와 메뉴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특정인만이 독점하여 사용하도록 할 수 없다. 따라서 법원이 이를 보호하지 않은 것이다.
[진정한 차돌이는?]
토요일의 여유로움을 잃고 싶지 않은 나는 먼저 큰아들에게 선수를 쳤다. "아들, 차돌박이 좋아하지? 우리 오늘 아점으로 차돌박이 먹으러 가자. 근처에 차돌전문 음식점이 있는데... 차돌구이, 차돌된짱찌개, 차돌쫄면, 차돌초밥을 다 맛볼 수 있어." 그런데 어쩐 일인지 큰아들은 "엄마, 그냥 빵에 우유 먹을게요. 이번 주 너무 일이 많으셨잖아요. 쉬세요."라고 말한다. 큰아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무한 감동과 행복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지는 한 마디에 감동이 멈췄다. "엄마 저도 이번 주 공부하느냐 힘들었어요... 오늘 오전은 컴퓨터 오락을 하면서 쉬면 안 될까요?"라고 말하면서 동의를 구한다. 그럼 그렇지 큰아들은 내 계략에 맞서 딜을 하고 있다. 나는 토요일의 여유로움을 그리고 큰아들은 컴퓨터 오락의 즐거움을 취득하면서 보이지 않는 거래가 성립되었다.
'이차돌'과 '일차돌'은 큰아들과 나와 같은 합의에 이를 수 없었을까? 이름과 메뉴, 인테리어가 모두 비슷하고 서로 원하는 바도 같기에 합의는 처음부터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이차돌'과 '일차돌' 중 진정한 차돌이가 누구인지 밝혀져야 했다. 결국 1, 2, 3차전까지 계속된 차돌이의 싸움에서 '이차돌'이 종국적으로 승리함에 따라 분쟁이 종결되었다.
'이차돌'과 '일차돌' 중 진정한 차돌이는?
'이차돌'로 판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