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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진 Aug 02. 2022

중요한 건 '맛'이 아니야.

(본죽 vs. 본맛죽)

75세이신 엄마는 중년이 된 딸을 보살피는 일을 멈추지 않으신다. 어깨가 많이 아프셔서 스스로 밥 해 드시기도 어려운데 딸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몸에 좋다는 재료를 가득 넣은 죽을 만들어 오셨다. "엄마, 몸도 아프면서... 죽은 가까운 데서 사 먹으면 돼요. 요즘 사 먹는 죽도 맛있어요." 이젠 엄마가 늙은 딸 걱정을 그만하고 편히 쉬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말을 건넨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똑같다. "딸, 몸에 좋은 재료 가득 넣고 오랜 시간 기도하는 마음으로 끓인 죽이야. 중요한 건 맛이 아니야. 재료와 정성이지."


어느 날 퇴근 무렵에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언니, 엄마가 체하셨는지 밥을 제대로 못 드신다고 하네..." 멀리 사는 동생은 엄마가 걱정되어 가까이 사는 내게 엄마 소식을 전한다. 엄마는 직장 다니면서 두 아이를 키우는 딸이 힘들어 보이셨는지 내게는 아프다는 말씀을 잘 안 하셨다. 급히 전화를 끊고 바로 가까운 죽집에 들려 전복죽을 사들고 엄마 집으로 향했다. 그러다 문득 딸이 아플 때면 항상 죽을 만들어 오신 엄마의 마음이 느껴지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중요한 건 '맛'이 아닌 재료와 정성이라는 엄마의 말씀이 생각나면서 한 손에 들려진 전복죽 포장이 죄송스러울 뿐이다.


<본죽 vs. 본맛죽의 싸움>


본아이에프 주식회사(이하 '본죽 본사')는 '본죽'이라는 상표권을 가지고 '본죽'이라는 이름으로 죽을 판매하는 가맹점을 모집하고 관리하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고 있다.


A는 2003년경 본죽 본사와 가맹계약을 체결하고 부산 기장군에서 본죽 부산기장점을 개설하였다가 2009년경 합의 하에 위 가맹계약을 종료하였다. 그런데 A는 가맹계약이 종료된 이후 '본맛죽'이라는 상호로 죽 전문 음식업을 계속하였다.


이에 본죽 본사는 A가 '본죽'과 유사한 명칭인 ‘본맛죽’을 상호로 사용하며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죽 메뉴로 죽 전문 음식점을 운영하는 것은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A를 상대로 '본맛죽'이라는 상호 사용의 금지와 함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이해의 길잡이>
 
부정경쟁행위?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가목과 나목은  유명한 타인의 표지(상표 등)와 동일·유사한 표지를 사용하거나 이를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상품이나 영업과 혼동하게 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부정경쟁행위로 피해를 입은 경우 침해자를 상대로 민사상 침해행위의 금지 및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누가 이겼나?> 


법원은 A가 '본맛죽'이라는 상호로 죽 전문음식점 영업을 하는 것은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그 이유는 '본죽'은 죽 전문 음식점으로 유명한 상표인데, ‘본맛죽’은 ‘본죽’의 가운데에 ‘맛’이라는 글자를 추가한 것에 불과할 뿐 ‘본죽’ 부분이 두드러지게 인식되어 '본죽'과 서로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A는 가맹계약 종료 후에도 점포의 정문 앞에 '본죽'이라는 글씨가 적힌 메뉴판을 계속 세워두고 있고, 판매하는 죽의 종류가 대부분 '본죽'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본죽 vs. 본맛죽]


결국 본죽 본사가 승소함에 따라 A는 '본맛죽'이라는 상호로 죽 전문음식점 영업을 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리고 손해배상으로 300만 원을 지급하여야 했다.


<승패 이유는?>


<가맹계약 종료 후 창업 시 주의사항>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계약을 체결한 가맹점주는 언젠가는 자신의 브랜드를 가지고 창업하기를 꿈꾼다. 그리고 가맹점 운영으로 얻은 노하우와 영업 능력이 쌓이게 되면 실제 창업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 이때 가맹점주는 오랜 기간 영업하면서 사용해 왔던 브랜드와 영업방식, 실내 디자인 등을 최대한 이용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다가 프랜차이즈 본사와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실제 프랜차이즈 가맹계약 종료 후 같은 업종으로 창업하면서 본사와의 분쟁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프랜차이즈 본사와의 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주의해야 한다.


첫째, 차별화된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가맹계약 종료 이후 기존 고객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하여 프랜차이즈 업체를 연상시키는 브랜드를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A가 부산 기장에서 '본죽' 가게를 운영하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본맛죽' 가게로 상호를 변경하였다면 소비자들은 '본맛죽은 본죽에서 새로 만든 브랜드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경우 소비자들은 '본맛죽'을 '본죽'과 동일하거나 관계있는 업체로 오인할 수 있으므로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프랜차이즈 가맹계약이 종료된 후 같은 업종으로 창업을 하고자 한다면 프랜차이즈 업체를 연상시키지 않도록 차별화된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프랜차이즈 업체로 오인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인터넷 홈페이지나 광고 문구 등에 '□□는 △△으로 새롭게 변경되었습니다.', '□□는 △△으로 상호를 변경하였습니다.'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표현들은 동일한 업체인데 단지 상호(이름)만 변경된 것임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맹계약 종료 후 '본죽은 본맛죽으로 새롭게 변경되었습니다.'라는 표현을 광고 문구로 사용한다면 소비자들은 '본죽'과 '본맛죽'은 동일하거나 서로 관련된 업체라고 오인하게 될 것이므로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프랜차이즈 가맹계약이 종료된 후 같은 업종으로 창업을 하고자 한다면 프랜차이즈 업체로 오인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다. 


셋째, 프랜차이즈 업체가 사용하는 고유한 영업방식이나 디자인을 사용하지 않는다.


프랜차이즈 업체가 사용하는 고유한 영업방식이나 매장의 외관 및 실내 디자인 등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 부정경쟁행위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프랜차이즈 가맹계약이 종료된 후에는 가맹점의 간판, 메뉴판, 매장 디자인 등은 모두 변경해야 한다.    


<중요한 건 '맛'이 아니야>


프랜차이즈 가맹계약을 종료하고 같은 업종으로 창업을 하고자 한다면 먼저 프랜차이즈 업체와 차별화된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프랜차이즈 업체보다 개선된 차별점을 찾아내지 못했다면 계속 가맹계약을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나 가맹점을 운영하면서 개선 사항을 꼼꼼하게 정리해 두고 새로운 메뉴와 물품, 영업방식 등을 준비하였다면 이젠 나만의 브랜드를 가지고 창업할 때가 된 것이다.


'본맛죽'은 중요한 건 '맛'이라고 생각해서 였을까? 가운데 '맛'이 추가되어 있을 뿐 '본죽'과는 다른 특별한 차별성이 없었다. 다시금 '중요한 건 맛이 아니야'라는 엄마의 말씀이 떠오른다. 딸을 위해 아픈 어깨도 마다하지 않고 정성스레 기도하는 마음으로 끓여낸 엄마표 죽을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중요한 건 '맛'이 아닌 바로 '차별성'이다. 


나날이 노쇠해지는 엄마를 보면서 이젠 엄마표 죽을 맛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게 된다. 퇴근 후 마트에 들러 노랗게 익은 단호박을 사들고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단호박이 맛있어 보여서 두어 개 샀어요. 지금 갈 테니 우리 호박죽 끓여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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