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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진 Apr 15. 2023

서울연인을 닮은 누이

서울연인 단팥빵 vs. 누이 단팥빵

1970년대에 꽃다운 20대를 보낸 친정엄마는 종종 그때 개봉했던 영화 이야기를 하신다. 그중에는 1973년에 개봉한 '서울의 연인'이라는 영화가 있다. 제인과 유훈의 달콤한 사랑이야기로 전통적인 로맨스 영화가 그러하듯 사랑의 훼방꾼이 나타나지만 결국은 사랑의 결실을 이룬다는 내용이다. 당시 해외 유학이 흔치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해외 유학파인 제인과 토종 국내파인 유훈의 사랑은 꽤 신선했던 것 같고 흥행에도 성공하였다.


서울역 공항철도 방향에는 '서울연인 단팥빵' 매장이 있다. 그런데 '서울연인 단팥빵'은 전통적인 단팥빵과는 다른 점이 있다. 단팥빵에 단팥뿐만 아니라 새하얀 크림이 들어 있다. 마치 '서울의 연인'에서의 제인과 유훈처럼 서양의 크림빵과 동양의 단팥빵이 만난 듯한 느낌이 든다.


'서울연인 단팥빵' 매장에는 성인 크기만한 먹음직한 단팥빵 사진이 벽면에 부착되어 있어 단팥빵 매장이라는 것을 멀리서도 단번에 알 수 있다. 단팥과 크림의 색다른 조합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큼지막하고 먹음직한 단팥빵 인테리어 때문인지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서울역 맛집으로 소문나게 되었다. 평소 빵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서울연인 단팥빵]


하지만 제인과 유훈의 사랑에도 사랑의 훼방꾼이 있었듯이 '서울연인 단팥빵'도 큰 시련을 겪게 되었다. 바로 '서울연인 단팥빵'을 닮은 '누이 단팥빵'이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서울연인 단팥빵 vs. 누이 단팥빵의 싸움>


'서울연인 단팥빵'은 2013. 5.경부터 서울역 등에서 단팥빵을 제조・판매하고 있었다. 그런데 2013. 12.경 시청역에 '서울연인 단팥빵'의 간판과 인테리어, 분위기까지 유사한 '누이 단팥빵' 매장이 영업을 시작하였다.

[누이 단팥빵]


'서울연인 단팥빵'과 '누이 단팥빵'은 상호는 서로 다르지만 묘하게 매장의 분위기가 비슷해서 실제로 일반 소비자들이 '누이 단팥빵' 매장을 '서울연인 단팥빵' 매장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분쟁이 시작되었다.


<누가 이겼나?>


'서울연인 단팥빵'은 '누이 단팥빵'을 상대로 간판 및 인테리어 디자인의 사용 금지와 함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그 이유는 자신의 매장의 간판, 내부 인테리어 등을 포함한 "영업의 종합적 이미지"를 모방하여 사용하는 것은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해의 길잡이>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파목은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 등을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이 경우 침해자를 상대로 부정경쟁행위에 대한 금지청구 및 손해배상청구를 하여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다.


이전까지는 영업의 종합적 이미지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부정경쟁행위를 인정한 선례가 전혀 없었다. "영업의 종합적 이미지"를 모방하는 행위가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하여 다양한 논의가 있었고, '서울연인 단팥빵'으로서는 승리를 예측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법원은 '서울연인 단팥빵'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그 이유는 '서울연인 단팥빵' 매장의 간판, 내부 인테리어 등을 포함한 영업의 종합적 이미지가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에 해당하므로,  '누이 단팥빵'이 이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행위는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서울고등법원 2015나2044777).

 

<승패 이유는?>


신속한 법적 대응...


누군가의 침해행위로 손해를 입게 되었을 때 신속한 법적 대응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침해행위가 현재까지 계속되는 경우 신속히 그 행위의 금지와 함께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 '서울연인 단팥빵' 사건과 같이 '누이 단팥빵'이 계속하여 매장 분위기를 모방하여 영업한다면 소비자들은 '누이 단팥빵'을 '서울연인 단팥빵'으로 혼동하여 단팥빵을 구매할 것이고 이로 인해 매출이 감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누이 단팥빵'에 대하여 소비자들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서울연인 단팥빵'도 동일하게 평가받을 위험이 있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 신속한 법적 대응이 필수적이다.

[출처: 진도희 블로그]

영화 '서울의 연인'에서 제인 역을 맡은 영화배우는 지금은 고인이 된 진도희(본명 김태야)이다. 진도희는 주연 여배우로 활발히 활동하던 중 돌연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면서 연예계를 은퇴하였다.


그런데 그 후 '진도희'라는 예명을 사용한 어느 여배우가 '젖소부인 바람났네'라는 영화로 알려짐에 따라 사람들은 '서울의 연인'의 진도희가 '젖소부인'의 진도희와 동일인이라고 오해하기 시작했다. '진도희'라는 이름은 그 당시 흔치 않았기에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당시 미국에 거주하던 진도희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거나 신속히 법적 조치를 취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오랫동안 심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초반에 '진도희'라는 예명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법적 대응을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다행히 '서울연인 단팥빵'은 '누이 단팥빵'이 등장하자마자 바로 법원에 소를 제기하는 방법으로 빠르게 법적 대응에 돌입하였다. 이로써 '서울연인 단팥빵'은 '누이 단팥빵'이 자신의 매장 분위기를 모방하는 행위를 금지시켰고 소비자들이 '서울연인 단팥빵'과 '누이 단팥빵'을 혼동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영업의 종합적 이미지를 모방하는 행위는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는 새로운 법리까지 탄생시켰다.


영화 '서울의 여인'에서 제인과 유훈이 사랑의 훼방꾼으로부터 사랑을 지켜냈듯이 '서울연인 단팥빵'도 자신을 닮은 '누이 단팥빵'으로부터 본래의 이미지를 지켜냈다.


영화 '서울의 연인'과 '서울연인 단팥빵'은 그 이름처럼 비슷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미 고인이 되어 우리 곁에 없지만 '서울의 연인'의 진도희 씨도 그 본래의 모습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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