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원면옥 vs. 사리원 불고기)
매주 월요일은 동료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는 날이다. 식사 총무를 맡은 김 부장님은 "오늘 점심은 어디서 먹을까요?"라고 물으면서 동료들의 의견을 구한다. 평소 면을 좋아하시던 또 다른 김 부장님은 바로 장소를 추천하신다. "사리원면옥 어떨까요? 날도 덥고...ㅎㅎㅎ 시원한 냉면도 좋을 것 같은데요." 모두들 8월의 뜨거운 열기를 느끼며 한 마음으로 직장 근처에 위치한 '사리원면옥'으로 향했다.
동료 중 한 분이 시원한 물냉면을 젓가락으로 뜨면서 "난 처음에 사리원은 냉면 '사리'에 장소를 뜻하는 '원'이 붙어서 '사리원'이라고 이름 붙인 줄 알았어요."라며 가볍게 화제를 던졌다. 나 또한 그 말에 동의하면서 "저는 지리를 잘 몰라서 지명인 줄 전혀 몰랐어요... 저도 면을 파는 가게를 뜻한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맛 장구 쳤다. 그런데 평소 지리에 밝은 몇몇 동료들은 "사리원은 북한 황해북도의 도청 소재지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에요. 학창 시절 사회 과목 교과서와 사회과부도에서 나와 있던 것이 기억나네요. 교통의 요지이고... 북한소식 관련 뉴스에서도 나오던데요?"라며 콕 집어서 정답을 말한다. 순간 30년 전 교과서를 기억하고 있는 동료들의 무시무시한 기억력에 감탄하면서 조용히 시원한 냉면 사리를 입에 넣었다.
동료들의 명쾌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냉면 '사리'의 사리원이 아닌 지리적 명칭이라는 것이 잘 와닿지 않았다. 아마도 북한 황해북도 사리원은 내가 아직 밟아보지 못한 다소 낯선 땅이기 때문인 것 같다.
A는 3대에 걸쳐 대전에서 '사리원면옥'이라는 상호로 냉면과 불고기 등을 판매하는 음식점 영업을 하고 있고, 1996. 경 '사리원면옥'이라는 상표를 등록하였다. 한편, B는 서울에서 외할머니로부터 황해도 사리원 방식으로 만든 '사리원 불고기'라는 음심점을 물려받아 영업을 하고 있다. A가 운영하는 '사리원면옥'과 B가 운영하는 '사리원 불고기'는 각각 대전과 서울의 맛집으로 알려져 있었다.
A는 2015. 경 B를 상대로 '사리원면옥'의 상표권자임을 밝히면서 '사리원'을 사용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통보서를 보냈다. 이에 B는 '사리원'은 황해북도의 도청 소재지로서 현저한 지리적 명칭에 해당하여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A의 통보서에 강하게 반발하였다.
<이해의 길잡이>
상표법 제33조 제1항 제4호는 '현저한 지리적 명칭'으로 된 상표는 상표등록받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저한 지리적 명칭이란 일반 수요자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지리적 명칭을 의미한다. 현저한 지리적 명칭에 해당하는 경우 특정인이 상표 등록할 수 없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A는 '사리원면옥'의 상표권자라는 이유로 B가 '사리원'을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반면, B는 '사리원'은 현저한 지리적 명칭에 해당하므로 A가 독점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서로 대립하였다. 결국은 A와 B 모두 상대방을 상대로 상표 소송을 제기하였다.
B는 특허심판원에 A를 상대로 '사리원'은 현저한 지리적 명칭이므로 자신이 사용하는 '사리원 불고기'는 A 상표의 권리에 속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청구하였고, 이와 함께 A 상표의 등록 무효를 청구하였다. 한편, A도 특허심판원에 B를 상대로 B가 사용하는 '사리원 불고기'는 A 상표의 권리에 속한다는 확인을 청구하였다. 그리고 법원에 '사리원'의 사용을 금지하는 가처분을 신청하였다.
특허심판원은 2016. 경 '사리원'이 현저한 지리적 명칭이 아니라고 보아 B의 청구는 배척하고 상표권자인 A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이에 B가 불복하여 특허법원에 소를 제기하였다.
그런데 특허법원도 '사리원'이 현저한 지리적 명칭은 아니라는 이유로 B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허법원의 이러한 판단은 증거로 제출된 설문조사결과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A와 B 모두 설문조사결과를 제출하였는데, '사리원'을 지명으로 인식한 응답자가 A 제출의 설문조사결과에는 19.2%, B 제출의 설문조사결과에는 26.8% 정도에 불과하였고, 오히려 음식점 이름이라고 인식한 수요자들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B는 특허법원의 판결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하였다.
대법원에서도 '사리원'이 현저한 지리적 명칭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특허심판원과 특허법원의 판단과는 달리 '사리원'은 현저한 지리적 명칭이라고 판단하였다. 그 이유는 사리원은 북한 황해북도의 도청 소재지로서 지역의 명칭이고 조선시대부터 교통의 요지로 알려져 있으며, 1960년대부터 초, 중,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와 사회과부도에도 사리원에 대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고, 북한 관련 기사에 사리원은 북한의 대표적인 도시 중 하나로 언급되고 있다는 것이다(대법원 2018. 2. 13. 선고 2017후1328 판결).
결국 최종적으로 B가 승소함에 따라 '사리원'은 현저한 지리적 명칭에 해당하여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왜 대법원은 설문조사결과를 반영하지 않았을까?]
대법원 판결을 보고 대법관님들은 초, 중,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40-50년이 지난 현재에도 기억하고 있는 엄청난 기억력의 소유자이기에 '사리원'을 현저한 지리적 명칭으로 판단하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 또한 30년 전의 교과서 내용을 기억하는 동료를 보면서 감탄한 바 있다.
그런데 특허법원과 대법원의 판단이 달랐던 주된 이유는 증거에 대한 평가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특허법원은 설문조사결과를 주된 근거로 삼아 '사리원'은 현저한 지리적 명칭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반면, 대법원은 역사적 자료, 교과서, 신문기사 등 객관적 자료를 주된 근거로 삼아 '사리원'은 현저한 지리적 명칭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지리적 명칭이 현저한지 아닌지 여부는 어느 한 증거에 의해서만 판단할 수 없다. 일반 수요자가 '사리원'을 현저한 지리적 명칭으로 인식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자료, 교과서, 신문기사, 설문조사 등 여러 자료가 존재한다. 대법원은 여러 문헌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리원'이 현저한 지리적 명칭에 해당한다고 보고 이와 다른 설문조사결과는 신뢰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상처뿐인 법정 다툼]
B는 A가 청구한 가처분 신청과 상표 소송으로 인하여 '사리원'이라는 상호를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일시적으로 '사리현'으로 간판 등을 변경하여 영업을 하였고, 상호 변경과 상표 소송으로 인하여 상당힌 비용을 지출하였다.
이에 B는 A를 상대로 '사리원'은 현저한 지리적 명칭으로 피고의 등록 상표가 무효임이 분명함에도 부당하게 가처분과 상표 소송을 제기하여 B가 상당한 손해를 입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법원은 B의 청구를 일부 받아들여 A에게 합계 1억 9천만 원 상당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선고하였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9. 9. 6. 선고 2018가합584938 판결).
A와 B는 3건의 상표소송, 1건의 가처분소송, 그리고 1건의 손해배상소송 총 5건의 소송을 하였으나 서로 얻는 것은 없었다. 둘 다 종전과 마찬가지로 '사리원'이라는 상호를 사용하여 영업을 하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대법원 판결에 의하여 A, B뿐만 아니라 제3자도 '사리원'을 사용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상황은 전보다 더 안 좋아졌을 수 있다.
[지리적 명칭은 삼가야...]
지리적 명칭을 상표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음식이 맛있다고 알려진 장소나 특정 제품의 재료가 많이 나는 장소 등이다. 그런데 지리적 명칭을 상표로 사용할 경우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첫째, 상품의 생산 지역인 '산지'나 '현저한 지리적 명칭'에 해당하여 상표등록이 거절될 수 있다.
둘째, 상표 등록에 성공하더라도 제3자가 자신이 등록한 지리적 명칭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산지'나 '현저한 지리적 명칭', '공익상의 이유' 등으로 특정인만이 독점하여 사용하는 것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사리원' 사건과 같이 분쟁이 쉽게 발생하고 소송으로 인한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될 수 있다.
'사리원'은 조선시대부터 교통의 요지로 번화한 곳이었고 냉면 등과 같은 음식이 유명하였다. A는 사리원이 고향인 실향민의 일가로서 3대째 대전에서 '사리원면옥'이라는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B 또한 황해도 사리원이 고향인 할머니가 운영하던 '사리원 불고기'라는 음식점을 물려받았다. A와 B 모두 음식문화가 발달한 황해북도의 '사리원'을 음식점의 이름으로 사용하였다.
'사리원'은 황해북도가 고향인 실향민에게는 너무나 가고 싶은 그리운 땅일 것이다. A와 B 두 당사자에게는 얻는 것 없이 상처뿐인 법정 다툼일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그리운 고향 땅의 이름을 마음껏 부르고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고맙고 의미 있는 소송일지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