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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달 Sep 25. 2023

네게브 사막 트레킹

페어웰 발론티어 트립

이제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발론티어 트립을 계속 계획했다가 정원 미달로 취소되기를 반복했었는데, 이번엔 키부츠 하쪼레아와 함께 드디어 트립이 만들어졌습니다. 리더가 계속 고생하던데 딱 제가 키부츠를 나가야 할 때에 때마침 이벤트가 찾아와서 다행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하고 남은 데이오프를 써서 트립 날짜까지 딱 맞춰 기다리는 동안 식당 분들 사진도 찍고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이렇게 잘 떠들면서 지낼 수 있는 걸 왜 떠나기 직전에 하는지 저도 잘 이해가 안 됩니다. 남은 퍼니머니도 우여곡절 끝에 바꾸고, 기네갈의 기념품으로 작별 선물도 받고, 각자 떠드는 파티 시간. 처음 들어올 때 하고 다른 건 이제 저도 꽤 수다를 떤다는 것이지요.


트립을 떠나는 날 아침, 버스가 우리 쪽에서부터 출발해서 먼저 탑승했습니다. 그리고 키부츠 하쪼레아로 가서 발론티어를 태웠는데 그중 6명이 한국인이었습니다. 기네갈보다 규모는 커서 발론티어가 더 많긴 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하쪼레아에는 울판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온 친구가 하쪼레아에서 울판을 마치고 기네갈로 왔다고 했거든요.


전 옆에 앉은 미리암과만 속닥속닥하고 환절기면 꼭 걸리던 목감기로 먹은 감기약 기운 때문에 비몽사몽 하면서 아는 체를 안 했더니 '한국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안 왔나 보네' 하면서 자기들끼리 신나게 놀더군요. 그때는 언뜻 보면 한국인이 아니게 볼 수 있는 외모였기 때문에 이해는 했습니다. 하쪼레아 발론티어들은 나이대가 좀 더 어리고 활달해 보였습니다. 전체적으로 즐겁게 어울리는 분위기였거든요.


덕분에 미리암과 많은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몇 주 주말은 모두 미리암과 함께 더군요. 나사렛 마실도 한번 다녀왔고, 예루살렘도 같이 다녔는데, 마지막 여행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물론 모두 둘만 다닌 여행은 아니었습니다.) 어제 처분하지 못한 퍼니머니도 자고 있는 미리암을 깨워 거의 강탈하듯 현금으로 바꿨던 것 같습니다.


"한국사람 이셨어요?"


네게브 사막에 도착해서 계속 모른 체하기는 어려워서 인사를 건넸더니, 그때부터는 자연스레 한국분들과 같이 다니게 되었습니다. 일단 소개도 하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이런 질문은 빼놓을 수가 없더군요. 이런 곳에서 한국사람을 만나면 하나 더 좋은 것이 있는데,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것입니다.


네게브 사막 여행는 로만 로드라는 로마인이 다니던 길을 트레킹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는데, 사막 한가운데 협곡처럼 나있는 길이었습니다. 아마도 태양을 피할 수 있게 지형을 이용하고 불편한 것들은 공사를 해가면서 길을 만들었겠지요. 처음에는 줄사다리를 타고 절벽을 내려간 후에 협곡을 따라 이동하는데, 이 길은 이집트까지 이어져 있다고 합니다. 역시 길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겼던 로마 다웠습니다. 로만 로드의 흔적은 지중해 여기저기서 꽤 볼 수 있었는데, 볼 때마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트레킹 하는 중간에 총을 들고 따라다니던 보디가드가 발을 삐어서 응급조치를 하고 절뚝거리면서 쫓아왔는데, 살짝 불쌍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켜주겠다고 온 사람이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된 게 웃프달까요. 총이라도 들어주고 싶었지만, 설마 다른 나라 사람에게 총까지 맞기 진 않을 것 같아서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중간에 사막 가운데에 있는 크리에이터를 보러 갔다가, 저녁은 베두인 캠프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습니다. 석양을 보러 올라간 언덕에서부터 바람이 세게 불기 시작해서 꽤 추워질 밤을 대비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전 이삿짐을 모두 바리바리 싸들고 배낭째로 왔기 때문에 안심했지요.


저녁을 먹기 전에 베두인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는데 바람소리에 섞여서 잘 안 들리기도 하고, 이집트 요르단에서 베두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옆사람들과 떠들다가 대부분 놓쳤습니다. 그래도 커피콩을 직접 볶고 빻아서 타 먹는데, 커피 빻는 기구를 이용해서 노래하면서 연주하듯 커피를 만드는 과정은 꽤 기억에 남았습니다.


잠들기 전에 리더가 디파짓과 함께 졸업장 같은 것을 주었는데, 발론티어 감사장이라고 했습니다. 본인도 15년 전에 받은 것이 아직도 집에 있다고 합니다. 역시 알뜰한 민족답게 종이 한 장 주더라고요.



1. 울판: 이스라엘의 히브리어 교육 프로그램으로 가장 공신력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합니다. 이탈리아 친구는 혈통이 유대인이었는데, 귀화를 위해서 이 과정을 이수했다고 했습니다.

2. 로만로드: 유럽과 지중해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곳곳에 로만로드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자동차 도로가 많이 없는 곳은 아직도 도로로 이용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폭이 아주 넓지는 않지만, 군대가 열을 지어 행군하기거나 말이나 마차가 왕복할 수 있을 정도는 충분하게 잘 다듬어져 있습니다. 로마 제국 전성기의 영토를 전부 도로망으로 이었다고 하니, 정말 도로에 진심인 나라였던 것 같습니다.

3. 베두인: 아랍인들 중에 사막에서 유목을 하던 사람들을 말하는데 씨족단위로 생활을 합니다. 정착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나라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나라의 경계가 확실해지고 도시화된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점점 없어져가고 있다고 합니다. 요르단은 베두인이 세운 나라라고 할 수 있는데, 귀족이나 왕족 자체가 스스로를 베두윈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호전적이고 독립적인 성격으로 유명하고, 아랍의 여러 이야기에서 미지의 민족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여행자들 중에는 동경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중동을 여행하다 보면 본인이 베두인의 후예라고 소개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적당히 믿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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