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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달 Sep 27. 2023

다시 여행을 떠납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날들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튀르키예로 가는 공항은 텔아비브에 있지만, 전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처음이자 끝이고 싶었습니다. 이제 남은 기간은 4일, 그동안 못 가본 곳을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으로 간 곳은 야드밧셈(Yad Vashem) 홀로코스트 기념관입니다.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학살된 유대인들의 기록을 보관하고 추모하는 공간인데, 당시 학살에 동원됐던 기차 한 간을 전시해 놓은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또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유대인을 직접 학살한 독일군뿐만 아니라 독일군에 저항하던 레지스탕스 내에서도 유대인이 차별받았다는 기록입니다. 전반적으로 열등한 다른 인종처럼 대우받았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보면서 지금까지 보았던 유대인들의 기록에는 즐거운 일보다 슬픈 일이 더 많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지금 그들이 이렇게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이 기억을 잘 활용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가끔 좋은 일만 기억하자라고 하면서 안 좋은 과거를 기록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는데, 과연 그게 맞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올드시티의 숙도로 돌아와 보니, 한국에서 온 9명의 성지순례팀이 숙소에 들이닥쳤습니다. 올드시티의 간단한 안내로 시작해서 다음날에는 그 팀에 끼어서 돌아다니기로 했습니다. 다 합치면 2주 정도 지냈더니 작은 올드시티의 골목들에도 익숙해져서 반은 가이드처럼 데리고 다닐 수 있었거든요.


다음 날에는 그 팀의 일정을 따라다녔는데, 그동안 못 가봤던 몇 군데를 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스데반순교기념교회(St. Stephen's Church)나 베드로 통곡교회(St.  Peter in Gallicantu), 최후의 만찬 장소였다는 마가의 다락방(Last Supper Room) 같은 기독교에서 중요한 장소들도 갈 수 있었는데, 특히 마가의 다락방은 다윗왕의 무덤(King David's Tomb) 2층에 있어서 유대교 순례자들과 동선이 겹치는 모습이 독특했습니다.


이 분들이 사람들이 환전을 못했다고 해서, ATM에서 이스라엘 세켈을 찾아서 700달러 정도 환전해 줬는데, 이것이 나중에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역시 세상 일은 알 수 없다니깐요.


저녁에는 이 팀을 초대해 주신 분이 있어서 예루살렘 신시가지를 통과하면서 현대적인 도시를 구경했는데, 역시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런던이나 파리 같은 오래된 도시들은 관광객들이 많은 올드 시티와 지금 사람들이 살고 있는 뉴시티가 구분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여기도 그런 형태였습니다.


조금 독특한 것은 '하레디'라고 불리는 아주 종교적인 유대인들이 모여사는 구역이 따로 있는데, 이곳에 여행객들이 잘못 들어갔다가 한참 욕을 얻어먹는 경우가 있어서 조심해야 합니다. 저도 신시가지를 헤매다가 집들의 분위기가 전통적이고 독특해서 골목에 들어서려다가 제지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마지막 날은 이스라엘을 떠나기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돌아온 혜림이와 비행기표도 찾고, 만나던 사람들에게 인사도 하고, 남은 돈도 쓸 겸 맛있는 것도 먹고, 공항으로 바로 가는 버스편도 알아놓고 분주하게 보냈습니다.


드디어 출발하는 날, 마지막으로 올리브산에 올라가서 아쉬움을 달래고 드디어 악명 높은 이스라엘 출국길에 올랐습니다. 특히 공항을 이용한 출국은 까다로운 짐검사가 기다리고 있는데, 말 그대로 모든 짐을 속옷 한 장까지 다 뒤집어 봅니다. 이스라엘에서 뭐 했는지 꼬치꼬치 물어보는 것은 기본이고, 필요하면 탈의도 하는 손으로 직접 검사하는 신체검사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런 짐검사가 싫어서 가벼운 짐만으로 비행기를 탄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같이 이동경로가 독특하고 배낭에 온갖 짐을 다 짊어지고 다니는 사람은 물어볼 것도 많고 검사할 것도 많나 봅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저도 즐기면서 농담도 섞어가면서 심사를 받았습니다. 저와 같이 갔던 혜림이까지 두 명만 출국심사를 하는데 두 시간이 넘게 걸리더군요.


그래도 이번 여행의 출발에는 동행이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1. 하레디: 유대교 분파 중에 초정통파로 분류된 사람들입니다. 토라를 읽고 공부하고 유대교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람들로 검소하게 살아갑니다. 여행자들은 이 분들과 마주칠 일이 많지 않지만 올드시티의 통곡의벽 주변과 유대인 구역에서는 볼 수 있습니다. 노출이 있는(특히 하반신) 옷을 입고 이들이 거주하는 구역으로 들어가면 봉변을 당할 수 있으니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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