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대체 뭘까?
나는 한 줄로 아니면 한 문단으로 아니 한 장으로라도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싶었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대체 그게 뭔지를 전혀, 단 1퍼센트도, 작은 실마리조차 잡을 수 없었으니까.
유행했던 노래만이 맴돌 뿐이다. ‘사탕처럼 달콤하다던데 / 하늘을 나는 것 같다던데’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흥얼거리곤 하지만 딱히 그 느낌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저런 느낌만이 사랑이라면, 글쎄··· 나는 사랑해본 적이 없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사랑의 범주는 너무 넓다. 나는 내 친구들을 사랑하고, 우리 엄마와 우리 강아지를 사랑하고 또··· 당연하게도 책을 사랑한다. 책! 책에 대한 사랑은 확신할 수 있다. 명확하지 않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나는 책이라는 반듯한 물성 그 자체를 사랑하고, 그 안에 담긴 별의별 내용들을 사랑한다. 의문이 떠오르면, 우울이 부유하면 나는 반사적으로 책장 앞을 기웃거린다. 네이버 바로 뒤에 붙여진 즐겨찾기 목록에는 서점이 우선이고, 레퍼런스 핑계로 틈만 나면 독립서점을 흘끗거린다. 그런데 내가 찾고 있는 사랑은 이런 것이 아니다.
내 인스타그램의 닉네임. 그 뜻을 한눈에 알아맞출 수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랑을 찾고 있는 것만 같다. 내가 너무나도 책을 사랑해서, 책으로 침실에 다리를 만들어 꾸미는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한탸를 닮았다고 생각한다는 것. ‘이렇게 책을 사고 모으다가 언젠가 책에 깔려 죽는 것이 아닐까’라는 한탸와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 절대로, 절대로 읽지 않은 책은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내가 닉네임을 그렇게 정했다는 것은 놀랍지도 않다. 그리고 만약 그걸 곧바로 눈치챌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게 뭔지도 정의할 줄 모르는 주제에 나는 그 사람과는 꼭 사랑에 빠질 것만 같다고 짐작했다. 물론 확신할 수는 없다. 나는 그게 뭔지 모르니까.
또 뭐가 있을까? 커피! 나는 맛있는 커피를 사랑한다. 엄마가 친구들을 초대해 마시던 믹스 커피를 꼭 한 모금만 남겨달라고 조르던 때부터 나는 커피를 사랑했다. 같이 먹던 에이스. 그건 어쩌면 추억의 맛일지도 모르지만, 엄마가 따뜻하게 내오던 커피의 냄새가 조용히 방에서 놀고 있던 나에게까지 닿으면 난 여름의 빠삐코보다 겨울의 붕어빵보다 큰 유혹을 느끼곤 했다. 그 냄새에는 계절이 없었으니까.
성인이 돼서는 하루에 한 잔 이상은 커피를 마셨던 것 같다. 바리스타로 일하는 동안에는 두 샷 혹은 세 샷을 넣은 커피를 하루에 네 잔에서 다섯 잔까지도 마셨다. 그런데 오히려 그때는 커피를 사랑했던 것 같지는 않다. 맛있는 커피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고 그저 물 마시듯 커피를 마셨으니까···. 시큰둥했다.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하는 동안에도 꼭 포션처럼 잠을 깨기 위해 커피를 마셨기 때문에 딱히 맛을 음미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는 꽤 커피에 까다로운 편이어서 맛이 없는 커피는 꼭 알아챘다. 그리고 그게 그저 잠을 깨우는 역할에 불과했다고 하더라도 맛이 없으면 진심으로 마음이 상했다. 비단 값을 지불했기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는 눈치챘다. 내가 커피를 진짜 좋아하는구나. 나는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정말 사랑했던 것이다. 차가운 커피를 좋아하지만, 기억에 남을 정도로 맛있었던 커피는 보통 따뜻한 카페라테나 플랫화이트였던 것 같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 진짜 감동적이다. 꼭 음악처럼 순간을 기억하게 해주는 힘이 있는 것만 같다. 그 커피를 마셨던 순간이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리고 친구들. 내 친구 H는 명쾌하다. 근래 내가 좋아한다는 것이 대체 뭔지, 사랑이라는 것이 대체 뭔지 물은 적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이건 좋아하는 게 아닌 것 같다는 헛소리를 하자 H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근데 꼭 정의 내리는 바가 있어야 하는 거야? 사랑이 꼭 어떤 특정한 모습이어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 네가 하는 그것도 사랑일 수 있지. 그걸 받아들이기만 하면 돼.
그런데 이게 정말 사랑일까? 나는 궁금해졌다. 사랑은 대체 뭘까. 나를 끊임없이 미워하게 되는 거라면 난 언제나 누군가를 사랑해왔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랑을 알고 싶지 않은 것도 같다. 그 끝없는 삽질. 왜 나에게 관심이 없지? 아니, 왜 나한테 관심이 있겠어? 누군가를 생각하며 내가 얼마나 그 사람에게 형편없는 인간인지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상기시켜주는 것. 정말 이따위가 사랑이라면 나는 정말 사랑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이런 게 사랑일까? 그럴 리가 없다. 만약 맞다면? 이런 게 정말 사랑이라면 나는 어떻게 사랑에서 나를 구할 수 있을까?
내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H는 이유를 물었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엘리오처럼 나는 여러 질문들에 곧잘 대답했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 중 그 어떤 것도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왜 나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을까. 아무도 그렇게 내색한 사람이 없었다. 나는 그저 자존감 문제로 이 모든 의문을 빠르게 잠재웠지만 그건 그저 덮어놓고 보자는 식이었다. 나는 나를 잘 안다고 믿었고, 그건 사실이었지만 이 문제만은 계속 의문으로 남아 중요한 순간에 나를 괴롭히고 발목을 잡았다. 악몽을 꾸게 하고, 가위에 눌리게 했다. H는 그게 너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슬픈 말인지 아냐고 했다. 난 안다고 말했고, 그것 역시 사실이었지만 생각은 도무지 바뀌지 않는다.
그건 자주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사심 없이 주는 사랑’을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는 사람처럼 보이겠지. 그건 사실이 아닌데···. 내가 너무 많은 사람들을 슬프게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슬펐다. 그리고 이런 모든 생각의 흐름이, 이 지나친 자기 연민이 싫었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다른 사람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건가 하는 오래된 의심. 그게 불안을 만들고, 그게 초조함을 만들고, 그게 시도조차 안 해본 포기를 만들고, 체념을 만들고, 또··· 그냥 애초에 사랑 같은 게 뭔지 알고 싶지 않고 궁금하지 않다고 믿고 싶게 만들었다.
사랑이 없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럴 리가 없다. 그랬다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했을 리가 없고, 그토록 많은 음악과 문학과 예술의 소재가 되었을 리가 없다. 나처럼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아니 그걸 궁금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오히려 사랑이 있다는 것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셈이다. 그들은 봤을 테니까. 그래서 궁금해하는 것일 테니까. 적어도 나는 봤다. 사랑은 눈에 보이는 거니까. 사랑은 또··· 정말로 느껴지는 거니까. 그러니까 손가락이 베이더라도 책은 존재하고, 잠이 오지 않더라도 커피는 존재하는 것처럼. 가끔은 나를 화나게 하고 언젠가는 외롭게 하더라도 결코 친구가 없는 삶이 친구가 있는 삶보다 행복할 수는 없는 것처럼. 누구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랑은 실재하는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 나는 기어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말았다. 내가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 내가 우리 집에서 엄마와 아빠와 오빠의 기분을 살피는 동안 그들 중 내 기분을 살핀 사람은 누가 있었을까.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정말로 아닐 가능성이 높다. 사람은 원래 받은 것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병원에 갔을 때, 나는 선생님께 솔직히 털어놓았다. 우울한 엄마를 보며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건 별로 옮겨 적고 싶지 않은 내 과대망상에 불과했지만, 선생님은 가만히 들으신 후 내가 짊어져야 할 짐에 비해 너무 많은 것들을 책임지려고 한다고 말했다. 자유로워지라는 한 마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서 나는 가만히 침을 삼켰다.
나는 그렇게 컸다. 엄마와 아빠와 오빠 때문이라는 말은 상당한 책임 전가의 말이지만 어쨌든 그 영향 아래 자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친구들의 눈치를 살피고, 직장 동료들과 상사의 눈치를 살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타인의 눈치를 살폈을 것이다. 그들이 나의 눈치를 살피지 않았을 거라는 말이 아니라 나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 남들이 피곤하다고 느낄 정도로 집요하게 살폈다는 말이다. 결국 나는 말도 안 되는 타이밍에 누군가에게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나 스스로도 그 감정이 사실인지 모르게 되었다. 아니, 사실은 너무 잘았다. 너무 나와 타인의 눈치를 살피느라 스스로 질려서 질렀다. ‘안 하고 후회하느니 하고 후회하는 게 나아서’라고 했지만, 아니.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사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조급했다. 그래서 내가 내 감정을 눈치채는 것보다 빠르게 마음을 전했다. 정말, 정말, 정말로 사랑받고 싶었다.
왜 그렇게까지 안달했을까? 그게 얼마나 상대가 느끼기에 부자연스러웠을까 싶다. 미움받기 싫어서는 이유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 달리 댈 수 있는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다. 나는 정말로 내가 여기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 내가 여기서 존재하고 있다고. 그걸 누군가가 알아채고 궁금해하길 바랐다. 내가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물어 봐주길 바랐다. 그뿐이다.
그토록 무수한 거절에서 내가 느꼈던 것은 엄마와 아빠와 오빠의 눈치를 살피며 느꼈던 것과 같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구나. 아무도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구나.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는 사람이 없구나. 그러니까 내가 사랑을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나는 내 존재마저, 내가 얼마나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인지마저 부인했으니까.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는 주인공이 아니라고 그렇게만 생각했다. 내가 거절당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사람과 맺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어려워했기 때문이다. 상대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그 말을 들으면서 내가 하는 생각은 ‘내가 괜한 말을 했구나’, ‘내가 상대를 또 피곤하게 만들었구나’ 정도였다. 그 생각이 상대를 더 지치게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그러니까 나는 조금씩 더, 기어이 오늘에 와서는 너무나도 간절하게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알기만 한다면 이 지겨운 고리를 끊고, 꿈도 꾸지 않는 깊은 잠을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