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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Jul 13. 2021

[교행일기] #9. 새로움 적응기

새로운 장소, 사람, 업무

몰려온 피로


실장님은 근무시간이 다 되자 행정실을 빠져나갔다. 김 주무관님은 할 일을 마치고 간다며 연이에게 오늘은 일찍 들어가라고 했다. 아직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고, 첫날이어서 행정실의 묵직한 미닫이문을 조용히 닫고 나왔다. 늦은 귀가를 하는 학생들이 몇몇 있었고, 해는 아직 서쪽 하늘에 남아있었다. 교문을 나오는데, 긴장감이 풀렸는지 파란색 고양이 버스를 타고 갈 수 없었다. 거기까지 걸어가기에는 지금은 무리가 있었다. 학교를 빠져나와 크리스마스 때 어머니랑 타고 갔던 그 녹색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는 다행히 연이 앞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발을 올리길 기다려줬다.


버스 뒷자리 바퀴 부분에 있는 볼록한 불편한 자리만 비어 있었다. 그래도 연이에게는 그 자리도 감지덕지했다. 차량의 진동에 맞춰 몸이 흔들렸다. 이내 급격히 몰려온 피로로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연이의 정신이 돌아온 것은 1시간 10분이 지나 익숙한 도시 풍경이 있는 곳에서였다. 대교를 막 지나 지하철역으로 정차하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뒷문을 열었을 때 내리는 승객을 뒤로하고 살짝 합승을 했다. 이내 버스의 열기에 따라들어온 한기는 버스의 공기에 녹아들어 자취를 감췄다.




새로움 적응기


버스에 내려서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기는 사이 연이는 생각에 잠겼다. 수많은 알바와 인천 1호선 코스를 따라 광명을 지나 안양천을 통해 여의도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장거리 자전거 여행을 통해 체력적으로는 달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도 체력이 부족하면 끝까지 해낼 수 없다고 생각하여 조깅도 빠지지 않고 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연이는 엘리베이터 1층 도착 벨소리에 몇 가지 분석한 결과를 연이의 머릿속으로 재생하고 있었다.


첫째, 새로운 장소

근무지가 학교로 가기에 막연히 익숙할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연이가 오늘 경험한 초등학교는 연이의 생각과 정면으로 배치되었다. 그저 1학년부터 6학년 학생들이 다니는 곳이고 학교를 다녀봤다. 그것뿐이었다. 그 장소 속에는 화장실이 어디에 있고, 식당이 어디에 있으며, 강당이 어디에 있는지 그저 하나하나가 새로운 장소였다.


둘째, 새로운 사람

어디를 가서 알바를 하든 내 동료는 있었다. 당연히 상사도 있었다. 하지만, 동료들이 많은 곳에서 일을 했기에 무거운 분위기보다는 가볍고 경쾌한 기분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만났고, 그들과 트러블로 지낼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기에 새로운 사람들은 그들만의 일정한 규칙을 지켜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셋째, 새로운 업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이것일지 모른다. 이제까지 했던 알바와 과외 알바들과 다른 게 새로운 일과 나의 이전의 일에 대한 스킬을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였다. 그저 새로운 일들은 그 이전과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업무처럼 느껴졌다.


새로운 장소와 사람은 어떤 알바를 가든 마주치는 환경요인 중에 하나였다. 알바를 고를 때 내 능력, 즉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고르기 때문에 업무에 대한 어느 정도 스킬이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빛을 발했다. 그래서 익숙해짐에 시간이 짧게 걸렸다. 하지만, 세 가지가 모두 낯설고 생경하면 문제가 달라진다는 것을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 연이의 치명적 실수였다.


그날 저녁, 저녁을 먹자마자 오후 6시, 남들이 퇴근할 무렵 잠에 빠져들었다. 연이는 잠에 빠져들기 전, 그래도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며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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