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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Aug 20. 2021

[교행일기] #46. 선생님 아니야

선생님 아니야


종이 울리자 수업이 끝난 학생들이 중간놀이를 하기 위해 중앙계단을 내려와 현관으로 몰려갔다. 학생들은 매일 같은 운동장에 뛰어가더라도 자기들 나름의 놀이로 매일 같이 신나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미끄럼틀과 그네가 사라지고 정글짐과 철봉만 남아 있는 곳에서도 술래잡기 놀이가 이어졌고 바닥에 그려진 사방치기에서 편을 가르기 위해 가위바위보가 이어졌다. 한낮의 뙤약볕도 그들에게는 그저 하늘에 떠있는 전등에 불과했다. 땀이 송골송골 맺힌 아이들은 수돗가로 가서 더위를 시키면서 물장난을 하다가 선생님의 호통에 뿔뿔이 흩어졌다.


그렇게 신나게 놀다가 화장실이 급한 아이들 몇 명이 화장실에서 나온 연이와 마주쳤다. 연이를 먼저 발견한 아이가 인사를 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를 하는 학생에게 미소로 고개를 끄덕여주며 지나가는데, 다른 학생 하나가 인사를 한 학생에게 말을 했다.


"야, 저 사람, 선생님 아니야."


연이는 그제야 먼저 인사한 학생들 말고 다른 학생들이 인사를 안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연이는 그저 그 학생들이 말한 '선생님'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잠시 멈칫 했지만, 별일 아니겠거니 행정실로 돌아왔다.


다음날, 교장선생님의 결재를 맡을 일이 있어서 교장실에 갔다가 나왔더니 어제 봤던 학생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어제와 같은 중간놀이 시간인데, 운동장이 아닌 연이를 바라보며 자기들끼리 대화를 했다.


"봐봐. 교장선생님하고 얘기를 나누고 있잖아. 선생님 맞다니까."

"선생님 아니래두. 우리 아빠가 행정실에 근무하는 사람은 선생님 아니랬어."

"아니야, 맞아. 우리 담임선생님이 그랬잖아. 학교에 근무하는 모든 어른은 선생님이라고."


이 얘기가 교장선생님과 연이의 귀에까지 또렷이 들렸다. 교장선생님이 갑자기 교장실로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그 학생들 앞으로 가 키를 맞추고는 양복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일일이 나눠줬다. 학생들은 교장선생님이 다가오자 주눅이 들었는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인사를 꾸벅했다.


"안녕하세요. 교장선생님!"

"우리 학생들이 연이 선생님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구나. 연이 선생님은 행정실에 근무하는 게 맞아요. 행정실에서 우리 학생들이 공부할 때 필요한 학습준비물도 사주지. 최근에 옥토끼 우주센터 갔었지?"

"네."

자신들의 가본 옥토끼 우주센터가 나오자 얼굴이 밝아진 학생들은 교장선생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때 여기 연이 선생님이 근무하는 행정실에 다른 선생님들이 그곳에 갈 수 있게 버스도 빌리고 체험비 받아주고 했지. 자, 우리 연이 선생님에 대한 궁금증이 좀 풀렸나요, 우리 학생들?"


학생들 모두가 이해를 한 것은 아니지만, 교장선생님이 나눠준 사탕을 입에 하나씩 까넣고는 교장선생님과 연이를 향해 인사를 하고 다시 장난을 치며 사라졌다.


"학생들은 궁금증이 참 많지. 그게 아이들이니까. 안 그래요? 연 주무관님."


얼마나 궁금했으면 연이를 따라왔을까 싶었다. 하기사 연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도 학교에 행정실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니 행정실이 무엇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 미지의 공간에서 누군가는 학생들을 위해 묵묵히 일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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