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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Aug 21. 2021

[교행일기] #47. 방학이 싫은 3가지 이유

방학이 싫은 3가지 이유


온 대지를 팔팔 끓일 것 같은 작열하는 태양도 어느덧 그 열기가 수그러들기 시작하고, 밤새 에어컨을 틀어도 열대야에 잠을 이룰 수 없는 도시열섬효과까지 있던 계절은 다음 계절에게 넘겨주려하고 있었다. 그래도 여름은 가을에게 그냥은 내주기 싫은지 낮시간 동안에는 그 열기는 한여름의 열기만큼 뜨끈뜨끈했다.


방학을 끝내고 돌아온 학교 이곳 저곳에 업무차 돌아다니다 보니 연이가 1월에 발령 받고 맞은 두 번째 방학 동안 싫었던 점 3가지가 있었다.


1. 생동감

학생들의 등교로 선생님들도 출근을 하고 급식을 위한 식재료 납품차도 학교를 오가고 하교시간에 맞추어 태권도 도장으로 태워 나르는 노란색 봉고차도 학교 앞을 점령했다. 학생들이 복도를 오가고 쉴 새 없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수업을 받으러 갔다. 오카리나 수업이 있는 반의 약간 핀트가 맞지 않은 선율에 일시정지했다가 다시 연주가 시작이 되었다. 컴퓨터 수업이 있는 반들은 컴퓨터실에서 실물화상기를 통해 스크린에 비춰진 것들을 설명해주는 선생님의 음성에 맞춰 컴퓨터 키보드의 탁탁탁 소리와 마우스의 딸깍딸깍 소리가 교실 문 틈사이로 빠져나왔다. 중간놀이시간에 중앙현관으로 나와 건물과 운동장 사이에 있는 바닥에 그려진 사방치기, 달팽이놀이, 망차기를 하려고 편을 가르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하는 모습에서 학교의 생동감이 느껴졌다.


방학이 되면 이런 생동감은 온데간데 없고 학교는 적막이 흐르는 정적인 공간이 된다. 방학이 끝나고 학생들이 올 때까지 건물유지를 위한 공사나 시설보수 작업으로 발생하는 기계소리와 인부들 소리로 채워진다.


2. 결재

교육지원청과 교육청에는 학생들이 없기에 학교와 다르게 분기마다 반기마다 일정하게 취합해야 하는 공문을 학교로 보내왔다. 방학에는 이 마감일이 언제인지가 초미의 관심이다. 교장선생님의 결재를 맡고 나가야 하는 공문이기에 결재가 가능한지 파악하는 것이 일의 우선순위가 되었다. 결재가 안 나는 것은 아니지만, 학기중보다는 결재가 나는 빈도수가 확연히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기에 항상 파악하고 있는 것 또한 노하우 중 하나인데, 연이는 그런 스킬은 보유할 수 없는 꼬꼬마 교행직이라 일단 공문을 작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순위였다.


그러다보니 공문이 다 작성이 되고 나면 결재에서 꼭 문제가 생겼다. 실수라도 해서 기존에 보냈던 공문을 수정해서 보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언제 또 결재가 날지 모를 일이기에 한 번 작성할 때 완벽하게 해야 했다. 이 또한 연이에게는 부담이었다. 일종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상황이랄까.


3. 급식의 소중함

"오늘 점심은 어떻게 할까?"

행정실에 근무를 하면 방학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된다. 학기중에는 학생들이 급식을 하면 교직원들도 급식비를 내고 먹는데, 방학이 되면 이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일부 동기들 학교에서는 얼마나 중국집 짜장, 짬뽕, 볶음밥을 많이 시켜먹었는지, 세 가지 음식만 생각해도 속이 기름져 울렁거린다고 했다.


연이가 근무하는 OO초등학교에서는 그런 학교에 비하면 다행이었다. 가끔은 중국음식도 배달시켜 먹기도 하고 김밥, 떡볶이, 튀김, 순대 같은 분식도 배달해서 먹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시설주무관님이 밥과 국이나 찌개를 하고 직원들이 반찬 하나 둘씩 가져와서 먹고 있었다. 매일 특별한 반찬은 아니지만, 밖에서 사서 먹는 것보다 기름지지 않아서 연이는 만족했다. 하지만, 어떤 날은 배가 아프기도 했다. 안 먹던 음식을 먹어서 그러기도 했고, 싱겁게 먹던 연이는 짠 음식 탓에 물을 많이 마셔야 했기도 했다. 다음 방학 때는 초과근무할 때처럼 간단히 김밥을 사와서 먹거나 집에서 도시락을 싸와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역시 먹는 게 부실하면 일의 능률도 안 오르나보다. 지나가지 않을 것 같은 방학도 지나고 다시 개학을 하여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다니고 왁자지껄하는 것을 보니 다시 생동감을 되찾고, 학교가 기지개를 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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