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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A Apr 06. 2022

[죽음을 그리는 남자]

KUA Conte #23

남자는 스물 다섯, 여자는 열아홉이었다. 

사랑에 빠지기 이보다 더 좋은 나이가 있을까



 파리에 도착한 날, 나는 이미 몇번이고 와서 잘 알고 있는 그 도시를 쏘다니는 대신 숙소 앞 오래된 카페에 앉아있는 편을 선택했다. 낯선 동네에서 카페를 찾으면 어딘가 설레는 기분이 든다. 대부분의 손님들에게 익숙하고 일상적인 공간에 여행자이자 이방인으로 앉아있는 느낌은 자연스레 나를 관찰자로 만든다. 



 그 날도 그랬다.   파리에 온 만큼, 나는 잘 익은 피노누아를 시켜 입에 머금고 창 밖 거리를 바쁘게 걸어다니는 사람들과 한가로이 오후를 즐기는 카페 안의 손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은 봄이 완전히 찾아오지 않아 서늘하지만 그 와중에도 볕이 느껴지는 초봄의 날씨였다. 앞에 놓인 재떨이에 타버린 담배가 두개 쌓이고 세 번째 담배 개비를 입에 물 무렵,  카페 안 쪽에서 코담배와 함께 위스키를 마시던 노파가 말을 걸었다. 



 ‘여행을 온건가?’

 ‘네, 오늘 도착했습니다’



파리의 공기와 날씨, 피노누아에 취한 나는 기분 좋게 대답했다. 


‘좋은 날씨에 왔구먼. 이 집은 샤퀴테리도 제법 괜찮아. 먹어보게’


평소에도 낯선 사람과 이야기 하는 것을 어려워하지는 않았지만, 그날은 특히 날씨 덕분인지, 노파가 추천한 샤퀴테리가 전에 없이 훌륭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주절주절 그녀와 이야기를 이어갔다.


‘결혼은? 혼자 온 걸 보니 노총각인가?’


전세계 어딜가도 할머니들은 결혼 유무를 물어보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아니요, 결혼 한 지는 꽤 되었습니다. 저는 출장 때문에 하루 먼저 도착했고 아내는 내일 옵니다.’

‘하룻밤동안 자유로구먼. 파리는 혼자 있어도 충분히 멋진 도시지. 가끔 쓸쓸하긴 하지만’


노파는 즐거운 대화상대이자 훌륭한 이야기꾼이었다. 낮은 목소리로 끊임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어쩌다보니 나도 아내와 처음 만난 이야기부터 연애 시절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사랑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지. 아무리 뻔한 전개라도 말이야. 그 안의 빛나는 순간들을 상상하면 즐거워지네, 나는 평생을 파리에서 살았는데, 이 동네에서도 떠들썩한 사랑 이야기가 있었지. 당시에는 모두 스캔들이라고 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건 사랑이었어. 그들의 시간을 떠올리면 나는 사랑을 둘러싼 운명의 무시무시함에 몸서리가 쳐진다네.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살아보면, 하느님은 무엇하나 그냥 주시지 않는다네. 사랑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그걸 잃었을 때 라는 걸, 나는 이들을 보며 깨달았다네. 


그 둘은 그냥 보기에는 아주 평범했어. 평범한 사람들이 누구보다 위대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멋지지 않나, 둘은 이 카페에서 처음 만났다네.’



 노파가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남자는 아직 그의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착하고 앳된 청년이었다. 그는 스스럼없이 웃으며 동료들과 이야기 하는 여자를 남몰래 훔쳐 보고는 했다. 그에 비해 여자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담했다. 그녀는 책상에 걸터앉아 멍하니 창밖을 응시하는 남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처음에는 수줍은 듯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하던 그는 생긋 웃는 여자의 미소에 마음이 편안해져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금새 가까워져 서로의 가장 사소한 것까지 아는 사이가 되었다. 


 여자의 가정환경은 결코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천성이 사치스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욕심도 없는 편이었지만, 부모의 사랑까지 원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늘 장사에 바빴던 그녀의 부모는 어린 나이부터 모델일로 돈을 벌어오는 그녀에게 따뜻한 위로나 사랑보다는 무관심, 때때로 같이 사는 이로서의 동지애 정도를 보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떠들썩한 친구들과 본인의 밝은 성격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에는  늘 외로움을 지니고 있었다.


 고된 하루를 보내고 오면 혼자라는 사실이 더 처절하게 느껴졌다. 외로움이 괴로움이 될 만큼 추운 날은 창 밖으로 처연한 달빛을 보며 잠에 들지 못하기도 했다. 파리에 온 이후로 그녀의 고독은 날이 갈 수록 심해져 그녀의 나이를 실제보다 조금 더 들어보이게 했다. 


 순진함과 슬픔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여자의 얼굴은 화가들에게 인기였다. 그녀는 많은 화가들이 찾는 모델이었다. 여자는 아틀리에에서 화가들과 함께 와인을 마시며 떠들고는 했다. 와인에 취하면 조금 더 쉽게 잠에 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그렇게 지나가던 하루, 여자는 남자를 발견했다. 


 둘이 가까워진 이후, 여자는 그가 원할 때는 다른 일을 최대한 미루고 남자의 이젤 앞에 섰다. 모델일은 고된 작업이었지만 그의 앞에서는 시간이 너무 빨리 갔다. 여자는 무엇보다 그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이 좋았다. 이마 위로 비치는 햇살 마저 그의 캔버스 위에서는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림을 그려야 할 때면 둘의 대화는 많지 않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찌나 따뜻하게 느껴졌던지, 여자는 햇살을 잔뜩 쐬며 놀고 돌아온 개구쟁이처럼 외로움을 잊고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연인이 되었다는 소문은 파리 시내에 금방 퍼졌다. 젊은 연인은 곧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둘의 단골이었던 이 카페에서도, 뤽상부르 공원에서도 어렵지 않게 손을 잡고 있는 둘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남자는 여자를 모델로 아름다운 초록 드레스를 입은 초상화를 그려 얼마간의 생활비도 마련할 수 있었다. 





 오래지 않아 둘은 결혼을 결심했다. 그건 봄이 지나 여름이 오듯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남자는 여자를 가족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누구보다도 남자를 지지했고, 그에게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어머니가 그녀를 보았으면 했지만,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남자가 17살이 되었을 무렵 세상을 떠났다. 남자는 노르망디에 있던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바다의 바람을 맞고 자란 노르망디 사람들은 원래부터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하기로 알려져 있었다. 남자의 아버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아들이 예술가의 길을 선택한 것을 반대한 적은 없지만, 출신도 변변치 않은데다 사람들이 창녀와 다름 없게 여기는 모델을 집에 들이는 것에는 완고하게 반응했다. 


 아버지는 늘 남자를 긴장하게 하는 존재였다. 착하고 순종적인 아들이었던 그는 아버지의 답장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아버지는 아들이 여자와 결혼하는 순간, 지금까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지원해온 모든 생활비를 끊어버리겠다고 경고했다. 가난한 화가에 불과한 남자는 아버지를 거스를 용기도, 여자와 헤어질 자신도 없었다. 아버지가 노르망디에 떨어져 있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할 수 없다는 것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놀라운 것은 여자의 태도였다. 결혼을 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잠시 고개를 풀썩, 숙일 뿐이었다. 남자를 비난하거나 원망하기는 커녕, 자신이 변변치 않은 일을 해서 그렇다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미안해했다. 연인의 시간은 그렇게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어정쩡한 상태로 흘러갔다. 



 ‘비겁한 사내였어’

노파는 말했다. 


‘여자는 덜컥 임신까지 하고 말았다네. 그런데도 남자의 아버지는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지. 아이와 아내를 버리지 않으면 지원을 끊겠다고 아들을 협박했네. 그러던 어느 날, 전쟁이 터졌지’


 카페에 들어온 것은 밝은 낮이었는데,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이야기에 완전히 빠진 나는 노파에게 저녁을 청했다. ‘시간이야 많으니,’ 노파는 청에 응했다. 


 카페 바로 옆 골목에서 스테이크와 감자 요리를 든든하게 먹은 그녀는 셰리주를 한잔 곁들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전쟁은 끔찍했어. 도시의 젊은 남자는 모두 전쟁터로 끌려갔네. 아이와 아내가 있는 가장들은 징집을 피해갈 수 있었지. 남자는 그제서야 여자와 결혼했네. 쿠르베가 이 결혼의 증인이었지’


 노르망디의 아버지는 가차없이 지원을 끊었다. 가난한 화가는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는 가장이었다. 빛의 순간순간을 포착한 독특한 화풍을 고수하던 화가는 그림을 팔리지 않자 아내에게 기모노를 입혀 당시 유행하던 일본풍의 강한 색채의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에서 남자의 화풍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내는 그 일을 영 내켜하지 않았다. 완성된 그림은 남편도, 아내의 마음에도 들지 않았지만 비싼 값에 팔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그림을 판 돈으로 어린 아들 장의 식사를 마련했다. 남자는 이 일을 두고두고 부끄러워 했다. 둘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앞으로 이런 그림은 만들지 말자고 약속했다.




 전쟁의 폭풍은 프랑스 전체를 뒤덮었다. 남자는 여자와 어린 아들을 두고 영국에 피신할 수 밖에 없었다. 파리 구석에 있는 단칸방에서 아이를 키워야 했던 여자의 몸은 점차 약해졌다. 그 때나 지금이나 전쟁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가혹한 법이라, 안 그래도 가난했던 여자의 생활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다행히 남자는 오래지 않아 파리로 돌아왔다. 세 사람은 파리 근교의 아르장퇴유에 자리를 잡고 가정을 꾸렸다. 두 사람의 사랑에 마침내 안온함이 찾아온 것이다. 



‘그 즈음, 기묘한 일이 일어났네.’

노파는 말했다.



 남자에게는 오래 된 후원자가 있었다. 미술 애호가이기도 한 오슈데 사장이었다. 그는 남자가 낙심할 때 종종 그의 그림을 칭찬하고 사주는 몇 안되는 조력자였다. 하지만 오슈데 사장은 전쟁통에 휩쓸려 그만 파산하고 말았다. 생활이 어려워진 오슈데 사장의 가족은 남자에게 부탁해 함께 지내게 되었다. 



 이상한 일은 얼마 후에 일어났다. 결국 오슈데 사장이 파산하고 채권자들을 피해 도망가자, 그의 부인인 알리스와 그녀의 다섯 아이는 그대로 남자의 집에 남은 것이었다. 오갈데 없어진 이들을 위한다는 명분을 감안해도 다소 과한 호의였다. 알리스와 남자가 비밀리에 만나고 있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깊은 사랑이 눈과 귀를 어둡게 한 것인지, 여자는 이렇다 할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저 따뜻한 마음으로 곤경에 처한 이들을 받아들였을 뿐, 반대도 하지 않았다. 그 즈음 여자의 몸은 많이 약해져, 찬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기침 소리가 잦아졌다. 



 가을이 올 때 쯤, 여자는 약한 몸으로 둘째를 임신했다. 둘째 아이는 천사 같이 생긴 아들이었다. 이 아이가 태어나던 날, 이미 남자와 여자의 사이는 예전과 같지 않았다. 집요한 소문은 결국 여자의 귀에 닿았고, 귀엽고 잘 웃는 둘째 아들도 둘 사이를 돌려 놓지는 못했다. 천성이 온화했던 여자는 결코 남자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싸우지는 않았다. 그저 원망이 담긴 눈으로 멍하니, 그를 응시할 따름이었다. 남자는 그런 그녀가 어색했다. 결혼을 하지도 않고 연애를 계속했던 날들 처럼 알리스와의 기묘한 동거도 그렇게 이어졌다.



 둘째의 출산과 함께 여자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알리스가 아이들을 보살피는데 도움이 되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 여자는 이내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람처럼 보였다. 남자가 따뜻한 수프를 들고 오면, 더 이상 원망하는 눈빛이 아닌 조용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남자는 눈 깜짝할 새 작아져버린 그녀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며 묵묵히 그녀를 간호했다. 아직 마흔이 채 되지 않은 여자는 여전히 젊었다. 볕이 드는 낮에 남자는 종종 첫째 아들을 데리고 병상을 지켰다. 



‘장, 봄꽃을 보러 갔던 날이 기억나니? 아르장퇴유에서 말이야’

‘네 엄마! 물론이에요! 잔디밭 위를 마구 구르다가 옷에 초록물이 다 들었잖아요’

‘그래, 맞아. 바람이 좋아서 시원한데다 해가 따뜻해서 꽃잎의 향기가 땅위로 올라왔었지. 양산을 들고 걷는데 참 즐거웠단다. 너가 너무 뛰어다녀서 애를 먹기는 했지만 말이야.’

‘엄마! 봄이 오면 몸이 좋아질거에요 다 나으면 또 같이 꽃을 보러 가요’

‘좋아 장, 또 가자꾸나. 하지만 그건 지난번과는 다른 꽃이야. 봄은 매번 새로워서 더 아름답단다. 그러니까 매번, 좋은 순간들을 마음에 잘 새겨두는 것이 좋아’



 장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던 여자는 곧 피곤해져 깊은 잠에 들었다. 여자의 꿈에는 함께 했던 봄이 찾아왔다. 



  세찬 겨울 바람과 눈보라가 창틀을 때리던 어느 날, 여자는 정신을 거의 잃고 말았다. 남자는 절망적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젊은 날 서툴게 사랑했던 한 여자가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말 그대로 시시각각 그녀의 얼굴에서 빛이 사라지고, 말갛게 살이 오른 살구 같았던 볼은 푹 꺼진 째 보랏빛으로, 이어 푸른색으로 변해갔다. 



 남자는 마지막 순간에 믿을 수 없는 행동을 했다. 화구를 들고 죽어가는 그녀를 그린 것이다. 남자는 자신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했다. 그저 가장 소중한 사람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순간을 기록할 뿐이었다. 빛을 그리는 남자는 사랑했던 여자의 마지막 빛을 쉴새없이 기록했다. 


‘죽을 때까지 그 그림을 팔지 않았네. 남자는 오직 그 여자만을 그렸어.’ 

노파가 말했다.



‘여자가 죽고, 남자는 집요하게 풍경을 그렸네. 때때로 아이들을 그리기도 했지만, 더 이상 인물을 그리는데 흥미를 느끼지 못했어. 질투가 많았던 알리스는 자기와 아이들이 그림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자 여자의 사진을 모조리 불태워버렸네.’



어느 새 밤이 깊어, 레스토랑 주인은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노파에게 코담배를 한 뭉치 사주고 호텔로 향했다. 밤의 어스름이 도시를 덮어가고 있었다. 






⋇ KUA Conte 는 쿠도스 아틀리에에서 발행하는 단편입니다

⋇ <죽을을 그리는 남자>는 클로드 모네와 그의 첫번째 아내 카미유 동시외의 이야기를 소재로 재구성한 픽션입니다

⋇ And more..  

카미유 동시외와 클로드 모네는 두 사람이 각각 19살, 25살 때 모델과 화가로 만났습니다


모네의 아버지는 노르망디의 상인으로, 카미유가 모델이라는 이유로 첫째 아들인 장이 태어난 이후에도 둘의 결혼을 반대했습니다. 


그럼에도 모네와 카미유는 헤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함께 살았습니다. 


카미유는 모네의 뮤즈였습니다. 그녀를 모델로 모네는 <녹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정원의 여인들>과 같은 그림을 그립니다 <정원의 여인들>은 심지어 카미유가 세명의 인물을 연기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러던 와중 보불 전쟁이 발발했고, 모네는 징집을 피하기 위해 카미유와 결혼합니다. 이 때부터 모네 아버지의 경제적 지원은 끊깁니다.


카미유의 부모는 그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했지만, 모네의 빚을 갚는데 이 돈을 써서는 안된다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그래서 모네의 그림이 팔리기 전까지 두 사람은 가난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림이 안 팔리자 카미유에게 기모노를 입히고 자신의 취향과 사뭇 다른 색감의, 당시 유행하던 일본풍 인물화를 그린 모네는, 이 일을 두고두고 후회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그림은 높은 가격에 팔립니다. (이와는 별개로, 모네는 일본풍 정원을 매우 좋아해 지베르니에 대나무와 작은 다리를 놓은 일본풍 정원을 꾸미기도 했습니다)


모네의 그림이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을 무렵, 둘 사이는 예전과 달라집니다. 모네의 후원자였던 에르네스트와 그의 부인 알리스는 큰 씀씀이로 인해 파산에 이르자 모네와 카미유의 집으로 들어옵니다. 곧이어 에르네스트는 채권자들을 피해 집을 떠났고, 알리스와 모네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카미유는 둘째 아들을 난 이후 급격히 건강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모네가 지켜 보는 가운데 죽음에 이릅니다. 


‘빛을 그리는 화가'였던 모네는 죽음의 순간, 얼굴빛의 변화를 감지하고 자기도 모르게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후에 그는 이 순간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갖는 그림에 대한 집착, 기쁨, 고통을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거야. 나는 아주 오래 전 아주 사랑했던, 지금도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을 지켜본 적이 있네. (…) 그런데 그 비참한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무의식 중에 빛과 그림자 속에 드러난 색을 구별하고 있더군. 나에게 그렇게 많은 의미를 가졌던 얼굴인데 평소의 습관이 그런 반사작용을 일으켰던 거야.”


카미유의 죽음 이후 모네는 알리스와 44년을 함께 살았지만, 카미유를 그리듯 알리스를 자주 그리지는 않고 풍경화에 집중했습니다. 알리스는 카미유에 대한 질투에 사로잡혀, 남아있는 사진을 모두 불태워버렸습니다.




<초록 드레스를 입은 여인> 1866, 클로드 모네



<정원의 여인들> 1866, 클로드 모네




<기모노를 입은 카미유 클로델(마담 모네)>, 1875 





<아르장퇴유에서의 모네 가족> 1874, 에두아르 마네





<양산을 든 여인>, 클로드 모네 1875





<투르빌 해변가에서 카미유>1870




<빨간 망토를 두른 카미유> 1870, 클로드 모네




<창문 앞의 카미유 클로델>, 1873 클로드 모네




<아르장퇴유의 정원에서 카미유와 아들> 1875, 클로드 모네




<카미유의 죽음> 1879, 클로드 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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