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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Limit

나는 내가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by 돌이



종종 도전욕구를 자극하는 무언가가 내 삶에 나타난다. 그중에서 대부분은 내 삶을 그저 잠시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스쳐지나지 않는 것이 있다. 배드민턴, 다윈의 <종의 기원>, 달리기, 소설 쓰기가 그렇다. 그밖에 당구, LOL, 스포츠 댄스, 드론 날리기, 독서모임 운영, 요리, 맨몸운동 등 많은 것들이 있었지만, 스쳐 지나갔다. 나는 무엇을 기준으로 어떤 것은 스쳐지나 보내고, 어떤 것은 붙잡았던 걸까.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했다. 그리고 잘했을 때,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만한 것이어야 했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운동을 잘 못했다. 기능이 떨어지거나 감각이 없어서 못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몸을 쓰거나 공을 다룬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축구공을 가지고 놀았던 친구들은 고학년이 되자 공을 제법 능숙하게 다루었다. 축구를 잘하는 친구는 운동을 잘하는 친구였고, 인기가 많았다. 나는 운동을 못했고, 그래서 인기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으면 했다. 나는 축구를 잘하는 친구에게 부탁해 축구를 배워보기도 했지만 잘 안 됐다. 나는 포기했다. 나는 운동신경이 부족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축구를 스쳐 보냈다.


중학교를 가자 친구들이 축구가 아닌 다른 운동을 했다. 그중에서 나는 배드민턴이 좋았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만 해도 대부분의 친구들은 셔틀콕을 위로 띄워서 보내는 배드민턴만 쳤다. 네트를 치고 헤어핀이나 스매시를 때리는 배드민턴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운동에서 흥미를 느꼈다. 무언가를 주고받는 느낌, 나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기분은 배드민턴에 대해 호감을 갖게 만들었다.


대학교 체육수업 시간이었다. 배드민턴을 배우는 시간이었고, 교수님과 간단하게 셔틀콕을 주고받았다. 그립도 제대로 잡지 못했던 나에게 교수님께서는 배드민턴 한번 배워보라고 권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전역한 뒤, 집 근처 동호회에 가입했다. 한 달에 10만 원짜리 레슨을 받았다. 1회에 20~30분, 주 3회 레슨이었다. 잘하고 싶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배드민턴을 제일 잘 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즈음, 아내를 만났다. 결혼을 했고, 첫째가 태어났다. 2018년 12월, 동호회를 탈퇴했다.


배드민턴에 대한 희망을 잠시 접기로 결심했을 때,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군대에서부터 시작했던 턱걸이를 많이 하는 것이었다. 턱걸이 개수를 늘리는 유튜브 영상을 찾다 보니, 머슬업이라는 맨몸운동이 있었다. 철봉 위로 상체를 들어 올리는 운동이었는데, 난이도가 있어 보였다. 머슬업을 성공하려면 턱걸이를 최소 20개는 해야 한다는 팁을 보았고, 턱걸이 20개를 위해 나는 달렸다. 처음에는 8개였던 최대 개수가 15개까지 금방 늘었다. 하지만 15개에서 정체기가 왔고, 상체에 통증도 함께 왔다. 특히 어깨와 등이 많이 아팠다. 머슬업을 멀어져 갔다.


2022년, 맨몸운동을 하면서 살이 많이 쪘다. 나는 근력 운동을 하면 식욕이 더 왕성해진다. 평소보다 2kg에서 4kg까지 몸무게가 불었고, 더 이상 살이 찌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근력운동을 하고, 동네를 달렸다. 첫 러닝에서 나는 3.71km를 22분 동안 달렸다. 한 여름인 8월에 달렸음에도, 즐겁고 개운했다. 다음 달리기가 기대됐다. 2022년 8,9,10월 3개월 동안 나는 91km를 달렸다.


2023년은 3월부터 달렸다. 거리를 꾸준히 늘려가며 5월에는 10km도 달릴 수 있는 체력이 되었다. 하지만 곧바로 부상이 찾아왔다. 달릴 때마다 무릎이 찌릿찌릿했다. 하는 수없이 6월, 7월은 달리지 못했다. 8월에 다시 달려봤지만 통증이 이어졌고, 그 해에는 달리지 못했다.


나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배드민턴 레슨을 신청하고, 꾸준히 나가면 실력이 분명히 늘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꾸준히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실력은 늘지 않았다. 턱걸이를 꾸준히 해서, 개수를 하나씩 늘려가면, 근육이 만들어지면서 머슬업을 할 수 있는 신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깨와 등, 목을 자극하던 통증은 내가 흥미를 잃게 만들었다. 달리기를 잘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꾸준히 달리는 거리를 늘려가면서 속도를 높이면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몸무게가 키에 비해서 많이 나가는 편이기는 하지만 골격근량이 많고, 체지방률이 낮은 편이기 때문에 달리기에 지장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바로 무릎에 부상이 왔고, 나는 반년을 달리지 못했다.


2024년 3월이 되었다. 근무지를 옮겼고, 직장 동료들이 달라졌다. 그래서였을까, 다시 달려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오랜만에 달리는 만큼, 짧은 거리를 천천히 달렸다. 무릎의 통증은 없었고, 상쾌함만 있었다. 다 달리고 난 뒤에는 다음 달리기가 기다려졌다. 나는 오늘까지 계속 달리고 있다.


나는 내가 매일 글을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요즘은 아직 그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일단, 내 사고가 그렇게 깊지 않다. 내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구사할 수 있는 단어가 넉넉하지 않다.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논리적으로 읽기 쉽게 써낼 수 있는 연습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매일 노트북 앞에 앉는 것이 버겁다. 괜히 해야 할 다른 일은 없는지 살핀다. 조금이라도 늦게 의자에 앉을 궁리만 하는 사람 같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은 글 생각으로 가득하다. 어떤 주제로 글을 쓰면 좋을까, 이 주제는 어떨까,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써야겠다, 와 같은 생각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을 때, 참 힘들었다. 석 달이면 다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몇 달을 읽어도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지금은 잘 정리되어 있는 책들이 많을 텐데, 굳이 원본을 찾아 읽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억지로 반절쯤 읽었을 때, 나는 이 책을 내려놓기로 마음먹었다. ‘이 정도 읽었으면 됐다. 이제 다른 책 읽어도 된다.’하는 마음이 반절정도 읽으니 딱 들었다.


2024년에 일 년 동안 소설을 써보겠다고 낑낑댔다. 수많은 버전의 동화들을 썼고, 수십 번을 고쳤지만 결국 결판을 내지 못했다. 그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했으면 됐다. 이제 다른 글을 써보자.’


도전했던 일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내가 가장 두려운 부분은 ‘이번 도전을 포기함으로써 내가 이 일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쉽게 포기하는 사람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것이다. 이번 도전은 이번 도전이고, 다음 도전은 다음 도전이다. 별개의 도전임에도 두려움으로 인해 논리적 사고를 못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한계를 마주할 때 느끼는 그 필연적인 두려움,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 그러나 그 두려움도, 불신도 온전히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것을 알아챈다면, 자신의 한계를 조금 더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잠깐 물러나도 된다. 내가 지금은 할 수 없음을 인정해도 된다. 언젠간 할 수 있을테니까. 한계라고 생각했던 지점을 넘어갈 수 있을테니까.




2025.05.11 365개의 글 중 58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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