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더 바랄까?
우리 집에는 복댕이가 있다. 코로나 덕분에 엄마의 사랑을 1년이나 더 받았고 프리랜서 강사의 일을 줄이고 손녀 돌보기를 최우선으로 선택한 할머니도 있다.
우리 모두의 눈에 콩깍지를 씌운 녀석은 분명 복이 많은 사랑둥이다.
황혼 육아
요즘 트렌드 중에 한 가지다. 내 주변에도 손주를 돌봐주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꽤 있다. 부모와 자식이 애증의 관계라면 할머니와 손주는 애정의 관계다.
책임과 의무보다는 그저 무한한 사랑만 주면 되는 사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이다.
바르게 키워야 한다는 강박과 책임감으로 내 아들들에게는 온전히 주지 못했던 사랑과 애정을 손주에게 다 퍼붓는 중이다.
먼저 손주 양육을 끝낸 선배(?)들이 종종 하는 이야기 '그렇게 알뜰살뜰 키워줘 봤자 아무 소용없더라' 거기에 한 마디 더 '지 엄마만 있으면 할미는 뒷전이고 아무것도 아니야' 서운함이 뚝뚝 떨어지는 푸념이다. 특히 외손주보다 친손주를 돌봐준 할머니들이 더 많이 하는 말이다.(외손주는 방아꼬라는 것을 알고 시작하지만 친손주는 내 핏줄이기에 서운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엄마가 최고인 것은 인지상정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누가 모를까만 그럼에도 못내 서운한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역할은 손주들을 사랑으로 돌봐주고 그 덕분에 내 자식들이 안심하고 자신의 일을 계속하는 것, 더 이상 뭘 바라겠는가?
"외손주는 방아꼬다"
아들들은 5살, 7살에 아버지를 잃으면서 자신들을 돌봐줄 엄마는 직장에 뺏기고 가까운 곳에 계시는 외할머니와 외숙모가 엄마를 대신하고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이 아버지를 대신했다.
친정아버지에게 큰 아이는 첫 손주였다. 어릴 적부터 의젓하고 붙임성이 좋은 녀석은 공부도 잘하는 착한 손주였고 자랑이었으며 외할아버지의 첫사랑으로 저장되었다.
그렇게 사랑을 하면서도 종종 '외손주는 방아꼬라 했거든...' 하시곤 했다. 외손주는 당신 제삿밥을 차려줄 자손도 아니고 키워 놓아도 무의미하고 소용없다는 의미의 말이다. 그럼에도 무한한 사람을 주셨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편안한 언덕이 되어 주었다.
방아꼬 // 직계가 아니라 방계라는 말의 경상도 사투리로 방계-> 방아깨 ->방아꼬 로 요즘은 거의 들어 볼 수 없는 말이다.
예문/ 외손지는 방아꼰데 뭐할라꼬 그래 애지중지 키아주노?
방아꼬라고 했던 외손주들은 돌아가실 때까지도 신뢰와 사랑을 받았으며 외할아버지의 염려와 달리 아이들도 좋아했고 돌아가신 후에도 제사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대개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태어나고 자란 시절은 개발도상국이었고 지금의 손주들은 선진국에서 태어난다. 우리 아이뿐만 아니라 요즘 아이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 뱃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태어난다. 그래서 모든 면에서 빨리 배우고 영리하고 똑똑하다. 손주들과 같은 나라에 살지만 태생부터 다른 손주들을 돌보다 보면 여러 가지로 쫓아가기 버거운 일들이 종종 있다.
유치원부터 영어를 배우는 손주들을 보면서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할걸...
여기저기 다양한 예능 학원에서 많은 것을 배우는 아이가 하는 말들을 이해하지 못할 때...
좋아하는 캐릭터 때문에 사고 또 사는 학용품들과 장난감들을 보면서...
부족하고 귀했던 시절을 보낸 우리와 달리 모든 것이 넘쳐 나고 귀중함을 모르는 손주들을 보면서...
그러니 할머니가 줄 수 있는 것은 무한한 사랑뿐이다. 그럼에도 종종 아들 며느리 눈치를 보게 된다. 아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 익숙해질 때까지 일부러 도와주지 않는 엄마 아빠와 달리 할머니는 냉큼 도와주고 대신해주기까지 한다. 손주에게 할머니는 언제나 무방비로 너그럽다. 무엇 하나라도 가르치고 알려주려는 엄마 아빠와 달리 그냥 편하게 안아주고 박수만 쳐주는 사람이 할머니다. 아직은 어리지만 요즘처럼 모든 것이 빠른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편안하게 비비고 엉겨 붙을 수 있는 할머니 언덕이 되어주고 싶다.
앞으로 살면서 우리 복댕이가 아프고 힘들고 외롭고 무섭고 힘든 순간이 오거나 분노와 원망의 마음이 생길 때... 그 어느 순간에 복댕이가 원한다면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에 나오는 대나무 숲도 되어 주고 편하게 기댈 수 있는 비빌 언덕이 되어 줄 것이다.
며칠 전, 하원 길에
"할머니 이건 비밀이야 엄마 아빠한테 말하면 안 돼"
"응, 알았어... 비밀이 뭔데?"
"오늘 태권도에서 7살 유치원 남자아이가 내 앞에 와서 ♡이렇게 하면서 '누나 좋아해' 했어"
"그래? 그래서 넌 어떻게 했는데?"
"그냥 아무 말 안 하고 저쪽으로 갔어"
"왜 그랬어"
"그 아이가 그러는 게 싫어서... 엄마 아빠에게 절대 말하면 안 돼"
"응 알았어... 그런데 왜 비밀로 하고 싶은데?"
"그냥 엄마 아빠는 몰랐으면 좋겠어"
할머니에게만 말하는 비밀을 만든 복댕이, 나의 수다 상대도 되어 주고 여행 파트너도 되어주고 같이 외식도 해주면서 마를 대로 메말라 버린 할머니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다시 느끼게 해 준 우리 복댕이, 오늘 아침 등교를 준비하면서
"엄마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라며 일 하러 간 엄마를 그리워한다. 어젯밤은 우리 둘이 부둥켜안고 잠들었는데 아침이 되니 엄마부터 찾는 녀석에게 서운함보다는 안쓰러움이 앞선다.
"그러게 엄마가 빨리 오면 좋겠다 그지?"
이 사랑둥이에게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사랑한다. 복댕이, 그리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