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노후를 꿈꾸며
선배님, 저도 선배님처럼 아이들을 잘 키우며 살 수 있겠지요?
54살에 늦깎이로 졸업한 상담심리학과 후배들을 위한 강연 초청을 받았고 후배 중 누군가 보내온 문자다.
쉰 살이 넘어서 대학을 가게 된 이유를 시작으로 남편이 돌아가고 24년간 혼자서 뒤죽박죽 두 아이를 키우며 겪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교수님들과 선후배들 150여 명의 청중 중에서 아마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한 후배가 보내온 것 같다. 바로 이 문자 한 통이 내가 글을 쓰기로 한 첫 번째 이유이다.
내 이름 앞에는 훈장처럼 달려있는 수식어들이 있다. 청상과부, 모자가정, 기초수급자, 신용불량자, 파출부, 암 환자, 프리랜서 강사, 단장님(봉사단), 웃기는 할머니(손녀와 손녀 친구들에게) 그리고 이제는 브런치 작가까지 아주 다양하다.
이런 단어들을 쭉 연결하다 보면 내 인생 스토리 한 편이 나온다. 딱 봐도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 단어들이다. 젊어서 남편을 여읜 청상과부가 이래 저래 많은 사연들을 겪었지만 나름 잘 살아왔고 지금은 강사로, 작가로 살아가고 있다는 뻔한 줄거리의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다.
크기와 모양만 다를 뿐 누구나 아프고 힘들고 뭐 그런 스토리 하나쯤 없는 사람이 있을까? 말을 안 할 뿐이지 누구나 아픔과 상처는 다 있다.
그런데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으며 용기를 얻는다는 것을 알았다면, 내 이야기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글을 쓰자. 나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자. 그것이 첫 번째 이유다.
어떻게 중학생인 아들에게 그런 일을 시킬 수가 있어요, 어머니. 저는 그때 겨우 중학교 1학년이었어요.
엄마가 처음이었고 그래서 서툴렀던 시간들, 너무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되면서 두 아들과 함께 지지고 볶고 사는 동안 아들들에게 남아 있는 나쁜 기억들...
'자식은 부모가 못해준 것만 기억하고 부모는 자식이 이쁘고 사랑스러웠던 것만 기억한다'는 말이 있듯이 아버지 역할까지 하면서 혼자서 지들을 키운 엄마에 대한 기억이 잘못해 준 것만이라면 내 삶이 너무 억울할 것 같아서 24살에 처음 엄마가 되고 30살에 혼자서 두 아들을 책임지며 좌충우돌, 고군분투했던 엄마의 이야기를 아들들이 들어줬으면 좋겠다.
이제 아들들은 30살에 혼자가 되었던 엄마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아졌다. 엄마 역할도 서툰 엄마가 아버지의 빈자리까지 대신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혼자서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아들들에게 제대로 해주지 못했던 일들에 대한 변명도 해보고, 한편으로 이해와 용서도 받고 싶은 마음을 글로 써두는 것, 내가 글을 쓰려는 두 번째 이유이다.
말하는 것보다 글로 쓰는 것이 훨씬 어려워...
보기보다 집순이라는 말을 듣곤 한다. 불러내지 않으면 먼저 나서는 일은 좀처럼 없는 집순이에게 글쓰기를 내 노년의 놀이와 취미로 만들고 싶다.
잘 쓰고 못쓰고는 차치해 두고라도 글을 쓰는 것이 말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일단 무조건 쓰고 나서 소리 내어 읽어본다. 맥락도 이상하고 중언부언하면서 말도 꼬이고 연결도 이상 할 때가 많다. 이러면서 어떻게 14년씩이나 마이크를 잡고 대중 앞에 섰을까?(14년째 프리랜서 강사로 웃음치료, 스트레스관리, 관계, 소통등의 콘텐츠로 활동하고 있다)
청중들에게 들려줬던 이야기, 내가 만났던 사람들, 놓칠 뻔했던 순간의 감정과 번개처럼 번쩍 스치며 지나가는 생각들을 메모해 뒀다가 어느 날 하나씩 꺼내어 살도 붙이고 온기도 불어넣으며 그렇게 나만의 색깔이 들어가는 이야기들을 쓰고 싶다.
더불어 내가 쓴 글이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되고 용기를 내게 할 수 있으면 더 좋고, 나만의 소소한 힐링이어도 좋다. 뭐가 됐던 지금처럼 계속 글을 쓰면서 편안하게 익어가고 싶은 바람이 내가 글을 쓰려는 세 번째 이유다.
브런치에 두 편의 글을 연재를 하면서 라이킷의 숫자에 행복하고 댓글이라도 하나 달리는 날은 그날은 마치 내가 위대한 작가가 된 것처럼 뿌듯해지며 종일 행복하다.(많관부)
한 편의 글을 발행하기 위해 최소한 내 맘에 들 때까지 썼다가 지우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그 자체도 너무 재밌다. 어느 순간 생각지도 못했던 단어와 문장들이 쓰이는 날이면 또 행복하다. 하루 종일 온통 내 머릿속은 무엇을?, 어떻게? 의 물음표가 떠 있다. 그런 고민을 하는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도 좋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주어진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이 행복을 위해 꾸준하게 누리기 위해 지금도 키보드를 도도독도도독 누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