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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듀페미 Aug 13. 2021

취미 실패가 취미

그래듀페미 취미에세이 #4

모임을 하는 동안 취미가 계속 바뀌었다. 구성원들에게 취미는 얼마든지 중간에 바뀌어도 된다고 공지했던 게 꼭 나를 위한 예언적 구실이었던 것처럼. 첫 번째 취미로 내걸었던 줄넘기는 5일째에 500개를 넘은 뒤로 다시는 거들떠보지 않았고, 의욕을 잃은 뒤에는 다른 사람들이 성공적으로 이어가고 있는 취미를 따라 독서, 게임도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다음에는 하루 2만 보 걷기와 밤 산책을 하겠다고 공약했는데 2만 보는 한 번도 달성하지 못한 채로 겨우 2주 만에 그만두었다. 우스갯소리로 ‘취미를 바꾸는 게 취미’가 된 나는 모임에서 가장 자주 실패담을 전하는 멤버가 되었다.      


이런 나로 인해 우리 안에서 취미가 실패해도 괜찮은 것이 되는 게 만족스러우면서도 스스로의 끈기 없음이 반복적으로 증명되는 기분은 별로였다. 그래도 격주로 바뀌는 나의 취미 이야기를 계속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 에세이가 나오게 되었다.     


내가 지나온 취미들


어렸을 땐 엄마의 취미를 따라 하곤 했다. 엄마는 시기별로 꼭 취미를 만들어 꽤 높은 수준에까지 도달하곤 했는데, 내 기억에 시작은 비즈공예였다. 한국어와 일본어가 뒤섞인 공예 책을 보면서 작은 반지를 만들어주던 엄마의 실력은 점차 늘어서 머리핀, 목걸이, 손목시계, 머리띠도 뚝딱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뒤엔 십자수였고, 색색의 실타래가 담긴 플라스틱 상자에 나는 마음을 빼앗겼었다. 손재주가 뛰어난 엄마는 또 금세 시계나 쿠션들을 잔뜩 만들었다. 그 다음엔 목공이었는데 작은 나무 선반부터 스툴, 책장까지 대단했다. 뭐 하나를 해도 제대로 배우고 재능을 발휘하는 엄마 덕분에 다양한 분야에 걸친 취미 맛보기를 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요즘도 엄마는 주말이면 동네 배드민턴 클럽에서 만난 동료의 도자기 공방에 나가 엄마의 이름이 새겨진 그릇을 취미로 만든다. 나는? 로망이었던 기타 연주에 골몰했던 때가 있었지만 손가락이 아프고 F코드가 잘 잡히지 않는단 이유로 포기해버린 지 오래됐다. 돈을 모아 클래식 기타를 사고, 문화센터에서 강좌도 수강해봤지만 F코드의 벽은 너무 높았다. 나머지 코드들을 조합해서 작곡도 하고 커버 연습도 했지만, 더 노력을 들이지 않는데 실력이 발전할 수는 없었다. 하와이에서 구해온 우쿨렐레도, 재작년에 생일 선물로 받은 칼림바도 마찬가지였고, 앞서 언급했던 수많은 운동에 관한 취미가 실패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음악은 좋아하기라도 하지, 운동에 대한 역치는 더 낮았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취미가 (감히!) 날 가로막을 때, 이것도 일만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나는 늘 그걸 놓아버렸다. 취미랑 왜 대결을 하는 거야.


왼쪽부터 30일 도전 줄넘기 어플에서 5일째 500개까지만 체크되어 있는 화면, 그리고 2020년에 멈춰 있는 인스타그램 칼림바 연주 계정의 캡처화면.

  

취미는 체력, 체력은 시간


그런 나에게도 엄마처럼 성취해냈던 경험이 올 해를 통틀어 두 번은 있었다. 한 번은 스물다섯 살에 갑자기 판정받은 병명에 대한 충격으로 한동안 일을 쉬면서 나 자신에 대한 생각만 하고 있던 때였다. 나에 대한 생각만 하는 것도 꽤 괴로운 일이어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유화 페인팅을 시작했다. 말이 페인팅이지 사실상 컬러링에 가까워서, 이미 그려진 그림 위에 주어진 번호대로 색칠만 하면 되는 작업이었다. 그래도 워낙 정밀한 풍경화나 정물화를 칠하는 것이다 보니 밥 먹고 슬퍼하고 페인팅만 해도 일주일이 꼬박 걸렸다. 학업이나 일이 아닌 것에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어디에도 집중할 수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현실에서 도망치는 데 제격인 취미였고, 결과물도 그럴듯했다.     


유화 페인팅 물감 뭉태기(?)

시간이 흘러 병의 원인을 찾았고 나인 투 식스로 일하는 직장인이 되었다. 작년부터 계획했던 이 모임, 그래듀페미 활동도 시작했다. 너무나 예측 가능한 전개일 수도 있지만 나의 두 번째 성취는 바로 이 모임이었다. 취미 그 자체는 아니어도, 취미를 공유하는 정기 토크 모임. 취미가 일이 되었기 때문일까? 지구력은 없어도 책임감은 있어서일까? 아니면 나에게 사람들과 수다 떠는 취미가 있었던 걸까? 아무튼 취미 에세이를 완성하기 전까지 총 여덟 번의 출석 도장을 찍었다.     


그 밖에도 그동안 스스로 취미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휴식의 동반자 격인 드라마 시청과 휴대폰 게임도 있었는데, 이를 인지한 건 사람들과 취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지 한참 지나서였다. 나에게 취미란 SNS에 자랑할 수 있는 고상한 예술적 활동이어야 한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그건 체력과 시간이 허락되어야 가능한 거였다.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려면 시간을 써야 하고, 체력을 기르는 데에도 체력이 든다는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앞으로도 실패하겠지만


한두 가지 취미를 뚝심 있게 이어가면서 실력을 키우고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을 보면 여전히 닮고 싶다. 하지만 근 4개월 동안 나의 취미생활을 관찰한 결과, 나는 새로운 걸 시작하는 데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조금 극단적이지만 나는 앞으로도 다시 시작하기 위해 계속해서 실패할 것이다. 진짜 두려운 건 워커홀릭에 빠져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게 되는 내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실망하지도 지루해하지도 않고 나의 반복되는 시도를 들어줄 친구들과, 나의 체력과 시간이 오래오래 내게 머물면 좋겠다.





Edited by. 서영

대학 졸업 후 그래듀페미 취미모임을 만들었다. 미끄러지고 헤매면서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것에 대해 고민한다. 승부욕이 강하고 교훈적 글쓰기에 대한 강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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