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래듀페미 Aug 17. 2021

깨끗하게 머리치기

그레듀페미 취미에세이 #5

소설가 최은영을 북토크에서 만났을 때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소설가로서 꼭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아마 질문자는 좋은 소설을 쓰고 싶었을 거고, 소설가가 소설 쓰기에 관한 중요한 제언을 주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소설가는 이렇게 답했다. “아, 운동하세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 하고, 아무튼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깨달음은 최근 들어 내 실감 속에 들어오고 있다. 책상 앞에 앉아 일하는 사람들이 자주 놓치곤 하는 운동의 중요성을 주변의 한 동료가 교리처럼 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운동 이후에 달라진 삶의 놀라움을 역설하곤 한다. 그 역설에 불신(을 가장한 핑계와 징징거림)을 심어놓아도 확신의 싹은 자라지 않았고 결국 나는 운동쟁이들의 전도에 굴복하기로 했다. 그래, 해보자고. 까짓 운동쯤이야. 내 외삼촌이 헬스 트레이너라고. 아주 딴딴하고 건강한 몸이 되어 보이겠어. 우연히 집에 놀러 온 외삼촌에게 맨몸 운동 기술을 전수받고 (노트 필기까지 했다), 아령도 두 세트를 샀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음?) 맨몸 운동은... 재미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근육을 키우는 데 별 관심이 없었고 같이 하는 사람이 없어하면 할수록 의지가 쪼그라들었다. 어떡하지, 재미있는 운동은 없나...? 그때 나의 오랜 선망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검도를 하자!


하고 많은 대련 운동, 격투기 중에 검도를 고른 이유는 검도가 손을 쓰지 않는 무술이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 몇 번의 주먹다짐(이라고 표현했지만 일방적으로 맞았던) 경험 속에서 나는 상대에게 주먹을 뻗을라치면 마치 자석의 같은 극이 밀어내는 것처럼 주먹이 힘을 잃고는 했다. 손으로 사람을 때리는 게 무서웠던 게 아닐까. 복싱 킥복싱 주짓수 유도 모두 손으로 사람을 제압하는 무술이니, 시도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격투기를 해보고 싶었다. 구기종목은 잘하는 편이 아니었고, 제대로 하려면 많은 사회성과 친구, 동료들이 필요하니까... 그래 다음 기회로 미루자, 싶었다. 혼자 몸을 단련하는 헬스, 필라테스는 충분히 해볼 만했지만 어쩐지 끌리지 않았다. 좀 더 다이내믹한 경험이 있어야 운동을 지지리도 싫어하는 나를 붙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상대방과 뜨거운 에너지를 격렬하게 주고받으면서 협동을 최소화하는 운동은... 역시 격투기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 손으로 할 수 없다면 검으로 하면 되지! 게다가 두꺼운 갑옷을 입으니 맞아도 별로 안 아프지 않을까? 게다가 검은 좀... 멋있잖아? 죽도를 휙휙 휘두르며 상대방을 순식간에 제압하는 상상에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다. 여러 계산과 상상이 끝나고 나니 나는 어느새 검도장으로 턱턱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관장님의 첫인상은 키가 크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키가 큰 게 아니라, 산 같았다. 풍채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싶었다. 관장님은 친절하셨고, 친절한 만큼 등록은 후루룩 이루어졌다. 진입장벽은 가격에 있었다. 죽도와 호구를 전부 구비하려면 아무리 싸게 사도 50만 원이었다. 한 번 사면 적어도 허리를 못 쓸 때까지는 할 생각을 해야 본전을 뽑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운동을 10년, 20년 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시작해보기로 했다.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는 거야... 중얼거렸지만, 결심은 생각보다 연약했다.


검도는 검을 사용하는 운동이니 손과 팔 힘 정도가 중요하다고 섣불리 예상했지만 필요한 건 온몸의 힘이었다. 죽도를 쥐고 서 있는 것만으로 꽤 신경을 써야 했다. 중단(죽도를 쥐고 배꼽 쪽으로 끌어당긴 채 상대방의 목을 겨누는 자세)을 제대로 취하고 있으면 상대방이 나를 향해 섣불리 달려들 수 없기 때문이다. 상대가 어떤 공격을 할지 끊임없이 기척을 살펴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정신력과 집중력이 요구되고, 더 재빠르게 공격을 성공시키려면 다리의 순간적인 속도와 죽도 치기의 정확성이 필요하다. 이런 기본적인 공격과 수비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족히 몇 개월간의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문제는 나에게 끈기와 체력이 생각보다 부족했다는 것이다. 동작과 훈련법을 익히는 데 어려움은 없었지만 금방 지쳐 나가떨어졌다. 호구는 너무 답답했고, 시야가 좁아진 탓에 움직이기 불편했다. 호완(검도할 때 착용하는 장갑)은 뻑뻑해서 죽도를 힘껏 쥐려면 손아귀가 저렸다. 죽도를 시원하게 내리치려면 팔을 훌쩍 들어야 하는데 호면 옆으로 길게 나 있는 포단이 팔뚝을 방지턱처럼 막아세웠다. 호구 없이 그냥 몸풀기를 해도 헉헉대는데, 호구를 다 착용하면 한걸음 한걸음마다 체력이 숨풍숨풍 빠져나갔다. 


이러다 보니 대련에서 득점은 너무 먼 얘기가 되어갔다. 3분의 대련 동안 주저앉지 않고 서 있기만 해도 용했다. 여느 스포츠의 대결과 마찬가지로 검도도 이기기 위해선 득점을 해야 하고, 올바른 득점을 하려면 일종의 ‘자랑’과 ‘겸손’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득점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개(고수의 영역으로 가면 한 개 정도 더 있다), 머리 치기, 손목 치기, 허리 치기다. 여기서 가장 기본이 되는 공격은 머리 치기다. 흔히 검도를 떠올리면 상대의 머리를 향해 죽도를 내리치고 나가면서 “머리이이이이이!!!!”를 외치는 사람이 보인다. 이때 공격이 성공하려면 정확하게 머리를 치는 것은 물론 심판에게 ‘내가 쳤다!’는 사실을 어필하는 게 중요하다. 머리를 일단 쳤다면 나가면서 고래고래 “머리!!”를 외치고 돌아서서 상대방에게 검을 겨누며 중단 자세를 취해야 한다. 이때 표현하는 것이 ‘존심’이다. 함께 겨룬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표시고, 존심을 표하지 않으면 점수는 취소될 수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자랑은커녕 겸손을 표할 기회조차 없었다. 대련에 들어가면 노려보기만 하다가 검을 들라 치면 어느새 상대방은 내 머리를 치고 저 뒤로 나가 있다. 아니,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답답한 마음에 무턱대고 돌진해봐도 나보다 먼저 십수 년간 도장의 먼지를 발로 닦은 사범님들은 아주 여유 있게 머리나 손목을 치고 나가버렸다. 어쩌다 머리 치기에 성공해도 나는 친 줄도 몰라 엉거주춤 제자리에 머물러 있기도 했고, 치고 나가보아도 뒤돌아 존심을 표하는 데 쓸 체력을 남겨두지 못했다.     


어느 날, 자신감이 바닥에 떨어져 주춤주춤 대고 있는데 한 사범님이 대련 중에 나를 불렀다. 뭐지, 나 뭔가 잘못한 건가? 뭔가 불쾌할만한 실수를 저질렀나 싶어 조마조마했다. 호면과 호면이 거의 닿을 만큼 가까이 온 사범님은 큰 소리로(호면 때문에 귀가 막혀있으니 큰 소리로 말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말했다.


“미리 피하지 마요.”


그렇다. 나는 치기도 전에 미리 피해 갈 생각부터 하고 있었다. 머리를 빠르게 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내 죽도가 상대 죽도보다 먼저 닿으면 된다. 먼저 닿으려면 죽도는 가장 빠른 경로를 타고 상대 머리에 닿아야 하는데 미리 피할 생각을 하면 죽도가 사선으로 빗겨나가게 된다. 피하려고 하면 이길 수 없다. 간단하고 당연한 검도의 상식을 나는 지키고 있지 않았다.


“걱정하지 말고, 정면으로 치고 나와요. (칠 것 같으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머리를 치려면 내 주먹은 상대방의 얼굴에 닿을 수밖에 없다. 그게 가장 빠른 길이니까. 여전히 검으로 사람을 내리치는 데 두려움을 느끼고 있던 나는 사범님의 말을 듣고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아 나는 저 사람을 배려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저 사람이 더 잘하니까, 나는 깍두기니까. 나를 방어하는 건 저 분의 일이지 내 일이 아니었다. 상대가 어떻게 내 머리를 치는지 그것도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었다. 내가 할 일은 오로지 빠르게 머리를 치는 것뿐이었다. 그래 바보같이, 누가 누굴 봐줘. 여기서 내가 제일 못하는데.


죽도를 꽉 쥐고 중단을 취했다. 죽도의 끝과 끝이 살짝살짝 부딪혔다. 나는 오른발을 뻗으면서 쾅하고 발을 굴렀고 죽도를 쥔 주먹을 정면으로 내질렀다. 얼굴을 칠 기세로, 밀어버릴 기세로. ‘탕!’하는 소리와 함께 죽도의 끝이 상대의 머리에 닿았다. 손으로 지긋한 감각이 전해졌고,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깨끗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범님은 “그렇지! 그렇게 하는 거라고요.”라고 말했고 나는 나도 모르게 배실배실 웃었다.     


검도에서 겨루는 건 상대만이 아니다. 나는 나와도 겨루게 된다. (사실 모든 스포츠가 다 그럴 테다.) 내가 나를 믿지 않으면 절대 머리를 칠 수 없다. 상대가 어떻게 공격할지를 미리 걱정하게 되면 움츠러들고 쪼잔한 수법에 집착하게 된다. 무엇보다 나의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 나의 자세를 가다듬고 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늦어도 상관없다. 어차피 내가 제일 못하는 걸. 도장의 관장님과 사범님들은 그런 사실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는다. 어쩌다 성공한 공격에 낯 뜨거울 만큼 칭찬을 얹어주고, 내가 헉헉대는 탈진 상태에서 회복되기까지 기다려주기도 한다. 검도장 안에서 나는 오로지 상대방의 머리를 노리는 죽도를 든 한 사람뿐이다. 오로지 그 한 방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집중하는 마음에 대해 ‘깨끗하다’는 수식어 없이 표현할 방법을 나는 모른다. 





Edited by. 창석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에서 일하며, 주로 글을 쓴다. 생산성이 누락된 시간을 선망하는 동시에 불길해하는 워커홀릭... 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

bellamy all rights reserved


이전 06화 취미 실패가 취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