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듀페미 취미에세이 #8
“취미가 무엇인가요?”
초등학교 때만 해도 이 질문에 별다른 무게를 느끼지 못했다. 자기소개라는 것을 하는 방법을 처음 배우는 시기에, 취미라는 것은 단골 질문이자 항목이었다. 그럴 때 난 예시 답안으로 자주 등장했던 독서 같은 것을 답하고는 했다. 그때는 실제로 책을 많이 읽기도 했고.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는 취미라는 것을 가질 시간적 여유가 허락되지 않았다. 내가 학교 공부가 아닌 다른 것으로 관심을 돌리면 필연적으로 학업 성적이 떨어졌고, 그럴 때마다 나는 공부에 집중하라는 질책을 들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게 된 것은.
나의 무취미한 삶은 대학 진학 이후로도 이어졌다. 잠시나마 영상 제작 동아리 활동을 했지만 내가 아닌 이유로 오래가지 못했고, 완성된 작품이나 공모전 수상과 같은 가시적인 결과물도 남지 않았다. 이후로도 이렇다 할 취미를 갖지 못했다.
이는 나를 우울에 빠뜨린 요인 중 하나였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다는, 나는 취미도 특기도 개성도 없는 무색무취의 존재라는 생각이 나를 집어삼켰다. 나라고 좋아하는 것이 없었을까. 나는 영화나 음악, 애니메이션, 뮤지컬을 감상하고 이에 대해 평론하는 것을 좋아했다. 게임하는 것도, 요가를 하는 것도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아했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강연을 듣고 지식과 깨달음을 얻는 것도 좋아했다. 그러나 내가 취미가 무엇이라고 자신 있게 소개하지 못했던 것은 취미란 특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열정을 갖고 주기적으로 하는 활동이어야 하며, 때문에 그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거나 능숙해야 한다는.
취미란 위와 같은 조건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은 다른 사람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 때문이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서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으레 그것을 잘 알거나 잘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그럴 때 당당하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던 자신을 직면할 때마다 나는 일종의 수치심을 느꼈다. 이러한 경험이 누적되며 내 마음속에는 ‘주기적으로 그 활동을 하는가, 잘하는가, 잘 아는가’와 같은 취미 셀프 체크리스트가 만들어졌고, 내게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다. 이러한 생각의 흐름은 나를 깊은 우울에 잠식되게 만들었다.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이 없는 인간인 나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취미 하나 가지고 별 생각을 다 한다고. 맞다. 내가 생각해도 난 참 별 생각을 다 한다. 그리고 내가 삶의 이유를 잃어버렸던 것은 취미가 없다는 생각 하나뿐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취미를 포함해 사회적으로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과 이에 따른 절망감이었다.
이쯤에서 질문해 본다, 인간 존재의 가치는 효용 가치인가, 인간은 특정한 조건을 갖춰야만 존재 가치가 있는가. 나의 답은 ‘아니다’다. 그렇기에 인간은, 사회는 연구 소재가 고갈되지 않는 것이다. 자연과학자들도 도저히 밝혀내지 못하는 영역이 있어 종교를 믿기도 한다. 세상은, 그리고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어느 하나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무수한 존재가 공존한다. 이러한 대전제를 잊고 인간 존재를 단편적으로 정의하려고 들면 인셀이 되는 것이다. (?!)
이러한 깨달음(이라고 하기엔 너무 부끄럽지만)을 얻고 내가 건강해졌는지, 내가 건강해져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난 아직도 나의 취미를 정의하지 못한다. 아무렴 어떤가. 그리고 어엿한 취미가 없어 나는 무색무취한 존재라 할지라도 어떤가. 이런 나도 어딘가에는 쓸모가 있겠지, 하물며 이젠 화장품도 무색무취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Edited by. 소현
강한 말투에 그렇지 못한 멘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