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 위의 노래 Aug 18. 2021

가장 아름다운 색

저는 요즘 그림을 그리곤 합니다.


제 눈 안에 비치는 세상은 동그란데

왜 제 앞에 놓인 하얀 도화지는 테두리가 네모날까요.

오늘도 하늘의 한 귀퉁이를 잘라 버리고,

나무의 이파리를 억지로 끊어 냅니다.

눈길조차 받지 못한 제 시야 밖의 그대들은 오죽 섭섭할까요.

죄책감을 느끼기에는 너무 무뎌져버린 이런 제 모습이 더 원망스럽지는 않나요.


붓질을 멈추지 않고 도화지를 채워 냅니다.

삐죽삐죽 풀과 나무 앞으로 노랑의 꽃들이 수놓은 들판,

그리고 이제 막 타오르기 시작한 햇살을 배경으로

그 모든 것들의 중심에 당신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어떤 옷을 입었나요.

당신의 머리는 어떻게 정돈되었나요.

당신은 무슨 향이 났나요.

당신은 미소는 어떤 색이었나요.

당신은 누구였나요.


내가 당신을 기억합니다.

달빛에 반짝이던 그 눈망울도,

기분 좋을 때면 나오던 그 콧소리도,

언젠가 제가 선물한 목걸이와 잘 어울리던 그 원피스도.


그럼에도 제가 당신을 그리지 못하는 것은

아침 햇살의 따스한 다홍색

늦여름 시원한 바람의 푸르름

저녁달의 어스름

모든 빛깔이 잘 어울리던 당신이

도화지에 물감으로 섞이면 그저 검은 형태로 남을 모습이 두렵기에.


오늘도 당신의 색을 찾아 저는 붓을 들어 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호수공원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