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즘 그림을 그리곤 합니다.
제 눈 안에 비치는 세상은 동그란데
왜 제 앞에 놓인 하얀 도화지는 테두리가 네모날까요.
오늘도 하늘의 한 귀퉁이를 잘라 버리고,
나무의 이파리를 억지로 끊어 냅니다.
눈길조차 받지 못한 제 시야 밖의 그대들은 오죽 섭섭할까요.
죄책감을 느끼기에는 너무 무뎌져버린 이런 제 모습이 더 원망스럽지는 않나요.
붓질을 멈추지 않고 도화지를 채워 냅니다.
삐죽삐죽 풀과 나무 앞으로 노랑의 꽃들이 수놓은 들판,
그리고 이제 막 타오르기 시작한 햇살을 배경으로
그 모든 것들의 중심에 당신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어떤 옷을 입었나요.
당신의 머리는 어떻게 정돈되었나요.
당신은 무슨 향이 났나요.
당신은 미소는 어떤 색이었나요.
당신은 누구였나요.
내가 당신을 기억합니다.
달빛에 반짝이던 그 눈망울도,
기분 좋을 때면 나오던 그 콧소리도,
언젠가 제가 선물한 목걸이와 잘 어울리던 그 원피스도.
그럼에도 제가 당신을 그리지 못하는 것은
아침 햇살의 따스한 다홍색
늦여름 시원한 바람의 푸르름
저녁달의 어스름
모든 빛깔이 잘 어울리던 당신이
도화지에 물감으로 섞이면 그저 검은 형태로 남을 모습이 두렵기에.
오늘도 당신의 색을 찾아 저는 붓을 들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