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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Mar 30. 2022

연애를 왜 포기하세요

그게 뭐라고

1. 연애를 하다.


어떤 명사에 딸려 나오는 동사를 파악하면 역으로 해당 대상을 분석할 수 있다. 동사는 그 자체로 어떠한 행위이면서 동시에 대상 명사의 특성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애를 살펴보자. 연애라는 단어에 가장 빈번하게 붙는 동사는 '하다'이다. 즉, "연애를 하다" 식으로 문장이 구성된다. 뭔가를 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잘' 하는 것과 '못' 하는 것. 여기에서 '잘하다'는 또 두 갈래로 나뉜다. 자주 혹은 능숙하게. '못 하다'는 정확히 반대의 의미를 갖는다.


연애란 행위다. 잘하거나 못 하게 되는 어떠한 행동. 이는 얼핏 보기에 당연하면서도 연애가 가진 특성 탓에 슬픈 현실을 만들어내고는 한다. 만약에 팔굽혀펴기를 '못 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이 사람은 어쨌든 팔굽혀펴기라는 행위가 가능하다. 자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능숙하진 않겠지만 어찌어찌해낼 수 있다. 대부분의 행동은 스스로의 의지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연애는 항상 나와는 다른 상대방을 필요로 한다. 연애와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사랑은 일방적으로 할 수 있다. 물론 대상은 있어야겠지만 '나에 대한 사랑'도 가능하니 얼마든지 성립할 수 있다. 게다가 사랑은 행위이면서 동시에 감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연애는 다르다. 항상 타인이 있어야 한다. 그것도 나와 연애할 의사가 있는 또 다른 사람이. 연애란 감정 그 자체가 아니며 대상이 있어야 하는 행위다.


그래서 연애를 하려면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질적으로 연애를 할 수 있는 역량과 상황을 만들어가야 하고, 여기에 더해 운도 따라야 한다. 물론 영화 <그녀 Her>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인공지능과 연애를 하는, 혹은 사랑을 나누는 미래가 올진 모르겠다. (아마 오지 않을까.)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요행은 요원하다. 빅스비든 시리든 내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걸 보면.



2. 연애 시장


명사와 연결되는 또 다른 명사를 통해 특정 존재의 특성을 파악할 수도 있다. 여러 조합 중에서 '연애 시장'이 있다. 만약 연애가 순수하게 사랑으로만 이루어지는 지고지순한 위였다면 '시장'이라는 다소 냉정한 단어가 붙진 않았을 것이다. 연애는 자본주의 내지는 시장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연애 시장은 사실 취업 시장과 궤를 같이 하는 단어다. 어느 한쪽이 상대방에게 자신을 받아줄 것을 요청하고, 반대편에서 그 사람을 일정한 절차로 검증해 커플링/채용 여부를 결정한다. 이 모든 과정이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 또 한쪽이라도 받아주지 않으면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도 닮았다. 물론 두 시장이 완벽하게 동일하진 않지만 비슷한 특성을 공유한다.


그래서 연애 관련 조언과 콘텐츠는 보통 연애 시장에서 자신의 협상력을 높이는 식으로 진행된다. 외적으로 어떻게 관리를 하고, 경제력을 갖춰야 하고, 유머와 센스와 지식을 두루두루 갖춰야 하고 등등. 물론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히 흘러가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협상력에 관한 가장 유명한 이론은 마이클 포터 교수의 5 Force 모델이다. 이 경영학 모델의 결론은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판다"다. 다른 이해관계자에 대한 협상력은 가격 경쟁력, 제품 및 서비스 차별화, 진입장벽, 대체제 여부 등 다양한 요소로 결정된다. 흔히 말하는 '갑'이 되면 협상력이 올라가고, '을'이 되면 내려간다. 갑과 을을 규정하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아쉬움이다.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은 갑이 되고 반대편은 을이 된다. 브랜드사 영업사원이 유통업체 바이어에게 저자세로 나가는 이유는 아쉬울 일이 더 많아서다. 반대로 애플이나 삼성처럼 거대한 기업의 영업사원이라면? 아쉬울 게 없으니 최소한 동등하거나 오히려 더 우위에서 협상을 해나갈 수 있다.


시장은 협상과 협상이 부딪히는 현장이다. 그 협상의 결과로 가격이 결정되고 계약이 성사된다. 연애 '시장'도 마찬가지다. 아쉬운 누군가가 고백이라는 형태를 통해 협상을 시도한다. 상대방은 그 사람이 가진 여러 가지 특성과 자신의 감정, 관계 등을 저울질하며 그 협상을 받아들일지 결정한다. 협상이 잘 이루어지면 연인관계로 이행할 수 있고, 반대로 결렬되면 '미안, 우리 그냥 친구로 지내자' 식의 예의 바른 거절 멘트를 듣는다.


협상에서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려면 아쉬움이 없어야 한다. 매력도를 키워서 아예 도시락을 싸들고 찾아오게 만들던지, 아니면 짐짓 연애에 관심이 없는 듯 무심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다만 매력도가 없는 상태에서 무관심하게 보이면 이 협상 과정에 아예 참여할 수도 없으니 주의해야 한다.



3. 연애를 포기하다


연애 시장에서 이탈한 경험이 누적되다 보면 이제 시도를 하지 않게 된다. 물론 오기가 생겨 계속 문을 두드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런 경우는 연애를 안 하는 걸까, 아니면 못 하는 걸까? 보통 사람들은 이 둘을 구분하는 데 열을 올리곤 한다.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연애를 못 하는 사람'이라고 규정되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다고 여긴다. 그래서 '연애를 포기했다'는 자조 섞인 문장으로 자신을 설명한다. '안 하다'와 '못 하다'가 뒤섞인 표현이다.


어떤 걸 포기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은 경우 둘 중 하나의 내면 상태를 가진다. 정말로 필요가 없어 놓아 버렸거나, 아니면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원하고 있거나. 후자의 경우 '포기했다'라는 강한 표현을 통해 자신의 심리를 방어한다. 실제로도 효용가치가 있는 전략이다.


비혼 선언이 대표적이다. 비혼은 '결혼을 포기'하는 행위다. 물론 '나는 안 하는 거야'라고 하겠지만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포기다. 그런데 비혼 선언을 하고 나서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는 경우가 있다. 꽤나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난 결혼 안 해!'가 '난 좋은 사람 만나야만 결혼할 거야!'와 동의어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사실 비혼 선언은 굳이 할 필요가 없다. 만약 결혼이 온전히 개인의 자율에 맡겨진 과업이라면 말이다. 물구나무를 안 선다고 '물구나무 포기 선언'을 하는 사람은 없다.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철저히 내 마음에 달렸으니까. 그래서 비혼은 개인적이면서도 동시에 사회적인 현상이다. 내가 뭔가를 안 하겠다고 선언해야 할 만큼 특정 행위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거세기 때문이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연애 포기 선언은 자존심과도 연결되어 있지만 동시에 주변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심리적 탈출구를 제공한다. 단순히 '못 하는 사람'이 '안 하는' 거라며 자기 위로를 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한편으로 연애 시장이 이토록 공고하게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전의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연애란 사회적으로 문제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가 된다. 설령 그 연애 생활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내가 표현하지 않는 이상 어차피 외부에서 알 수 있는 건 '내가 연애를 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파트너의 스펙' 뿐이다. 외부적인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나라는 사람의 가치는 이렇게 '내'가 아닌 다른 요소로 결정된다. 연애란 그 수많은 요소 중 하나로 전락해버린다.


물론 연애란 사랑을 전제로 누군가와 맺는 특수한 관계이자 개인이 겪는 실존적 체험이다. 하지만 연애라는 행위에 사회적인 시선이 더해지고, 내게 매겨지는 가치가 엮이면 연애란 하나의 의무가 되어버린다. 연애를 못 하거나 안 하면 사회적 의무를 저버린 사람이 되어 버린다. 결혼과 출산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연애 시장의 존재는 사랑의 순수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나는 너를 사랑해서 연애를 하는 걸까? 아니면 연애를 해야 해서 연애를 하는 걸까? 이건 생각보다 중요한 질문이다. 물론 순도 100%의 사랑 따위 있을 리가 만무하다.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밀란 쿤데라는 이런 순수한 사랑은 오로지 반려동물과 사람 사이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고 단정 짓는다.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사랑이라니. 과연 사람과 사람 간에 성립할 수 있는 개념일까?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조차도 이유를 찾는 게 인간인데 말이다.


연애 시장에서의 협상은 연인 관계에 안착하고 나서도 계속된다. 사랑과 의무 사이, 너와 나 사이, 내 욕망과 너의 욕망 사이에서 계속 균형을 맞춰야 한다. 머리 아픈 문제도 지속적으로 생긴다. 사람 한 명 한 명은 하나의 소(小) 우주다. 그 우주와 우주가 만나는 과정은 아주 복잡하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새로운 감정과 상황이 피어난다.


이렇게 '연애를 포기한다'라는 선언에는 생각보다 많은 문제가 얽혀있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시장에서 이탈한 이들의 넋두리로 들리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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