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는 포기고요, 특기는새로고침입니다
장래희망하면 생각나는 에피소드 하나.
중학생 때다. 내가 원하는 장래희망과 부모님이 원하는 장래희망을 적으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 난 남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생각으로 충만해 있었다. 하지만 유난히 내성적인 아이인지라 그 다름을 쉽사리 표현하지 못했다. 고민 끝에 두 단어를 끄적였다.
> 내가 원하는 장래희망 : 탐정
> 부모님이 원하는 장래희망 : 명탐정
지금 생각해보면 '이 당돌한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하나?' 담임 선생님의 고민이 컸으리라. 쟤는 커서 뭐가 되겠나 싶었을 거고. 그 아이는 한국식 루트를 충실히 밟아나가 K-직장인이 되었다는 후문이다.
"넌 꿈이 뭐야? 장래희망이 뭐야?"
저 질문이 드러내는 건 대개 '꿈'이나 '희망'이 아니라 '두려움'이다. 이 나이 먹도록 장래희망 하나 없는 나 자신을 마주할 때 느끼는 두려움. 이런 사람에게는 방패막이가 필요하다. 내 의지와는 관련이 없지만 왠지 그럴듯해 보이고 주변에서 추가 질문을 받지 않는, 그런 '직업'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하나. 장래희망이라는 단어 어디에도 구체적인 직업명은 없다. 장래희망이 꼭 의사, 변호사, 공무원이 될 이유는 없다는 소리다. 심지어 요즘엔 대기업이나 공기업처럼 '직장 = 장래희망'이라는 등식마저 성립한다.
장래희망은 말 그대로 장차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지금은 하고 있지 않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하고픈 일. 세계여행도, 길거리 버스킹도, 쿠바에서 비빔밥 가게를 차리는 것도 장래희망이 될 수 있다. 직업은 그 자체로 고정된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연봉은 얼마, 복지는 어떻고, 주요 업무는 무엇이고 하는 식이다.
하지만 일은 그보다 더 넓은 개념이다. 특성을 나열하지 않고 행동으로 표상된다. 멈춰있지 않고 살아있다. 이룬다고 끝이 아니다. 그래서 감히 말하건대, 장래희망은 직업이 아니라 일이 되어야 한다.
내 장래희망은 퇴사다.
퇴사 자체가 목적 일리는 없다. 퇴사란 책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의 표현을 빌리면 '한쪽 문을 닫고 다른 쪽 문을 여는' 행위다. 인생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일차선 도로다. 소위 'N잡'의 시대가 열렸지만 다양한 직업을 한 번에 가지는 건 여전히 까다로운 일이다.
만약 다른 길을 욕망한다면 과감하게 지금 앞에 있는 문을 닫고 돌아서야 한다. 누군가는 그런 나를 책망한다.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그만두다니. 의지도 없고, 열정도 없고, 편하게만 살려고 하는구나. 그래 가지고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겠니.
하지만 포기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선택이다. 삶의 우선순위가 명확한 사람은 누구보다 빠르게 포기할 줄 안다. 미련을 버려야만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수 있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때로는 흘러가는 시간에 멈춤 버튼을 누르고 나만의 이정표를 세워야 한다. 살아지는 대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살기 위해서.
물론 포기하는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잠시 숨을 고르고 고개를 돌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나는 퇴사를 꿈꾸지만 일을 그만둘 생각은 없다. 다만 조직생활이 주는 안온감, 네임밸류, 피라미드처럼 켜켜이 쌓인 위계질서를 포기할 뿐이다. 회사생활이 내 영혼에 얼마나 해가 되는지 깨달아서다. 아니, 영혼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다. 그저 즐겁지 않았다고 해두자.
내겐 새로고침이 필요하다.
컴퓨터가 버벅거릴 때마다 누르게 되는 마법의 F5가 말이다. 새로고침 버튼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건 아니다. 그저 새로 시작할 힘을 줄 뿐이다. 언제든지 훌쩍 떠날 수 있게.
그래서 삶을 가볍게 살려고 한다. 최소한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지 말아야지. 그러다 내 몸과 마음이 짓눌리면 그대로 땅에 박혀버릴 테니까. 여행을 해보면 안다. 기분 좋은 여행을 위해서 그렇게 많은 게 필요하지 않다는 걸. 특히 트래킹이나 도보여행을 떠난다면 더더욱. 여행자가 진 배낭의 무게는 마음의 무게와 같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조금만 더 가볍게, 조금만 더 천천히.
아, 그리고 참고로 탐정이 되겠다던 꿈은 진즉에 포기했다. 혹시 알고 싶을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