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 없는 남자, 사랑받을 수 없는 여자
둘이 만난 이야기
남자는 생각했다. 자신은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자신은 앞으로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둘의 전제는 그 자신 안에서는 정합적으로 소용돌이쳤지만 실은 알지 못했던 거다. 세상은 그리 간단하게 내려진 결론에 서로라는 반증을 들이댈 만큼 다소 잔인한 존재라는 걸.
틀리면 어떠랴. 그 덕에 사랑하고 사랑받을 존재와 조우했으니 경사스러운 일이다. 실은 이 모든 과정이 먼 성간여행 끝에 탭댄스를 추고 있는 지적 알파카를 만날 확률만큼이나 희박한 경우의 수에 기대고 있었다는 걸, 이 관계가 그만큼이나 귀하다는 걸 둘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래서 서로의 품에 파고드는 시간이 더욱 귀중했고, 달콤했고, 또 든든했다. 운명이니 세기의 사랑이니 하는 낯간지러운 수식어로 꾸미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완결성을 지닌, 그런 시간이었다. 왜냐면 둘이 만들어낸 그 동굴 속에서는 그저 우리밖에 없는 듯 모든 것이 고요하고 평화로웠으니까.
어디가 좋냐는 말에 굳이 이유를 헤아리지 않아도 되는, 그냥 알 수 있다는 모호한 말에 기대어도 충분한, 앞으로도 이런 순간이 지속되리라 기대하고 있는, 그런 사람, 또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