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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Dec 07. 2023

서울 사이드 업

[돈] - 1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는 ‘서울은 노른자, 경기도는 노른자를 감싸고 있는 흰자’라는 대사가 나온다. 주인공 세 남매는 출근을 위해 매일 서울행 전철에 몸을 싣는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 탓에 경기도에 있는 본가를 벗어나는 건 꿈도 꾸지 못한다.


2021년을 기점으로 수도권에 사는 인구는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서울 인구는 2015년 이후로 계속 감소 추세다. 다만 이들 역시도 대부분 경기도나 인천으로 빠져나간다. 특히 젊은 층의 수도권 유입은 무서울 정도다. 대부분 취직이나 학업을 위해 몰려든다.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산업, 인프라 등이 수도권에 집중된다.


반대로 지방은 소멸 위기를 겪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젊은 20·30세대의 전출이 뼈아프다. 안 그래도 전체 인구가 감소하고 있고, 저출생 흐름을 타고 신규 유입이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있던 젊은이도 서울이나 경기도로 향한다. 수많은 지방 대학은 몇 년 내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있다. 지방 대학이 현지 산업과 연계되어 지역 커뮤니티를 이끌어간다는 점을 고려하면 꽤 심각한 문제다.


지방 소멸은 단순히 지방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도권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이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의도치 않게 배수의 진을 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처럼 귀농할 수도 없고, 물려받을 수도권 아파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서울은 한국의 정치, 경제, 의료, 교육, 문화, 예술, 상업 인프라를 독점적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그나마 살아남은 경기도의 몇몇 도시도 서울의 위성도시 역할을 하며 명맥을 유지한다. 한국이 사실상 ‘서울 공화국’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2021년 기준 서울의 인구밀도는 1km²당 15,699명이다. 2위인 부산의 3~4배에 달한다. 이는 뉴욕(10,194명/km²), 도쿄(6,158명/km²)보다 많은 수치이며 인도와 방글라데시 등지에 있는 몇몇 도시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높다.


강남역이나 서울역같이 유동 인구가 많은 지하철역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가끔 아찔하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 장소에 있을 수 있다니. 적어도 유쾌하진 않다. 한정된 공간에 사람이 많으면 기본적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코로나19의 물결이 덮친 이후로는 더 그렇다. 만원 지하철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필요한 최소한의 거리조차 보장되지 않는다. 생면부지의 모르는 사람과 한껏 몸을 밀착하고 그저 문이 열리기만 기다려야 한다.


수도권을 관통하여 곳곳에 뻗은 지하철과 광역버스는 일종의 혈관이다. 사람을 모았다가 곳곳에 뿜어주는 펌프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서울, 나아가 수도권이라는 거대한 기계를 돌리기 위한 기관과도 같다.


도로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울에서 한 번이라도 차를 몰아본 사람은 안다. 그 넓은 왕복 8차선 도로가 얼마나 쉽게 찰 수 있는지. 그리고 다들 얼마나 여유 없게 운전하는지. 운전자는 자동차를 자신만의 영역이자 신체의 연장선으로 본다고 한다. 온 정신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차를 세워둘 장소도 마땅치 않다.


한정된 공간에 수많은 이들이 살다 보니 자연스레 집값과 생활물가가 치솟는다. 바늘 하나 꽂을 틈이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아파트를 올려도 내 집 하나 없다는 자조 섞인 한탄이 절로 나온다. 최근에는 연이은 금리 인상 기조를 타고 매매가가 떨어지긴 했지만, 아직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에는 턱없이 높다.


2023년 3월 기준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2억 972만 원이다. 그나마 전월 대비 1,510만 원 하락한 것이 이 정도다. 한 달에 100만 원씩 모으면 100년이 넘게 걸리고, 200만 원씩 모아도 50년이 걸린다. 자연스레 흔히 ‘영끌’이라고 부르는 과도한 대출을 끌어안게 된다. 저금리 기조를 믿고 무리하게 부채를 진 이들 앞에는 험난한 청구서가 놓인다.


대부분의 인프라, 특히 커뮤니티가 서울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학업, 구직, 연애, 결혼 등 숨 가쁘게 인생 과업을 수행하는 젊은 세대 입장에서 서울을 벗어난다는 건 산소 줄이 끊어지는 것만큼 두렵다. 최소한 경기도나 인천에라도 붙어있어야 한다.


한국은 사실상 도시국가다. 모두가 서울에서 살 수 있는 것도, 또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다. 지나치게 부풀어 오른 풍선에서 바람을 빼야 한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특정 지역에 모여 사는 작금의 현실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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