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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Dec 07. 2023

#무지출챌린지

[돈] - 3

2021년을 강타한 키워드 중 하나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다.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당연한 명제에서 출발하여 ‘그래서 마음껏 즐기며 살아야 한다’는 다소 미심쩍은 결론을 내린다.


사실 욜로 현상을 뒷받침한 건 자산 가격의 폭발적 상승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 세계 정부는 양적완화 정책을 실시한다. 그 바람을 타고 대부분의 투자 자산이 눈부시게 성장했다. 자산시장에 거대한 유동성이 공급되었기 때문이다. 실물경기는 시름시름 앓고 있는데, 진통제만 잔뜩 먹인 모양새다.


코인이나 주식, 부동산으로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이들이 속출했다. 자연스레 평소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사치재나 서비스에 눈길이 간다. ‘역시 인생은 즐기는 거야!’ 식의 라이프스타일을 이어갔고, 거기에 욜로라는 이름표를 붙였다.


2022년 새해가 밝고 유동성 파티는 끝났다. 금리가 오르고, 대부분의 자산 가격이 하락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점으로 욜로에 대한 관심이 짜게 식었다. 대신 ‘#무지출챌린지’라는 해시태그가 소셜 미디어를 타고 퍼져나갔다.


무지출챌린지는 돈을 아끼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쓰지 않는 걸 목표로 한다.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 냉장고 깊숙한 곳을 뒤지거나, 커피값을 줄이려 탕비실을 들락거린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미래 현금흐름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산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만 무지출챌린지 역시 지속하기 어렵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지출은 발생하기 마련이니까. 애초에 숨만 쉬어도 돈이 술술 나간다.


게다가 소비를 줄이면 삶의 질이 낮아진다. 쓸데없이 나가던 지출을 최소화하는 정도라면 모르겠다. ‘무지출챌린지’는 더 나아가 필수재에 들어가는 비용에 손을 댄다. 식비가 대표적이다. 마트에서 조금만 돌아다녀도 알 수 있다. 몸이나 환경에 좋은 식품에는 항상 높은 가격표가 붙어 있다는걸.


무지출챌린지가 유독 더 슬퍼 보이는 건 그 목적에 있다. 허리띠를 졸라매서 조기에 은퇴하겠다는 소위 파이어족과는 달리 무지출챌린지는 당장의 겨울을 견디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가까운 미래에 경기 혹은 지갑 상황이 좋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으니 그나마 남은 도토리라도 쟁여둔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봄이 오길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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