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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Jul 29. 2024

밥 못 해주는 예쁜 누나

오늘은 내가 김치볶음밥 요리사

사랑은 때로 하지 않던 일을 하게 만든다. 아내에겐 요리가 그러하다. 오랜 유학생활로 샌드위치나 파스타 같은 서양물 먹은 음식은 뚝딱뚝딱 차려내지만 여긴 K-푸드의 중심 코리아가 아니던가. 아침에 게으름을 피우는 주제에 삼식이인 남편 놈을 뒤로하고 때로 한식을 만들어주겠다며 야심 차게 도마를 꺼내곤 한다. 비극은 대개 그때쯤 기지개를 켠다.


짜증 섞인 외침을 듣고 헐레벌떡 주방으로 가면 무언가 타고 있거나, 떡이 되고 있거나, 혹은 정신없이 물을 토해내고 있다. 많은 의문과 당혹감을 뒤로하고 아내를 서둘러 안방에 집어넣는다. 사실 한식은 서양요리처럼 정 없이 '계량'을 한다든지 하지 않는다. 감으로 재료를 썰어 넣고, 감으로 간을 맞추고, 감으로 불의 양과 때를 맞춘다. 그래서 '며느리한테도 알려주지 않는 비법'은 사실 그 말로 표현하기 모호한 감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한식 전문가 같겠지만 실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부려 먹힌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에 가깝다. 파스타에도 꿋꿋이 김치를 썰어 넣곤 했던 어머니는 한식이 참 좋다고 하셨다. 그렇다고 독박요리를 할 수는 없었기에, 딸이 없는 집안에서 써먹을 수 있는 건 그나마 만만한 둘째 아들뿐이었을지도 모른다. 덕분에 전문적인 교육과정은 아니었을지언정 한식에서 가장 중요한 감을 익힐 수 있었다.


그 뒤로 거의 10년 가까이 자취를 하면서 이런저런 요리를 많이 시도했다. 돈도 많이 없었거니와 워낙 절약요괴였던지라 주로 집에서 삼시 세 끼를 해결했다. 요리는 돈 아끼고 싶어 하는 삼식이에게 필수적인 기술이다. 그렇게 대단한 음식은 하지 못하지만 나 한 끼 먹을 정도는 뚝딱뚝딱 만들어서 차리곤 했다. 굳이 예를 들자면 김치찌개, 청국장, 비빔국수, 닭볶음탕 같이 동네 식당에서 팔 법한 음식.


오늘도 아내에게 김치볶음밥을 해주었더니 세상 맛있다며 두 그릇을 후다닥 비운다. 사실 내겐 그리 특별할 것 없는, 늘 먹던 그 맛이다. 그래도 잘 먹는 모습을 보니 밥 먹이는 보람이 있다. 반대로 아내는 오븐 요리를 잘한다. 문제는 집이 작아서 오븐을 놓을 자리가 없다는 거다. 김치냉장고도, 식기세척기도 그렇게 아직까진 버킷리스트에 남아있을 뿐이다. 언젠가 더 넓은 곳으로 이사 가면 꼭 사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난 요리를 하는 사람을 높이 산다. 워낙 드물기도 하거니와 요리가 정말 '요리'만을 함의하진 않기 때문이다. 요리를 하려면 장을 보고, 냉장고나 팬트리에 정리하고, 재료를 다듬고, 설거지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싱크대를 청소하는 등의 기나긴 여정을 함께 해야 한다. 그 일련의 행동이 내겐 '인생을 책임진다'라는 저 거창한 말에 대한 가장 소박한 사례로 보인다.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기도 하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주인공 김태리가 주체성을 찾아가는 시점도 스스로의 힘으로 요리를 하면서부터다. 예능 <냉장고를 부탁해>나 <삼시세끼>가 그토록 뜬 것도 '요리하는 남자'에 대한 동경이 한몫 했을 것이다. 요리는 이처럼 별게 아닐지라도 사람을 참 매력적으로 만든다.


만약 부부가 둘 다 요리를 못하고, 또 싫어한다면 100% 외식에 의존하거나, 친정어머니가 싸준 반찬만을 무한으로 즐겨야 한다. 조금이라도 의욕이 있다면 밀키트나 라면 정도는 가능하겠다. 사실 요리를 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그냥 돈을 좀 더 들이고 건강을 좀 희생하면 된다. 요즘처럼 마트 물가가 치솟는 시대에는 차라리 그게 현명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둘 사이에서 자식이 태어나면 어떡하나, 이런 생각은 든다. 나는 콜라를 들이켤지언정 자식이 콜라를 홀짝대는 꼴을 보지 못하는 게 부모 마음 아니겠는가. 매일 배달음식과 편의점 도시락, 외식으로만 해결한다면 어떡하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해본다. 물론 그들도 나름의 생존방식이 있을 테니 기우일 것이다. 그래도 난 내 자식이 요리를 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한다. 그렇게 잘하지 않아도 좋다. 적어도 자기 입에 넣을 음식 정도는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중에 자식이 태어나면 톰 소여처럼 요리가 실은 아주 즐거운 일이라고 소소한 가스라이팅(?)을 할까 한다. "너 초등학교는 들어가야 주방에 들어올 수 있어!" 이런 식으로. 사람은 자기 손에 없는 걸 가치 있다고 여기는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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