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닮은 아이를 갖고 싶어
딩크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이를 먹으며 문득 아버지를 닮아간다는 걸 자각할 때가 있다. 특유의 말투도, 생각도, 그리고 그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머리숱도. 그럴 때마다 모근 아래 새겨진 유전자의 위대함에 탄복하게 된다.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함께 따라간 지금의 처갓집에서도 비슷한 깨달음을 얻었다. 차분하게 맞아주시는 아버님과, 우당탕탕 어머님의 조화로 지금의 여자친구가 빚어졌구나.
아이를 낳는다는 건 걱정과 함께 일말의 기대감을 안긴다. 부모가 가진 각자의 장점만을 합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으로. 예를 들어 아내는 춤을 잘 춘다. 나는 뚝딱이 그 자체다. (유튜브에 '뚝딱이의 춤 교실'을 올리자는 아내의 아이디어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반면 나는 어설프게나마 노래를 부를 수 있고, 아내는 그냥 어설프다. 아내가 말했다. 나의 춤 실력과 너의 노래 실력이 잘 섞이면 아이돌도 될 수 있지 않겠냐고. 내가 답했다. 나의 춤 실력과 너의 노래 실력이 잘 섞이면 어떻게 되겠냐고.
사실 평생 딩크를 꿈꾸었다. 아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데다 아내가 고통스러운 것도, 내가 힘든 것도 싫었으니까. 하지만 꿈은 이루어지기보단 깨지기 마련이다. 널 닮은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말에 그러자고 해버렸다. 미래의 내가 책장을 두드리며 "Stay!"를 외칠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문은 열어둔 셈이다. 아내는 각자의 장점을 닮지 못할 거라면 나에게 세포분열을 하라고 했다. 낳았는데 자기 같은 아이라면 반납할 거라고.
대체로 조용하게 살아왔던 나와는 달리, 아내의 유년시절은 아기장수 우투리 그 자체였다. 품위 유지를 위해 지면에 일일이 담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결국 지금의 장모님이 수녀님께서 운영하는 여자고등학교에 넣어버렸고, 덕분에 '고딩엄빠'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아마 우투리 시절에 우리 둘이 만났다면 결혼은커녕 친구도 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무엇보다 타이밍이다.
아이 이야기를 하고 나니 주변에 돌아다니는 아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아기들을 데리고 다니는 지친 표정의 아버지에도 감정 이입을 하게 된다. 아빠가 된다는 건 어떤 일일까. 정말 내가 누군가를 키워도 되는 걸까. 나 하나조차도 간수를 제대로 못 하는 것 같은데.
세상에는 꼭 해야 하는 일도,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없다고 믿는다. 다만 결과에 책임만 지면 된다. 이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가는 나름의 마인드셋이다. 사실 아이를 낳지 않아도 개인적으로는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낳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다만 아내에게 평생의 한이 될까 봐, 그게 걱정일 뿐이다. 낳게 되면 최선을 다해 기르겠다고 약속했다. 웃는 표정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