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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Dec 31. 2021

있음으로 충분하다면 사랑이다

내년엔 더 사랑하며 살아야지

그저 있음으로 충분한 존재가 있다면 난 그 대상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모습이든, 어떤 시공간에 있든 말이다. 영화 <내 사랑>(2017)을 보고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분명 로맨스 영화지만 그려지는 장면은 낭만적인 사랑보다는 팍팍한 인생살이에 가깝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그곳 특유의 거친 자연과도 같다. 사랑이란 역시나 쉽지 않다.


각기 다른 이유로 세상을 멀리하던 두 주인공은 우연한 계기로 만나 결혼까지 이르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순탄치 않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옆에 붙어있는 고슴도치와도 같다. 그 고난과 역경이 사랑을 한층 더 아름답고 슬프게 그려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굳이 그런 고통을 겪어내야만 할까라는 안타까움도 더해진다.


제대로 사랑받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주인공 에버렛은 자신의 아내 모드에게 수시로 상처를 준다. 모드는 무채색의 공간을 그림으로 수놓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한다. 두 주인공의 모습에서 나를 보는 것 같아 뭉클해졌다. 주변 사람에게 말로 상처를 주는 나. 반대로 받은 상처를 글로 승화하는 나. "내 인생 전부가 이미 액자 속에 있어요"라는 대사에서는 내 마음을 들킨 기분마저 들었다.


그림에 대한 사랑, 그리고 에버렛에 대한 사랑. 모드에게 남은 건 사랑뿐이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모드는 완전해진다. 이렇게 보면 사랑이란 충분함이다. 어떤 대상이 있음으로 내 존재를 확인받고, 또 의미를 부여받는다. 반대로 사랑이 없다면 사람은 쉽사리 자신의 삶에 의미를 갖기 어렵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세상에 사랑보다 값진 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올해가 끝나가는 이 시점에 난 충분히 사랑받았을까, 또 충분히 사랑했을까? 삶의 가치를 사랑으로 평가한다면 난 충만한 삶을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른걸 다 떠나서 있음으로 충분한 존재를 찾았다면 그렇노라고 주장할 수 있으리라. 내가 사랑하는 존재를 떠올려본다. 가족, 친구, 글쓰기, 자연 등. 그 존재만으로 충분한가? 그렇다. 그렇다면 그 대상을 아낌없이 사랑했는가? 자신이 없다.


이 시점에 내년의 목표를 떠올린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한껏 끌어안기. 있음으로 충분한 대상에 더 관심을 기울이기. 한마디로 사랑하기. 사실은 힘든 과정이다. 사랑이란 에버렛의 괴팍한 성격처럼 상대의 단점도 수용해야 하는 과정이니까. 글쓰기도, 연인도, 가족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삶의 정수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한해가 되었으면. 역대급으로 조용한 연말, 조용히 앉아 나의 사랑을 더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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