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
17. 마지막인가?
배정환
건물주가 카페의 구석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손님 커피 내리고 천천히 오라고는 했지만, 건물주의 표정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자기 건물에 맛있는 카페가 생겨서 좋다고 매번 고맙다고 하신 분이다. 오늘따라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건물주로 보였다. 대머리를 긁으며 스마트폰을 보다 태성을 한 번씩 바라봤다. 빈 잔은 나중에 세척하기로 하고 건물주와 마주했다.
"아저씨 뭐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그게. 말이야."
"편하게 말씀하세요. 혹시 카페 때문에 불편하신 거 있으세요?"
"아니, 얼마 전에 스타 버즈에서 사람이 왔어."
태성은 이상했다. 100미터 거리에 스타 버즈가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여기 건물주를 찾아온 이유가 뭘까?
"스타 버즈에서 이 건물을 사고 싶다네. 시세보다 높게 쳐준다고."
"사장님 저희 이제 슬슬 자리 잡아가는데요. 그리고 계약기간은 아직 3년 남았잖아요."
건물주는 다시 대머리를 긁었다.
"그래서 말이야. 권리금은 좀 더 챙겨줄 테니까. 이참에 다른 곳에서 해보는 건 어떤가?"
"사장님. 저 이제 자리 잡아가고 있어요. 안됩니다."
건물주는 계속 이야기했다. 옆에 큰 아파트 단지가 하나 들어서기로 했고 거기에 맞추어 관공서도 들어올 예정이라 먼저 선점하고 싶은 모양이다. 스타 버즈에서는 이 건물이 마음에 들지만, 안되면 차선으로 옆 건물이라도 구매한다고 했다. 그러면 아무래도 태성 카페는 직접적으로 타격이 클 것이다. 아무리 콘셉트를 다르게 가져가더라도 경쟁에서 이길 수는 없으리라.
직장 생활할 때도 그랬다. 거래처를 빼앗아 오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가격 단가를 후려쳐서 경쟁자를 다 죽이고 나중에 가격을 올리곤 했다. 자본이 풍부한 기업은 가격을 낮춰도 버틸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소규모 자영업은 그럴만한 여력이 부족하니, 항상 틈새시장을 노려야 했다. 기회가 닿으면 좋은 가격에 파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다시 자리를 잡아 가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미지수였다. 자영업의 성공 확률은 매우 낮아서 카페 동기들도 이미 70%가 가게를 내놓은 상태이다. 그런데 비하면 아직 망한 것은 아니지만, 미래가 불분명했다.
태성은 아무리 생각해도 대기업의 횡포에 굴복하고 나가기는 싫었다. 특히 동종의 업계에 무릎을 꿇는 것 같아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일단 2층, 3층 변호사 사무실과, 법무사 사무실에 찾아갔다. 이미 그들도 통보를 받았다며 고민 중이라 했다. 법원이 멀지 않으니 멀리 갈 수는 없고 다른 곳을 물색 중이라 했다. 돈을 얹어준다고 하니 다들 나가는 것도 기회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제 결정할 사람은 태성밖에 없었다. 그래도 평소에 많은 가르침을 준 피자집 사장을 찾았다.
"그냥 좋은 가격으로 넘기고 다른 곳에서 해보는 건 어때요? 이것도 어쩌면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잖아요."
주변 사람들 모두 실리를 택하라고 했다.
"아빠, 만약 저 옆 건물에 들어서면 우리는 그냥 죽을 수도 있어. 선택의 여지가 없어."
심지어 딸도 현명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태성은 왜 이런 결정이 쉽지 않은지 자신도 답답했다.
부동산을 찾아갔다. 혹시 근처 다른 곳에 카페 자리가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소문이 이미 퍼지기 시작해서 그런지 보증금도 많이 올랐다. 부동산 사장님도 실리를 가져가라 하셨다. 이미 지난번 스타버즈 개업부터 많은 카페가 가게를 내놓은 상태라 했다.
"스타버즈 들어서면 여기 상권에 벌써 두 개네요. 아마 하나 더 만들지도 몰라요. 전국에 공격적으로 매장을 늘리던데요. 다른 프랜차이즈 대형 매장이 건물을 짓는다는 소문도 있어요. 사장님 결정 잘하셨어요. 지금 다른 가게들도 본격적으로 매장 공사에 들어가고 난리도 아니에요."
"다른 매장이라니요?"
"카페 앞에 피자집도 작은 카페보다는 큰 카페가 자기들 장사에 이득이라며 확장한다고 하던데요."
태성은 들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주변 사람 모두 태성의 카페보다는 대형 카페가 들어서는 것을 환영하고 있었다. 왜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태성에게 카페 정리하라고 하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들에게 물어본 자신이 바보였다. 세상이 짜고 태성을 속이는 듯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태성을 걱정하는 것 같아도 그들은 이미 같은 편이 아니었다. 자기들의 밥그릇이 더 중요했다. 입장이 바뀐다면 태성도 그렇게 했을지 모른다. 아니, 태성은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자영업을 시작하고 세상에 맞추어 살아야 하는 자신이 부족해 보였다. 그동안 태성은 세상을 너무 쉽고 감상적으로 이해했다. 자기만 잘하고 사람들과 친해지면 모든 것이 착착 진행될 거라 여겼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작은 동네 카페라도 자본주의 원칙이 차갑게 존재하고 있었음을 몰랐다니. 카페 운영을 걱정하던 자신과는 다르게 세상은 발 빠르게 변화에 적응하고 있었다.
카페에 들어서다 피자집에 들렀다. 피자집 사장이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었다.
"잘했어요. 권리금 더 준다고 하니, 다른 자리 알아보면 되죠. 이제 카페 사장님도 자영업에 대해서 많이 배웠잖아요. 힘내세요."
태성은 고맙다며 청하는 악수에 응했다. 아무렇지 않게 대응하는 자신에게 놀랐다.
태성은 일단 도성을 불러 상의했다. 대기업에 맞설 수도 없고, 피해 갈 수도 없으니 마지막 방법은 다른 곳으로 이전밖에 없어 보였다.
"사장님, 결정 잘하셨어요. 지금은 대기업과 싸울 단계가 아닙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요."
"사장님도 많은 경험을 쌓으셨으니 다른 카페든, 다른 일을 알아보시죠."
"카페에서 많이 배우긴 했는데, 다시 카페를 차려야 할까?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아니요. 카페는 이제 포화상태입니다. 사장님이 살아남으려면 자본을 쏟아부어야 하는데 그 정도 여력은 없으시잖아요."
가게를 다 정리한다 해도 처음 차릴 때보다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딱히 뭘 해야 할지 방향이 서질 않았다.
"그래도 건물주가 보증금까지 챙겨준다고 하니 여기 인테리어비는 빠질 듯싶네요."
"그렇기는 하지. 그럼 프랜차이즈라도 할까?"
태성은 크게 가던지 작게 하던지 둘 중 하나라 생각했다.
"사장님 작은 프랜차이즈도 이제는 포화됐어요."
"그럼 딱히 할만한 게 있을까?"
"사장님 일단 저쪽에서 좋은 조건을 내걸 때 빨리 처리하시고, 좀 쉬면서 알아보시죠. 저도 생각해 본 게 있기는 한데요. 그때 말씀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