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
18. 큰 그릇에 담다
배정환
태성은 가게를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망막하기만 했다. 도성과 술 한잔 하기로 했다. 근처 치킨집에서 생맥주와 후라이드를 시켰다. 그러고 보니 처음으로 도성과 카페가 아닌 곳에서 만났다. 종일 아르바이트가 아니라서 낮시간에만 일하는 특성상 함께 술 한잔 하기도 쉽지 않았다. 태성은 도성의 잔을 채워주며 그간 마음에만 담고 있던 말을 꺼냈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자네가 많이 든든해. 진심이야. 정말 동생 삼고 싶어."
"감사합니다. 저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그래 이제 카페도 없어졌는데 우리 형님, 동생 하자고."
"형님께 큰 보탬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내가 경험부족이지 뭐. 동생은 최선을 다해 도와줬잖아."
건배해야 할 상황이 아님에도 좋은 동생을 얻은 것 같아 잔을 부딪쳤다.
"그나저나 동생은 이제 공부하면 될 테고, 나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네... 지난번에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한건 뭐 다른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건가?"
도성은 주변을 한번 돌아보고 대답했다.
"여기 치킨 가게 장사 잘 되네요. 이런 거 차려볼 생각은 없으세요?"
"아. 여기? 나도 눈여겨보고 있어."
"치킨 시장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많은 사람들이 먹는 기호식품이니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때?"
"아이들 최애식품 중에 하나고, 술안주로도 최고니까 가능성이 많죠."
태성은 치킨을 하나 베어 물었다.
"그럼 이런 거 하나 차려볼까?"
도성이 일어나더니 냉장고에서 물병을 가지고 왔다.
"물 한잔 드세요."
"엉? 갑자기 무슨 물이야?"
도성이 물을 따라주기에 태성은 얼떨결에 종이컵을 들어 물을 받았다. 잔이 채워지는가 싶더니 물이 넘쳤다.
"동생, 물 넘치잖아. 그만!"
종이컵을 가득 채운 물은 탁자에 흘러내렸다. 태성은 얼른 종이컵을 내려놓고 티슈를 꺼내 탁자를 닦았다. 하지만 도성은 그냥 태성을 바라만 봤다.
"형님! 잔이 채워지면 넘치죠?"
"엉? 뭔 소리야?"
태성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도성을 바라봤다.
"이거 퀴즈야?"
"지금 치킨가게가 이 꼴입니다. 카페도 마찬가지고요. 시장에 넘쳐나고 있어요. 형님은 남들이 하는 것들을 따라 하고 계시다구요."
도성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남들 잘 된다고 하는 가게가 뭔지 찾아다니고 있었다.
"잔이 넘치면 닦아내는 게 아니라, 더 큰 잔으로 담아야죠. 형님 같은 분들을 상대해 보죠."
"나 같은 사람?"
"카페 차리고 싶은 사람들에게 뭘 팔 수 있을까요?"
"그야... 커피겠지."
"또 뭐가 있을까요?"
"음, 커피 말고, 쿠키? 빵? 이런 거?"
"다른 음료 레시피도 있겠네요. 사람들의 마음이 향하는 곳을 보시면 어떨까요?"
도성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사람들의 커피 문화 때문에 커피시장은 급격하게 커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카페창업으로 뛰어들었다. 어쩌면 카페를 차리고 싶은 사람들이 고객이 될지도 몰랐다. 카페를 운영하는 2년 동안 나름 레시피도 개발했고, 책 문화도 만들어봤다. 커피에 관해 좀 안다고 자부했다. 창업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컨설팅을 해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좋은 생각이 났어. 내일 목사님을 찾아가 봐야겠어. 동생은 이제 어쩔 셈인가?"
"저야 하던 공부마저 해야죠.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언제든지 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 주세요."
태성은 다음날 원두를 제공하던 목사님을 찾아갔다. 작은 로스팅 기게에서 향을 맡고 계시던 목사님이 태성을 반겨주었다. 창업할 때 한번 들려보고 이제야 다시 와본 곳이다. 워낙 영세하게 하고 계셔서 주로 택배로 받았다. 목사님께 로스팅을 배우며 영업을 해보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 아는 카페에만 제공할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거래처를 늘려보자고 했다. 영업을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회사에서 거래처 관리를 했으니 조금만 더 공부하고 경험하면 어렵지 않아 보였다. 목사님도 흔쾌히 태성의 제안을 받아주셨다. 목사님으로 받던 블렌딩에 몇 가지를 더 추가하면 나름 영업 경쟁력이 생길 듯했다.
수민이는 원두에 관한 블로그와 인별그램을 개설했다. 원두의 종류, 커피 문화에 대한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빠와 커피'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컨설팅 환영한다는 광고를 올렸다.
"수민아, 가만있는데 누가 문의하지는 않을 거야. 내가 적극적으로 카페영업을 할 테니까 너도 SNS마케팅을 적극적으로 도와줘."
태성은 카페에서 공연했던 영준씨에게도 연락을 했다.